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보기] 사자가 사람의 말을 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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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보기] 사자가 사람의 말을 한다면

대전을지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이창화 교수

  • 승인 2021-09-02 10:21
  • 신문게재 2021-09-03 19면
  • 김성현 기자김성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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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지대 이창화 교수.
"성격이 너무 달라서 대화가 안 돼요.", "내 마음을 조금이라도 이해하려고 하지 않아요. 자기주장만 해요." 부부간의 갈등으로 진료실을 찾은 환자에게 흔히 듣는 말이다.

2019년도에 우리나라에서 23만 쌍의 부부가 이혼했으며, 이 중에서 성격 차이로 헤어진 비율이 43%였다고 한다. 서로 사랑해서 결혼했지만, 성격이 안 맞는 배우자와는 더 이상 살기 어려워서 헤어진 부부가 이렇게나 많다는 것이다.

성격의 차이라는 것은 서로의 가치관, 세계관, 도덕관 등이 달라서 같은 상황에서 생각하고 느끼는 것이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때문에 대화하거나 어떤 결정을 할 때 갈등을 겪게 되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배우자가 내 마음을 잘 이해하게 만들고, 내가 반려자의 마음을 잘 이해할 수 있을까? 답을 말한다면 그것은 매우 어렵다고 답할 수밖에 없다.

비트겐슈타인은 <철학적 탐구>라는 책에서 '사자가 사람의 말을 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그 말을 이해할 수 없다'라고 말하였다. 성장한 환경, 개인의 경험이 다르다면 같은 말을 하더라도 서로를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음식을 먹는다고 말을 할 때 사자는 다른 사냥을 해서 날것으로 먹는 것을 생각할 것이지만 사람은 그런 생각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음식을 먹는다'라는 말의 의미가 사자와 사람에게는 전혀 다른 의미가 되는 것이다.



발달심리학에는 다양한 학설들이 있는데 모든 학설에서 공통으로 말하는 것 중의 하나가 심리발달과정에서는 삶의 초기, 즉, 생후 1세에서 2세 사이, 더 길게는 3세까지가 가장 중요한 시기라는 것이다. 성격이 형성되는 되는 데는 타고난 기질적인 것도 중요하지만 이 시기에 부모와의 상호작용을 비롯한 여러 가지 경험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서로 다른 부모에게서 태어나서 양육을 받았고, 다른 집에서 다른 음식을 먹으며 서로 다른 것을 보고 자랐다. 그렇기 때문에 가치관, 세계관, 도덕관이 서로 다를 수밖에 없고 다른 것이 당연한 것이다. 비록 부부 사이라고 하더라도 같은 상황에서 서로 다른 생각을 하고, 같은 것을 보면서도 서로 다른 감정을 갖게 되며, 같은 말을 하더라고 그 말의 뜻을 서로 다르게 해석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부부간의 갈등은 성격이 다르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부부간의 갈등은 서로 성격이 다르다는 것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내 아내, 내 남편은 나와는 다르다는 것을 인정한다고 말을 한다. 그러면서도 "아무리 그래도 최소한 이 정도는 이해해주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아무리 다르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많이 말했으면 조금은 알아줘야 하는 거 아니에요?"라고 하면서 여전히 억울해하고 서운해하고 분노를 표현한다. '온전히'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이다.

성경의 고린도전서에는 "몸은 한 지체뿐만 아니라 여럿이니……. 만일 온몸이 눈이면 듣는 곳은 어디며 온몸이 듣는 곳이면 냄새 맡는 곳은 어디냐"라는 말씀이 있다. 서로 다른 신체 부위지만 그 부위들이 있는 그대로 중요하고 가치가 있다는 말씀이다. 성철스님은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라고 말을 하면서 사물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였다. '온전히' 받아들임은 바로 이런 것이다. 나와는 다른 내 배우자의 성격이 그 자체로 중요하고 가치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내 아내의 성격 바뀌기를 바라고 내 남편이 나와 같은 생각을 하기를 바란다면 그것은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다. 배우자가 날 이해하도록 하거나, 내가 내 배우자를 이해하려고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 아내, 내 남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 성격을 존중해주는 것이다. 그렇게 할 때 내 아내, 내 남편과의 갈등은 사라지게 되고, 두 사람 간의 사랑이 완성을 향해 나아갈 수 있으며, 또 내 자신의 삶도 더 풍요롭고 아름답게 될 것이다.

이창화 대전을지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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