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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만희 대전지방보훈청장이 문충사를 점검하고 있다. (사진=대전지방보훈청 제공) |
이번 조사는 광복절을 맞아 독립운동 관련 현충시설 3곳을 현장 방문해 시설 내·외부, 안내판, 주변 환경 등을 점검한다. 필요 시 시설에 대한 개보수를 지원한다.
보훈청은 12일 한말 일제에 항거한 유학자이자 우국지사인 송병선(宋秉璿)·송병순(宋秉珣)형제의 위패와 영정을 모신 사당, 문충사를 점검하기도 했다.
문충사는 원래 1908년 충북 영동에 건립됐다가, 송병선 선생의 순국 60주년 기념사업의 하나로 1966년 선생의 순국지인 대전 동구 용운동으로 옮겨간 바 있다. 1989년 대전시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됐다.
송병선 선생(1836년 8월 24일~1905년 12월 30일)은 충남 회덕 출생으로 1882년 공조참판 사헌부대사헌에 임명되었으나, 사임하고 충북 옥천에 내려가 유학을 가르치며 지냈다.
1905년 11월, 일제가 강제로 을사늑약을 체결하고 국권을 박탈하자 상경해 고종을 알현하고 을사5적의 처단과 을사늑약의 파기를 건의, 을사늑약 반대 투쟁을 계속하다가 강제로 향리에 호송됐다. 이에 선생은 국권을 빼앗김에 통분하여 세 차례 다량의 독약을 마시고 황제와 국민과 유생들에게 드리는 유서를 남기고 자결 순국했다. 유서에서는 을사5적을 처형할 것, 을사늑약을 파기할 것, 국권을 되찾을 것 등을 호소했다. 고종황제는 선생의 충절을 기리어 1906년 2월, '문충공(文忠公)'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정부는 선생의 충절을 기리어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송병순 선생(1839년 4월 10일~1912년 2월 4일 )은 을사늑약에 반대하며 순절한 송병선 선생의 동생이다. 1905년 11월, 일제가 을사늑약을 강제 체결하고 국권을 침탈하자 이에 대한 반대 투쟁을 전개하여 일제 침략을 규탄하고 을사5적을 성토하는 토오적문(討五賊文)을 지어 전국 유림에게 배포하고 국권회복에 궐기할 것을 호소했다. 1910년 8월, 경술국치에 통분해 여러 번 자결을 기도했으나 실패하고 두문불출해 망국의 슬픔을 시로써 달랬다. 1912년, 일제가 회유책으로 경학원 강사로 천거하자 이를 거절하고 유서를 남기고 독약을 마셔 순국했다. 정부는 선생의 충절을 기리어 1977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강만희 대전지방보훈청 청장은 "광복절이 다가오는 만큼 독립운동 관련 현충시설에 대한 점검을 진행할 것"이라며 "이번 현장 점검을 통해 개보수가 필요하다고 판단된 현충시설은 해당 시설을 소유하고 관리하는 지방자치단체 등에 요청해 개보수를 진행하는 등 현충시설 관리에 만전을 기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바름 기자 niya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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