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보기] '검은 백조(Black Swan)' 그리고 정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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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보기] '검은 백조(Black Swan)' 그리고 정인이

대전을지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이창화 교수

  • 승인 2021-01-14 10:40
  • 수정 2021-01-14 13:30
  • 신문게재 2021-01-15 19면
  • 김성현 기자김성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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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지대병원 이창화 교수.
'검은 백조'라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단어다. '백조'는 '하얀 새'인데 '검은 백조'라니…. 하지만 17세기 말에 호주에서 실제로 검은 백조가 발견됐고 이후로 이 단어는 불가능한 것이 실제로 발생하는 것을 의미하는 은유적 단어가 됐다.

미국의 증권분석가인 탈레브는 <블랙 스완>이라는 책에서 검은 백조라는 개념을 "극단적으로 예외적이고 알려지지 않아 발생 가능성을 예측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지만 일단 발생하면 엄청난 충격과 파장을 가져오는 사건"이라고 말했다. 말하자면 블랙 스완이라는 것은 예측할 수 없는 '극단적 사건'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통화전쟁>(Currency wars)의 저자인 제임스 리카즈는 블랙 스완을 '극단적 사건'이 아니라 '일상적 사건의 극단적 결과'라고 말했다. '검은 백조'는 있을 수 없는 '극단적 사건'일까, 아니면 '일상적 사건의 극단적 결과'일까.

지난 연말 온 국민을 분노와 슬픔에 빠뜨린 사건이 있었다. 양부모의 학대 속에 짧고 고통스러운 삶을 마감한 정인이 사건. 온몸의 뼈가 부서지고 췌장마저 파열돼 뱃속에 피가 가득한 상태로 세상을 떠난 정인이의 비극적인 사건을 보고 들으면서 우리는 '세상에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까' 하면서 절망적 분노를 표출했고 양부모를 '악마'라고 비난했다. 우리는 이런 일은 세상에서 있어서는 안 되는 '극단적'인 사건이라고 말했다. 마치 탈레브가 말한 검은 백조(black swan)라는 개념처럼.

과연 정인이 사건은 극단적인 사건이고 그 양부모는 우리와는 다른 극단적인 악마일까?

필자는 종종 학교에서 일어난 집단 폭행의 피해 학생을 진료하곤 한다. 피해 학생과 피해 학생의 부모가 괴로워하며 호소하는 것 중의 하나는 가해 학생의 부모가 사과는 고사하고 폭력을 행사한 자신의 자녀는 잘못이 없고 오히려 피해 학생이 잘못한 것이라고 뒤집어씌운다는 것이다. 때로는 가해 학생이 사과하려고 해도 부모는 네가 뭘 잘못했기에 사과를 하냐면서 부모가 막을 때도 있다고 한다. 잘못한 자녀를 꾸짖어 뉘우치게 하기보다는 자신과 자녀의 이익을 위해 약자인 피해 학생과 그 부모를 공격하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일이 가끔 있는 것이 아니라 많은 경우에 발생한다는 것이다. 약한 사람에게 폭력을 행사해도 벌을 받지 않는 것을 경험한 학생들은 나중에 어떤 사람으로 자랄까?

폭력은 비단 신체적 폭력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사회적 강자가 약자를 지배하기 위해서, 약자의 이익을 빼앗기 위해서 약자에게 강제적으로 행하는 모든 행동이 다 폭력에 해당 된다. 우리는 신문과 방송에서 정치적 권력이 있는 사람들이 약자들을 괴롭히는 사건들을 거의 매일 보고 듣는다. 회사에서 상사가 부하를 부당하게 대하는 것도 폭력이다. 부자들이 더 큰 돈을 벌기 위해서 합법적이라는 명분 아래 가난한 사람들에게 손해를 끼치는 것도 폭력이다. 선배가 후배에게 질서유지라는 명목으로 무언가를 강요하는 것도 폭력이다. 부모가 부당하게 자식들을 야단치거나 자녀가 싫어하는 일을 하도록 강요하면서도 이를 자녀를 위한 교육이라고 착각하는 것도 폭력이다. 또한 자신과 다른 생각, 다른 이념을 가진 집단을 비합리적으로 비난하고 제거하려고 하는 것도 폭력이다. 10분만 인터넷 댓글을 보면 ‘문빠’라고 무조건 비난하는 댓글들, 토착 왜구라고 입에 담을 수 없는 말을 하는 댓글들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그리고 이렇게 다양한 폭력을 행사하면서도 우리는 그 폭력이 정당한 것이라고 스스로 합리화하고 있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에서 생겨난 것이 바로 악마와 같은 정인이 부모인 것이다. 정은이 부모는 우리가 그리고 내가 만든 것이다. 내가 나의 생각과 행동을 뒤돌아보고 고치지 않는다면 제2의, 제3의 정인이 부모가 나타날 수밖에 없고, 또 다른 정인이가 말할 수 없는 고통 속에 삶을 마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정인이 사건에서는 '검은 백조'가 있을 수 없는 '극단적 사건'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만들어 놓은 '일상적 사건의 극단적 결과'일 따름이다. 대전을지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이창화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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