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1996년 11월 13일의 기억

  • 오피니언
  • 편집국에서

[편집국에서]1996년 11월 13일의 기억

원영미 편집부 차장

  • 승인 2019-11-18 23:16
  • 신문게재 2019-11-19 22면
  • 원영미 기자원영미 기자
웹용
원영미 편집부 차장
올해도 수능이 끝났다. 매년 이맘때면 '97학번 수능세대'인 나도 시험을 쳤던 그날이 떠오른다.

날짜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아 찾아보니 그해 수능 날은 1996년 11월 13일이었다. 새벽부터 엄마는 보온도시락에 따뜻한 국물을 넣은 도시락을 싸줬고, 아빠는 시험장까지 차로 태워다 주셨다. 고사장 앞에는 지금처럼 후배들이 응원을 나와 있었던 것도 같다. 교실 맨 앞자리에 앉아 시험을 쳤다. 2교시 수리1(수학)까지 마치고는 학교 친구들과 도시락을 먹으며 "아~ 수학 다 찍었네", "망쳤어", "왜 이렇게 어렵냐" 등 그날의 시험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특별히 긴장 하거나 그랬던 것 같지는 않다. 하루 종일 이어진 시험이 끝나고 평소처럼 하교하듯 고사장을 빠져나왔다. 그때만 해도 교문 앞에서 시험 끝난 아들딸들을 기다리는 모습은 거의 볼 수 없었다. 어둑해진 길을 따라 정류장으로 걸어가며 느낀 후련함과 아쉬움은 지금도 생각이 난다. 꼬박 3년 동안 수능을 위해 달려왔으니….



휴대폰, 삐삐도 없던 때라 5시쯤 시험이 끝날 시간에 맞춰 아빠는 버스 정류장에서 나를 기다렸다가 태워 함께 집으로 갔다. 가는 동안 시험을 잘 봤는지, 망쳤는지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항상 7시는 넘어야 집에 돌아오는 아빠였는데, 수능 날이라고 나를 데리러 오기 위해 평소보다 빨리 일을 끝내고 오셨던 거다. 지금 돌이켜보면 참 무뚝뚝하고 말수도 거의 없는 분이지만, 첫째 딸의 인생이 걸린 수능시험이 내심 신경이 쓰였던 것은 아닐까.

내가 치렀던 1996년 수능은 400점 만점제가 처음 도입됐고, 수능 역사상 '최악의 난이도'라는 평가를 받은 시험으로 유명하다. 수능 당일 EBS에서 해주는 문제풀이 방송을 보며 가채점 중이던 나는 수학 중간에 덮어버리고 울며 방으로 뛰어들어갔다. 엄마는 그런 내게 말도 붙이지 못했다. 이때 입시는 대학별 본고사가 모두 폐지되면서 수능만으로 선발하는 특차 모집과 수능, 논술, 고교내신을 반영한 정시모집만 있었다. 역대 최악의 '불수능'이었던 만큼 서울 유명학원 분석에 따르면 280~300점대면 서울대 지원이 가능했을 정도다.



당시엔 수능 하나로 모든 게 끝난 것만 같았다. 그런데 수리2와 영어에서 나름 선방한 덕분에 3년 농사인 수능을 완전히 망치지는 않았다. 하지만 국·영·수 위주로만 평가하는 수능이 한 사람의 대학 진로를 결정하는 잣대가 되는 입시 현실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사실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떤 직업을 갖고 싶은지, 자신의 흥미나 개성, 재능은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다. 두 아이의 엄마가 된 지금, 무조건 공부만 잘하란 말보다 아이가 더 잘하고 즐거워하는 것에 관심을 가지려고 노력한다. 올 수능을 마친 고3들도 수능 결과에 울고 웃기보다 나의 행복, 진정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찾는데 에너지를 쏟았으면 좋겠다. 원영미 편집부 차장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2026년 부동산 제도 달라지는 것은?
  2. 李대통령 대전충남 與의원 18일 만난다…통합 로드맵 나오나
  3. 대전 교육공무직 파업에 공립유치원 현장도 업무공백 어려움
  4. 인도 위 위협받는 보행자… 충남 보행자 안전대책 '미흡'
  5. 대전에 고성능 AI GPU 거점센터 구축... 글로벌 AX 혁신도시 거듭
  1. 대전권 9개 대학 주최 공모전서 목원대 유학생들 수상 영예
  2. [인터뷰]"지역사회 상처 보듬은 대전성모병원, 건강한 영향력을 온누리에"
  3. "내년 대전교육감 선거 진보 단일후보 필요"… 대전 시민단체 한목소리
  4. 충남개발공사 '고객만족경영시스템' 국제표준 인증 획득
  5. [부고]김창세 세무사 빙모상

헤드라인 뉴스


"초고압 송전설로 신설 백지화를" 대전시민단체 기자회견서 요구

"초고압 송전설로 신설 백지화를" 대전시민단체 기자회견서 요구

전남을 시작해 충청권을 가로질러 수도권으로 향하는 초고압 송전망이 농경지와 주택가, 학교 일원을 경유해 건설될 것으로 예상돼 반발이 제기되고 있다. 수도권에 또다시 대규모 국가산업단지를 신설하고 입주 기업에 필요한 전력을 공급하려 지방에 대규모 송전선로를 건설할 때 환경권과 생활권 침해 피해는 지역에 돌아온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17일 오전 대전시청 북문 앞에서 앞으로 대전을 관통해 건설될 예정인 '신계룡-북천안 345㎸ 송전선로 시설 계획을 규탄하는 범 시민사회단체 기자회견이 개최됐다. 정부는 2022년부터 2036년까지 송변전설..

대전에 고성능 AI GPU 거점센터 구축... 글로벌 AX 혁신도시 거듭
대전에 고성능 AI GPU 거점센터 구축... 글로벌 AX 혁신도시 거듭

대전이 고성능 AI GPU 거점센터 구축을 통해 '글로벌 AX(인공지능 전환) 혁신도시'로 거듭난다. 대전시와 한남대, 한국정보통신기술협회(TTA), ㈜KT, 비케이비에너지(주), ㈜엠아르오디펜스는 17일 '한남대 AX 클러스터 및 고성능 AI GPU 거점센터' 구축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이번 협약은 전 세계적으로 AI 기술 경쟁이 격화됨에 따라 GPU 거점센터 구축을 통해 연구기관과 AI 전문기업을 지원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서다. 거점센터는 한남대 캠퍼스 부지 7457㎡ 규모에 2028년까지 건립될 예정이다. 이날 협약식에..

④ 대전 웹툰 클러스터 `왜 지금, 왜 대전인가?`
④ 대전 웹툰 클러스터 '왜 지금, 왜 대전인가?'

대전시는 오랜 기간 문화 인프라의 절대적 부족과 국립 시설 공백 속에서 '문화의 변방'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민선 8기 이장우 호(號)는 이 격차를 메우기 위해 대형 시설과 클러스터 조성 등 다양한 확충 사업을 펼쳤지만, 대부분은 장기 과제로 남아 있다. 이 때문에 민선 8기 종착점을 6개월 앞두고 문화분야 현안 사업의 점검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특히 대전시가 내세운 '일류 문화도시' 목표를 실질적으로 이루기 위해서는 단순한 인프라 확충보다는 향후 운영 구조와 사업화 방안을 어떻게 마련할는지도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중도일..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성금으로 잇는 희망…유성구 주민들 ‘순회모금’ 동참 성금으로 잇는 희망…유성구 주민들 ‘순회모금’ 동참

  • 시니어 모델들의 우아한 워킹 시니어 모델들의 우아한 워킹

  • 딸기의 계절 딸기의 계절

  • 보관시한 끝난 문서 파쇄 보관시한 끝난 문서 파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