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춤으로 그려진 그림 속 생명력

  • 문화
  • 공연/전시

[리뷰] 춤으로 그려진 그림 속 생명력

대전시립무용단 '군상'

  • 승인 2019-11-07 17:15
  • 신문게재 2019-11-08 11면
  • 이해미 기자이해미 기자
김혜라 춤 평론가
고암 이응노 화백의 정신과 이상이 대전시립무용단의 <군상>에 소환되어 살아있는 몸의 생기와 이미지로 해석되었다. 일제강점기, 전쟁, 동백림 사건 같은 한국의 굴곡진 현대사를 살아낸 이응로 화백의 담백한 색채에 담긴 자유분방한 필치와 응축된 생명력이 윤이상 작곡가의 고뇌에 담긴 음악과 함께 무대에서 춤으로 되살아난 것이다. 대전시립무용단의 기획으로 마련된 무대는 추상성과 사실성을 넘나들며 화백의 격조를 상기시키기에 충분했다.

황재섭 감독은 대전시립무용단 부임 후 신작으로 <군상>에서 이 화백의 4개 작품의 이미지를 춤으로 성실하게 재현하는 것에 중점을 두었다. 여기에 윤이상의 격렬하고 리듬감이 복잡한 현악의 합주 기법들은 작품의 드라마틱한 성격을 고조시켰다. 최근 국·공립 단체의 한국춤을 현대적으로 창작하려는 경향을 반영한 황감독의 연출은 현대춤의 구도와 몸짓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무대세트는 간소하게 조명 색감으로만 배경과 무드를 처리하였고, 최대한 춤적 질감에 집중하기 위해 작품은 화백의 그림 영상으로 각 장의 서두와 마지막에 투사시키는 정도로만 배치하였다.

황재섭 감독은 이 화백의 의식과 무의식의 세계, 역사적 사실과 가상의 극적 서사를 삽입한 상징성으로 안무적 접근을 하였다. 총 4장중 제1장 '공후'에서는 화백의 그림 속 선형들과 필체가 댄서들의 움직임으로 환생된 듯하다. 화폭의 사각 프레임을 옮겨놓은 무대에서는 고요와 정적인 선형적 형태감을 이루는 댄서들의 움직임이 화백의 젊은 시절 꿈을 회고하듯 남녀의 사랑과 이별이라는 사실적인 내용이 중심이 되었다.

제 2장 '메모리즈'에서는 "1968년 12월 안양 교도소에서 가장 춥고 괴로운 날"에 그린 '자화상'이 무대 바닥을 장식하며, 어둡고 스산한 분위기 속에 시간차를 둔 군무로 기억의 흔적을 더듬고 있었다.



이어지는 제 3장 '동백림, 그리고 광주'에서는 감옥으로 설정된 무대에서 이 화백이 정치적 사건에 연루되어 견디는 고통과 처절함이 댄서들의 거친 감정으로 표현된다. 역사적 상흔의 고통은 남녀 주인공과 상의를 벗어던지며 격렬하게 몸부림치는 군무를 통해 민중의 저항 의지를 직설적으로 표출하였다. 화백의 '군상'이 잉태될 토대가 마련된 셈이다.

마지막 제 4장 '군상'은 상처받은 민중들이 일어나 서로를 의지하며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희망찬 모습을 보여준다. 이것은 이 화백 이야기를 통해 동시대를 살아 견뎌낸 우리의 역사를 보여준다. 화백의 '군상'에 담긴 묵직한 수묵적 정서에서 발현되는 군상들의 자발적인 활동성은 공동체성을 담지하면서도 역동적인 생기발랄한 몸짓을 표현하고 있다. 황감독의 작품 <군상>에서 그려진 군중들은 집단적인 미래지향적 의지만이 강조되었다. 화폭에 담긴 민중의 미력하지만 꺾이지 않는 기상이 좀 더 섬세하게 각각의 댄서들의 개별적이고 개성 있는 춤으로 발휘되었더라면 화백의 기상과 좀 더 어울렸을 것 같다.

대전시립무용단의 <군상>을 통해 예술가의 고뇌를 넘어 비탈진 현대사의 아픔을 볼 수 있었기에 동시대를 살아낸 민중의 정서를 다시 생각하는 시간이었다. 그들의 역동적인 예술적 실천에 녹아있는 그늘진 정서를 춤적 정서로 앞으로 더욱 두터운 질감으로 재조명해주길 기대하며 황감독과 대전시립 단원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김혜라 춤 평론가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행정수도 개헌' 이재명 정부 제1국정과제에 포함
  2. "국내 최초·최대 친환경 수산단지 만든다"… 충남도, 당진시 발전 약속
  3. 이 대통령, 세종시 '복숭아 농가' 방문...청년 농업 미래 조망
  4. 논란의 금속보호대 대전교도소 1년간 122회 사용… 기록누락 등 부실도
  5. "착하고 성실한 학생이었는데"…고 이재석 경사 대전대 동문·교수 추모 행렬
  1. 고교학점제 취지 역행…충청권 고교 사교육업체 상담 받기 위해 고액 지불
  2. 이철수 폴리텍 이사장, 대전캠퍼스서 ‘청춘 특강’… 학생 요청으로 성사
  3. ‘숭고한 희생 잊지 않겠습니다’
  4.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대전충청본부, 치매안심센터 찾아 봉사활동
  5. 서울대 10개 만들기·탑티어 교수 정년 예외…교육부 새 국정과제 본격 추진

헤드라인 뉴스


충남도 5년간 11조 투입해 서해안 수소벨트 구축

충남도 5년간 11조 투입해 서해안 수소벨트 구축

충남도가 석탄화력발전소 밀집 지역인 서해안 일원에 친환경 수소산업 벨트를 구축한다. 도는 수소 생산부터 저장, 활용까지 국내 최대 수소산업 클러스터를 구축해 글로벌 수소 허브로 탈바꿈시킨다는 목표다. 김태흠 지사는 18일 서산 베니키아호텔에서 열린 '제7회 수소에너지 국제포럼'에서 19개 기관·단체·대학·기업과 업무협약을 맺고, 서해안 수소산업 벨트 구축 본격 추진을 선언했다. 이날 포럼에는 김 지사와 제프 로빈슨 주한 호주 대사, 니쉬 칸트 씽 주한 인도 대리 대사, 예스퍼 쿠누센 주한 덴마크 에너지 참사관 등 500여 명이 참석..

불꽃야구, 한밭야구장에서 직관 경기 열린다
불꽃야구, 한밭야구장에서 직관 경기 열린다

리얼 야구 예능 '불꽃야구'가 대전 한밭야구장(대전 FIGHTERS PARK)에서 21일 오후 5시 직관 경기를 갖는다. 18일 대전시에 따르면 이번 경기는 한밭야구장을 불꽃야구 촬영·경기 공간으로 활용하기로 한 협약 이후 시민에게 개방되는 첫 무대다. '불꽃야구'는 레전드 선수들이 꾸린 '불꽃 파이터즈'와 전국 최강 고교야구팀의 맞대결이라는 예능·스포츠 융합 콘텐츠로 주목받고 있다. 21일 경기는 수원 유신고와 경기를 갖는다. 유신고는 2025년 황금사자기 준우승, 봉황대기 4강에 오른 강호로, 현역 못지않은 전직 프로선수들과의..

추석 앞두고 대전 전통시장 찾은 충청권 경제단체장들 "지역경제 숨통 틔운다"
추석 앞두고 대전 전통시장 찾은 충청권 경제단체장들 "지역경제 숨통 틔운다"

충청권 경제 단체들이 추석을 앞두고 대전지역 전통시장을 찾았다. 내수 침체로 활력을 잃은 지역경제에 숨통을 틔우기 위한 캠페인을 위해서다. 특히 이번 캠페인에는 이상천 대전세종중소벤처기업청장이 취임 직후 첫 공식일정으로 민생현장을 찾아 눈길을 끌었다. 대전세종충남경제단체협의회(회장 정태희)는 지난 17일 오전 대전 서구 한민시장에서 '지역경제 활성화 캠페인'을 개최했다. 행사에는 이상천 중기청장을 비롯해 정태희 회장(대전상의 회장), 김석규 대전충남경영자총협회장, 송현옥 한국여성경제인협회 대전지회장, 김왕환 한국무역협회 대전세종충남..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민생회복 소비쿠폰 2차 지급 준비 만전 민생회복 소비쿠폰 2차 지급 준비 만전

  • 2025 적십자 희망나눔 바자회 2025 적십자 희망나눔 바자회

  • 방사능 유출 가정 화랑훈련 방사능 유출 가정 화랑훈련

  • ‘숭고한 희생 잊지 않겠습니다’ ‘숭고한 희생 잊지 않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