[세상속으로]봄의 전령사 매화와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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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속으로]봄의 전령사 매화와 여인

윤여환 충남대 예술대학 회화과 교수

  • 승인 2019-02-27 15:07
  • 신문게재 2019-02-26 22면
  • 이상문 기자이상문 기자
윤여환 충남대 교수
윤여환 충남대 예술대학 회화과 교수
묵묵히 긴 겨울을 견디며 싹트는 봄을 고결한 향기로 전하는 백매(白梅), 터지고 뒤틀리면서도 파격의 춤사위를 뽐내는 고매(古梅), 흐드러지게 핀 창백한 표정이 교교한 달빛에 도취 된 월매(月梅) 등은 매화만이 가지는 관능적 풍모이다. 척박한 땅에 뿌리를 내려 북풍한설 속에서도 은은한 향기를 뿜어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설중매(雪中梅)는 더 운치 있고 매혹적이다. 그래서 매화는 다른 나무보다 가장 먼저 피는 꽃이라 하여 화괴(花魁)라고도 불린다.

매(梅)자 속에는 나무목(木)과 어미모(母)자가 들어 있다. 그래서 매화는 겨울끝에서 봄을 낳는 나무, 즉 봄의 어머니이다. 다른 꽃들은 따뜻한 봄이 오면 꽃을 피우지만, 매화는 꽃을 피우면서 봄이 온다.

'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에 의하면 "습속에 동지일로부터 81일이 되면 추위를 다한다"라고 했다. 이것이 나중에 엽전과 매화형태의 '구구소한도(九九消寒圖)'로 발전하여 세시풍속으로 유행하기 시작했다. 가장 추운 동지 다음날부터 헤아려서 81일 간을 구구(9x9)라 하고 그 수만큼 매화를 그려놓고 하루 한 개씩 홍매화로 채색하며 봄을 기다리는 마음을 담았다. 81일째가 되는 경칩과 춘분의 중간, 양력 3월 10일경에 소한도를 걷어내고 뜰 앞에 핀 매화를 맞이했다.

매화의 기질은 고결한 기품을 지니고 있는 여인의 절개와 지조를 닮아 있다. 조선시대 여인들은 비녀에 매화와 댓잎이 새긴 매화잠(梅花簪)을 머리에 꽂아 일부종사의 미덕을 다짐하였다. 경사스러운 날에 여인들이 머리에 매화를 장식하는 매화장(梅花粧)도 여인의 아름다움과 기다림의 표상이었다.



2003년도 흥행한 영화 [스캔들_조선남녀상렬지사]에 등장하는 정절녀 숙부인정씨 초상화에도 배경에 만개한 백매화나무를 그려 여인의 절개를 상징적으로 표현했다. 황진이는 '소세양 판서를 보내며(奉別蘇判書世讓)'에서 매화향기는 소세양의 피리소리에 감겨들지만 내일 아침 님 보내고 나면 사무치는 정 물결처럼 끝이 없으리라고 했듯이, 매화를 애틋한 사랑과 이별에 대한 징표로 노래하기도 했다.

이렇게 매화가 여성으로 치부되면서 성병을 매독(梅毒,syphilis)으로 불리기도 한다. 물론 서양에서는 '장미의 가시'라고 불렀고 동양에서는 '매화의 독(梅毒)'으로 표현했는데 그 이유는 매독의 피부궤양이 매화꽃 같은 모양이라고 해서 붙였다고 한다. 또는 매(梅)자가 곰팡이 미(黴)와 중국 사성음 체계로 읽으면 독음이 같아서 그렇다고도 전한다.

조선시대 영남사림의 양대 산맥이었던 지리산 천왕봉 아래 경남 산청 산천재에는 조식의 남명매가 있고 경북 안동 도산서원에는 이황의 도산매가 있다. 퇴계 이황은 평생토록 매화를 소재로한 107수의 매화 시를 남기면서 매화의 고결한 기품을 상찬했다. 그가 매화를 통해 사랑을 나누며 많은 시를 남기게 된것은 단양의 관기(官妓) 두향(杜香)의 영향이었다. 퇴계는 단양 군수 시절에 관기 두향을 만났다. 퇴계가 군수로 부임한 것은 48세 때였고 당시 두향은 18세였다. 그러나 퇴계가 경북 풍기군수로 자리를 옮기게 되면서 두 사람의 사랑은 9개월 만에 석별의 정으로 남게 되었다. 그때 두향이 퇴계 선생에게 선물했던 매화나무는 지금도 그 맥을 이어가고 있고, 도산서원 입구와 경내 광명실 앞뜰에서 자라고 있다.

퇴계 이황은 신흠(申欽)의 ≪야언(野言)≫에 나오는 7언절구 한시 중 '매화는 한평생 추운겨울에 꽃을 피우지만 향기를 팔지 않는다(梅一生寒不賣香)'는 말을 평생의 좌우명으로 삼았다고 한다.

지금 한국의 봄은 눈 녹은 섬진강에 봄물을 타고 오고 있다. 급물살에 던져진 한송이 홍매, 동토에 핀 설중매의 기개와 정신을 본받아 지속 가능한 한반도 평화와 좀더 올바른 세상으로 나아가는 날이 오길 염원해 본다.

윤여환 충남대 예술대학 회화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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