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디세이] 그리운 우리 선생님!

  • 오피니언
  • 시사오디세이

[시사오디세이] 그리운 우리 선생님!

김정태 배재대 글로벌비즈니스학과 교수

  • 승인 2023-07-31 08:37
  • 윤희진 기자윤희진 기자
김정태 배재대 영어과 교수(시사오디세이)
김정태 교수
요즘 뉴스를 보기가 무섭다. 초등학교 선생님이 학생에게 폭행을 당했고, 심지어 학부모의 악성 민원에 시달리던 젊은 선생님은 교내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교권이 바닥에 떨어진 것이다. 문득 초등학교 때 나를 사람으로 만들어주셨던 '우리 선생님'이 생각난다.

80년대 초반, 나는 동해안 작은 어촌에서 초등학교에 다녔다. ‘땡땡땡’ 종소리와 함께 새로운 담임 선생님이 들어오시면서 신학기 첫날 아침 조회가 시작되었다. 약간 각진 얼굴의 젊은 선생님은 키가 정말 큰 느낌이 들었다. 그분은 칠십육 명이나 되는 아이들 이름을 한 명씩 부르시면서 유심히 우리 얼굴을 살펴보셨다. 그리고 나서 약간 단호한 어조로 말씀하셨다.

"친구들하고 친하게 지내라. 그리고 이게 우리 교훈이다!" 선생님은 분필을 들고 칠판에 크게 우리가 일 년 동안 매번 외쳐야 할 교훈을 적기 시작하셨다. "공부해서 남 주자! 자 따라 하자. 공부해서 남 주자! 세 번 복창한다. 실시!" 우리는 이날부터 5학년이 끝날 때까지 매일, 이 교훈을 외치고 또 외쳐야 했다. 가끔 꿈에서 환청이 들릴 정도였다.

잠시 후 한 아이가 드르륵 문을 열고 들어왔다. 며칠 감지 않은 듯 떡진 머리에 웃옷은 털면 금방이라도 이가 떨어질 듯 꾀죄죄했다. 낡은 검은색 바지는 오다가 넘어진 듯 흙먼지가 묻어 있었다. 어느 누구도 그 아이와 짝을 하고 싶은 사람은 없었다. 그렇지만 콩나물시루처럼 빽빽하게 들어찬 교실에서 혼자 앉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 아이는 한참 둘러보다가 쭈뼛쭈뼛 내 옆에 와서 앉고 말았다. 무슨 비릿한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나는 슬며시 코를 잡고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이어서 선생님은 복장검사와 실내화 검사를 하셨다. 그리고 내 옆에 앉은 아이가 맨발인 것을 발견하셨다. 그 많은 아이 중에 유일하게 실내화가 없었던 것이다. 3월 초 마룻바닥은 꽤나 차가운 편이었다. 조회가 끝나고 잠시 교무실에 다녀오신 선생님 손에는 실내화가 한 켤레 들려 있었다. 그리고 그 아이에게 그 신발을 신겨주셨다. 선생님은 머리를 쓰다듬으시면서 한마디 하셨다. "공부해서 남 주자!"

우리 반은 유난히 말썽꾸러기들이 많았다. 매일 숙제를 안 해오는 아이들이 많았고 지각을 하는 아이들도 많았다. 그리고 싸움이 붙을 때도 많았다. 선생님은 그때마다 칠판 위에 올려놓았던 회초리를 내렸다. 규율을 지키지 않은 아이들은 바지를 걷고 회초리를 맞았다. 가끔은 자습시간에 떠들다가 단체기합이라는 이유로 전체가 엉덩이를 맞았다. 학교에서 선생님에게 맞은 것은 집에 가면 절대 비밀이었다. 만약 부모님이 아시는 날에는 오히려 꾸중을 호되게 들을 것이 분명했다.

어느 날 아버지께서 선생님께 보내는 편지를 써 주셨다. 어떤 내용인지 살짝 편지를 꺼내 보았다. 아버지는 선생님께 최고의 예의를 갖춰서 글을 쓰셨고 마지막에 이렇게 쓰셨다. "저희 아이가 부족하오니 많이 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나는 그때 우리 부모님이 자식을 때려 달라고 부탁하시는 분들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때는 그걸 당연하게 생각했다.

4월로 들어선 어느 이른 아침, 학교 숙직실 앞에서 놀라운 광경을 목격하고 말았다. 우리 담임 선생님이 어떤 아이의 머리를 감겨주고 수건으로 말려주고 계셨다. 그날 이후로 내 짝은 깔끔하게 변해 있었다. 그 친구의 더러웠던 셔츠와 바지는 낡았지만 깨끗하게 세탁이 되어 있었고, 머리도 짧게 정돈돼 있었다.

공부를 포기했던 아이가 내게 자꾸 교과서 내용을 물어보기 시작했다. 그 아이의 생각과 태도가 달라진 것이다. 그 후 나는 그 친구와 초·중·고 동창이 됐다. 그리고 그 친구는 서울에 있는 대학교에 진학했다.

그때 우리가 선생님에게 배운 것은 단순한 한마디였다. "공부해서 남 주자!" 그리고 남을 배려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배웠다. 선생님은 잘못한 것은 따끔하게 회초리로 때려서라도 그 잘못을 깨닫게 해주셨다. 공부를 잘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내 마음에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아침, 우리 선생님이 무척이나 그립다!

/김정태 배재대 글로벌비즈니스학과 교수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민주당 절반의 성공·국힘 예상외 선전… 내란청산·정권심판 팽팽
  2. 국민의힘 백성현 후보, 52.63% 논산시장 재선 성공
  3. '서산지역 충남도의원 선거 판 뒤집혔다' 서산, 더불어민주당 모두 석권
  4. [2026 지선] 세종시의회 '민주당 18석·국힘 3석' 재편
  5. [숏폼영상] 허태정, 4년 만에 대전시장 복귀… 시민 선택 받았다
  1. [2026 지선] 12년 만에 '세종교육감' 바뀌나… 강미애 1위 굳히기
  2. [2026 지선 투개표 이모저모]"이재명 대통령처럼 나도 한번"
  3. 진주시의회권력, 4년 만에 판이 바뀌었다
  4. [2026 지선] 세종교육감 임전수 후보, 오차범위 밖 '우세'
  5. 이제는 '23대 총선' 앞으로… 6·3 지선 충청권력 구도 개편

헤드라인 뉴스


더불어민주당 `금강벨트` 압승… 충청 지방권력 전면교체

더불어민주당 '금강벨트' 압승… 충청 지방권력 전면교체

3일 막을 내린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는 8년 전 치른 제7회 지방선거와 같이 더불어민주당의 압승으로 끝났다. 민주당은 충청권 광역 지방정부 수장인 4개 시·도지사를 석권한 데 이어 양대 축인 4개 광역의회 또한 다수당 지위를 확보하며 충청의 핵심 지방권력을 손에 쥐었다. 국민의힘은 4년 전 제8회 지선에서 차지했던 지방권력을 무기력하게 내주며 지역에서 주도권을 대부분 잃게 됐다. 충청에서 이겨야 선거에서 승리한다는 정치권 속설이 다시 한번 입증되는 사례가 됐다. 최종 개표 결과, 금강벨트에서 큰 이변은 없었다. 국민의힘이 충청권..

[대입+] 6월 모평 국어·영어 쉬워지고 수학 비슷… 체감 난도는 엇갈려
[대입+] 6월 모평 국어·영어 쉬워지고 수학 비슷… 체감 난도는 엇갈려

2027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가늠자인 6월 모의평가가 전국에서 일제히 치러졌다. 전문가들은 국어는 지난해 수능보다 쉬웠고 수학은 비슷하거나 다소 쉬웠으며 영어는 지난해 수능보다 평이했지만 일부 문항 탓에 체감 난도는 높았을 것으로 내다봤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평가원)은 4일 전국 2124개 고교와 564개 지정학원에서 2027학년도 6월 모의평가(모평)를 실시했다. 평가원은 고교 교육과정의 내용과 수준을 충실히 반영하고 대학 교육에 필요한 수학능력을 측정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김문희 평가원장은 "사교육을 통한 문제풀이 기..

행정수도 시계 빨라지나… 조상호 "올 가을, 특별법 처리 골든타임"
행정수도 시계 빨라지나… 조상호 "올 가을, 특별법 처리 골든타임"

민선 5기 세종시정을 이끌 조상호 당선인이 행정수도 세종 완성과 재정난 등 지역 핵심 현안 해결을 위한 강한 의지를 내비쳤다. 특히 올 가을 정기국회를 행정수도 특별법 처리의 골든타임으로 보고, 연내 입법에 총력을 기울이겠단 입장이다. 더불어민주당 조상호 세종시장 당선인은 이날 오전 세종시청 브리핑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행정수도 세종 완성을 흔들림 없이 추진하겠다"며 "특별법 관철과 개헌을 통해 세종의 새 미래를 열어가겠다"고 밝혔다. 조 당선인은 이번 선거 승리가 단순한 개인의 영광이 아닌, 이재명 정부와 보조를 맞춰 세종의 미..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지방선거 끝…선거벽보 철거 지방선거 끝…선거벽보 철거

  • 분주한 개표소 분주한 개표소

  • 허태정 대전시장 후보 당선 ‘확실’ 허태정 대전시장 후보 당선 ‘확실’

  • 출구조사에 ‘엇갈리는 희비’ 출구조사에 ‘엇갈리는 희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