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동길의 문화예술 들춰보기]사악함 날리는 자연

  • 오피니언
  • 여론광장

[양동길의 문화예술 들춰보기]사악함 날리는 자연

양동길/시인, 수필가

  • 승인 2025-05-09 00:00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사람은 사람사이에 있어서 사람이다. 사고와 언어 능력이 있어 문명과 문화, 사회를 이루고 산다. 그러나 곧잘 향수에 젖는다. 처음 머물던 곳이 있으니, 어머니 품속, 고향, 자연 등이다. 필요에 따라 옮겨 살지만, 늘 그 곳이 그립다. 옛 말을 빌리자면 수구초심(首丘初心)이다. 여우가 죽을 때 자신이 살던 언덕 쪽으로 머리를 두는 것과 같다. 근본이 그리운 것이다. 류시화 시인의 노래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에 등장하는 '은밀한 내 꿈과 만나는 이'가 누구에게나 있는 것 아닐까?

아파트에는 땅으로 된 자신만의 공간이 없다. 근본에 대한 그리움을 베란다에서 종종 푼다. 창안으로 텃밭, 정원 등이 눈에 띈다. 밖에서 보이는 것, SNS에 올라온 이미지가 전부여서 속속들이 알기는 어렵다. 선반, 벽걸이 선반, 이동식 화분대 등이 보이기도 한다. 우리 집 베란다엔 화분 30여개가 자리 잡고 있다. 다른 사람에게 주고 남은 허름한 것이다. 듬뿍 정성들이진 못하지만, 자주 들여다보게 된다. 각기 다른 생명의 신비, 시시각각 피어나는 꽃, 자연과 더불어 사는 즐거움이 있다. 소통이랄까, 알아가는 재미도 쏠쏠하다.

떠올려 보면 지금과 같은 세태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다. 고서화에는 우아한 산수, 고목죽석류가 많이 등장한다. 아름답고 자연친화적이기 때문이다. 자연은 인간의 스승, 어머니 품과 같은 것이다. 동양에서는 말 그대로 '스스로 그러함'으로 보았다. 인공이 가해지지 않은 천연 그대로의 산, 강, 바다, 동물, 식물, 비, 바람, 구름 따위이다. 스스로 생성소멸하며 변화한다. 도가에서는 자연의 의도대로 되기 위해 완전한 무작위 상태에 도달하려 애썼다. 자연에 순응하며 조화롭게 사는 것이다. 노자는 무위자연을 주장하지 않았는가, 자연과 동화되어 살려는 노력도 아끼지 않았다. 그를 누워서 즐기기(臥遊) 위해 방안에 걸어두었다.

자연이 조금씩 멀어지기 시작하자, 그 품이 그리워 울안으로 끌어들이기 시작한다. 생활공간에 가산을 만들어 산수의 고매함 즐기려한다. 뜨락에 자연을 만든다. 수목, 화초와 더불어 자연석을 가져다 놓는다. 중국 쑤저우(蘇州市) 타이후(太湖) 주변에서 나는 돌, 태호석이 사랑 받았다. 태호석은 구멍이 숭숭 나고 복잡, 기괴한 모양이다. 경관석을 이르는 보통명사처럼 되었다. 쑤저우는 원림으로 유명하다. 왕가, 민간 가리지 않고 즐겼다. 우리도 다르지 않아, 궁궐에 태호석이 보인다. 특히 창덕궁엔 태호석이 많이 있다.



울안에 들여 놓고 즐기는 것으로 부족했을까? 실내에 들여 놓고 생활 깊숙이 즐기려 하였다. 바로 수석이다. 이 전에 게재했던 바가 있다. 자연석에 자연의 오묘한 아름다움이 흥미진진하게 담겨있다. 수석 그 자체가 땅의 기록이자, 화석, 석각, 고분벽화, 거석문화 등 자연사의 징표이다. 땅의 기록인 것이다. 한때는 유행하여 너나없이 괴석을 찾아 나섰던 기억이 난다. 사람마다 선호도가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석질이 좋아야 하고 개성이 있어야 하며 멋있어야 한다. 산수가 축소된 산수경석, 어떤 형체를 닮은 물형석, 표면에 문양이 있는 무늬석, 다양한 색상이 함께 있는 색채석, 심상을 자극하는 추상석, 전해오는 역사가 담긴 전래석 등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시각은 달라도 진지하게 만나고 즐긴다.

자연을 가꾸고 즐기는 사람 중에 악인이 어디 있으랴. 산수(山水)는 자연의 다른 말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하고 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하며, 지혜로운 사람은 동적이고 어진 사람은 정적이며, 지혜로운 사람은 즐겁게 살고 어진 사람은 장수한다."

논어 집주에 의하면, 지혜로운 사람은 사리에 밝아 물 흐르듯 막힘이 없다. 지혜를 얻으려 돌아다니기를 좋아하고 그러한 것들을 즐기며 산다. 어진 사람은 의리를 중히 여겨 그 중후함이 산과 같다. 정적이며 집착하는 것이 없어 오래 산다.

우리는 인격체가 되기 위해 산다. 인격은 인간으로서 살아가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도리이다. 산수는 우리의 본향이자 진리와 정의다. 진리와 정의가 죽으면 반드시 패망한다. 그에서 벗어나고자 한다면, 먼저 산수를 즐기자.

양동길/시인, 수필가

양동길-최종
양동길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이진숙 교육부 장관 후보자는] 거점국립대 첫 여성총장… 미래인재 육성·교육 균형발전 기대
  2. 취임한달 영호남 챙긴 李대통령 충청만 박탈감
  3. 교육청-학교 책임 떠넘기기? "대전가원학교 지금 당장 휴업하라"
  4. [사건사고]물놀이 50대 다이빙 후 하반신 마비호소…교통사고 70대 운전자 사망
  5. '다시 집, 다시 학교로' 학업중단 위기 청소년 품는 대전교육청 남학생가정형Wee센터
  1. 이진숙 교육장관 후보자 첫 출근 "서울대 10개 만들기, 사립대·지방대와 동반성장"
  2. 4년제 대학 신입생 74.7%가 일반고 출신… 기회균형선발 9.3%
  3. '개원 53년' 조강희 충남대병원장 "암 중심의 현대화 병원 준비할 것"
  4. 갑천 국가습지 보전대책 본격화…교란식물 제거·울타리 설치
  5. 재료연 AI가 실험하는 자율실험실·전기연 대형 시험설비 현장 가 보니

헤드라인 뉴스


일제시대 보문산별장 복원… 한·일교류 상징시설 될까

일제시대 보문산별장 복원… 한·일교류 상징시설 될까

일본인이 조선의 온돌과 일본의 다다미를 결합해 보문산에 지은 별장의 복원 공사가 완료됐다. 별장 주변에 나무를 심어 조경 복원만 남겨두었으며, 쓰지 만타로의 아들이면서 대전에서 나고 자란 쓰지 아츠시(87) 씨의 바람대로 일본과 한국 교류의 상징이면서 시민 휴식시설이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대전시 공원관리사업소는 보문산 야외음악당에 오르는 길목에 있는 쓰지 만타로(1909~1983)가 지은 근대식 별장의 복원을 최근 마쳤다고 밝혔다. 보문산 중턱에 정남향으로 세워진 2층 건물로 현관과 햇볕 잘 드는 테라스를 겸한 복도, 침실 1·..

대전시 스포츠 마케팅 매력에 `흠뻑`
대전시 스포츠 마케팅 매력에 '흠뻑'

지역 연고 프로야구단인 한화이글스의 성적과 인기가 치솟으면서 대전시가 이를 활용한 도시마케팅에 적극 나서고 있어 주목을 끈다. 6월 30일 대전시에 따르면 시는 7월 1일 한화이글스 소속 류현진 선수를 대전시 홍보대사로 위촉한다. 이와함께 류현진·오상욱 선수-꿈씨패밀리 굿즈 공동브랜딩 업무협약을 체결할 예정이다. 홍보대사는 도시브랜드 위상을 높이고 대내외 시정 홍보를 강화하기 위해 지정한다. 대전시는 펜싱황제 오상욱과 트롯가수 김의영, 축구선수 황인범, 배우 이필모 등 20여명을 홍보대사로 위촉했다. 메이저리그에서도 뛰어난 활약을..

전국 준공 후 미분양 늘어나는데 충청권은 소폭 `감소`
전국 준공 후 미분양 늘어나는데 충청권은 소폭 '감소'

전국적으로 악성 미분양으로 불리는 '준공 후 미분양'이 증가하고 있는 가운데, 충청권은 소폭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토교통부가 30일 발표한 '5월 주택통계'에 따르면 5월 기준 전국 준공 후 미분양 주택은 2만 7013세대로 전월보다 2.2%(591세대) 늘었다. 이는 2013년 6월(2만 7194세대) 이후 11년 11개월 만에 가장 큰 규모다. 준공 후 미분양은 2023년 8월부터 22개월 연속 증가세를 이어가고 있다. 준공 후 미분양은 지방에서 두드러졌다. 2만 2397세대로 83% 비율에 달했다. 지역별로 보면, 대구가..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대전사랑카드 7월1일부터 본격 운영 대전사랑카드 7월1일부터 본격 운영

  • 더위 피하고 밥값 아끼고…구내식당 ‘북적’ 더위 피하고 밥값 아끼고…구내식당 ‘북적’

  • 무더위 날리는 물줄기 무더위 날리는 물줄기

  • ‘장마철 타이어 점검은 필수입니다’ ‘장마철 타이어 점검은 필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