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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여론조사전문기관 메타서치지속가능미래연구원이 중도일보 4층 대회의실에서 '사회 양극화와 갈등 해소를 위한 정책 토론회'를 개최했다./사진=이성희 기자 |
정치권의 극단적 대립은 세대·계층·젠더·지역 갈등과 얽혀 일상 속 불신과 혐오로 번진다.
'두레'와 같이 전통적으로 우리 지역 사회를 지탱해 왔던 공동체의 힘도 요즘 들어선 시들해 졌다.
이처럼 갈등과 대립, 반목이 일상화된 사회, 정치의 역할은 무엇일까.
어떻게 해야 지역과 생활공동체가 쏟아내는 갈등을 품어낼 수 있을까.
여론조사전문기관 메타서치지속가능미래연구원은 이 해법을 찾기 위해 9일 대전 중도일보사 4층 대회의실에서 '사회 양극화와 갈등해소를 위한 정책 토론회'를 열었다.
토론회에선 세대·계층·젠더·지역을 가로지르는 한국 사회의 다층적 갈등을 진단하고, 정치·언론·자치 현장에서 이를 풀어낼 대안을 모색했다. <편집자 주>
▲주최 ㈜메타서치 지속가능미래연구원
▲발제: 권선필 목원대 교수: 정치 극단화 원인과 해결방안
은재호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수: 한국사회 양극화의 원인과 해법
▲좌장: 허재영 전 국가물관리위원장
▲토론: 최호택 배재대 교수
원성수 전 공주대 총장
신원식 전 대전MBC 사장
강제일 중도일보 정치행정부장(부국장)
발제Ⅰ:정치 극단화 원인과 해결방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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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선필 목원대 교수. |
그는 자신의 가정과 교회, 학교 현장에서 겪은 사례를 통해 "갈등은 점점 미시화되고 있으나 해결의 자원은 오히려 대형화·중앙집권화됐다"고 분석했다.
특히 권 교수는 한국 정치제도의 구조적 한계를 문제 삼았다. 그는 "제왕적 대통령제와 승자독식 선거제도는 두 편으로 나뉘어 이기고 지는 것 외엔 선택지가 없다"며 "국회·정당이 자율성을 잃고 파벌 정치와 혐오 정치가 일상화됐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세대·계층·젠더·지역 갈등이 서로 뒤엉켜 중층적으로 악화되는데, 이를 흡수·조정할 '생활 정치' 공간은 없고, 모든 갈등이 중앙 정치로만 몰린다"고 했다.
이에 권 교수는 해법으로 '분권과 자치의 복원'을 강조했다.
첫째, 대통령 권력구조를 분산하고 국회·정당 민주화를 실질화해야 한다. 둘째, 지방자치와 주민자치를 실질화해 생활권과 행정구역의 불일치를 바로잡아야 한다며 특히 서구 갑천 일대의 지적도 불일치 사례를 직접 언급해 "수십 년 동안 행정구역이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고 꼬집었다. 마지막으로는 공동체·민간 차원의 자치 역량 강화를 강조했다.
권 교수는 "IMF 이후 한국은 OECD 국가 중 계층 고착성이 가장 높은 나라가 됐다"며 "더 이상 위에서 해결해주길 기대하기보다는 '아래로부터의 해결'을 위한 사회적 실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발제Ⅱ: 한국사회 양극화의 원인과 해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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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재호 KAIST 교수. |
은재호 교수는 '한국 사회 양극화의 원인과 해법'을 구조적·맥락적 요인으로 나눠 분석했다.
맥락적 요인으로는 소득·고용 불안과 기회 불평등, 구조적 요인으로는 기후·기술·인구 변화를 지목했다.
특히 "한국은 과거 발전국가 모델로 성장했지만, 97년 외환위기 이후 국가 역량과 자율성이 급속히 약화됐다. 오히려 재벌·금권 정치에 종속됐다"며 발전국가 모델의 한계를 짚었다. 그러면서 "국가가 사회를 견인하던 역량이 약화되면서 불공정·불균형이 심화됐고, 엠프세대·해조선 같은 단어가 청년들 일상어가 됐다"고 말했다.
은 교수는 이를 정치 양극화의 원인이자 결과로 분석했다.
그는 "한국 사회의 양극화는 경제적·사회적 요인이 얽혀 정서적 양극화로 번진다. 이제는 혁신 주도형 성장과 '정의로운 전환(Just Transition)'이 해법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은 교수는 특히 '사회적 대화'와 '공론화'의 제도화를 핵심으로 제안했다. 그는 "한국 정치가 승패만 가르는 대의 민주주의로는 더 이상 갈등을 해결할 수 없다. 숙의민주주의, 공론화 과정을 통해 참여와 성찰, 평등한 토론이 가능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 신고리 5·6호기, 경기도 기본소득 공론화 등 국내 사례와 해외 사례를 언급하며, "공론화는 정책 지지와 사회적 수용성을 높인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공론화의 한계도 분명하다. 말 잘하는 소수의 왜곡 가능성과 합의 형성의 어려움은 보완해야 한다"며 제도적 정착의 필요성을 덧붙였다.
토론자 주요발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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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원식 전 대전MBC 사장. |
신원식 전 사장은 한국 언론계의 현실을 되짚었다.
그는 "우리가 술자리나 모임에서 정치 얘기를 피하는 풍토는 갈등 해결의 대화를 스스로 차단한 것"이라며 "정치 얘기를 터놓고 해야 갈등을 풀 수 있다"고 말했다.
신 전 사장은 특히 SNS와 알고리즘 환경을 지적했다.
그는 "미얀마 로힝야 학살 사례처럼 가짜뉴스가 증오를 부추기는 것은 이미 세계 곳곳에서 증명됐다"며 "한국도 SNS를 통해 사실관계보다 자극적 주장, 혐오 발언이 훨씬 빠르게 퍼진다"고 말했다.
신 전 사장은 이를 '개소리 사회(Bullshit Society)'라고 직설적으로 표현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레거시 미디어의 책임이 더 무겁다. 언론은 검증된 정보와 다양한 관점을 제공해야 한다"며 "억지로 표현의 자유를 막는 게 아니라 시민들이 스스로 걸러낼 수 있게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기성 언론도 유튜브 환경에서 좋은 콘텐츠로 경쟁해야 한다"며 "언론사가 신뢰할 수 있는 플랫폼으로서 시민들이 스스로 판단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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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성수 전 공주대 총장. |
원성수 전 총장은 "정치 양극화보다 더 무서운 게 정서 양극화다. 상대를 인정하지 않고 내 편, 네 편으로만 나눈다"며 갈등의 본질을 '정서 양극화'로 짚었다.
그는 교육자이자 행정학자로서 그는 '중도의 힘'을 강조했다.
그는 "총장 시절엔 학교 발전과 화합이 중요했지, 이념은 큰 문제가 아니었다. 그런데 현실 정치로 오니 '어느 쪽이냐'부터 묻는다"며 "중도가 허약해지면 양극화는 더 깊어진다"고 비판했다.
이어 그는 "수도권과 비수도권 불균형은 국회 구조에서도 심화된다. 지역 대표성이 살아야 지방이 산다"며 기초단체부터 정당공천제 폐지 실험, 양원제 도입 필요성을 언급했다.
주민자치 수준에서의 갈등 조정 역량도 강조했다.
그는 "주민자치협의회가 정당의 최전선 조직으로 변질되면 오히려 권력싸움만 남는다"며 "민간 자치가 갈등을 흡수하도록 시간·공간·참여 구조를 다시 짜야 한다"고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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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일 중도일보 부국장. |
강제일 부국장은 "정치가 가장 재미있고 가장 비극적인 현장"이라며 입을 열었다.
그는 특히 '선거 주기'와 '네거티브 정치'를 원인으로 꼽았다.
강 부국장은 "2년에 한 번씩 선거가 돌아오니 서로 상대 약점만 파헤친다"며 "'우리가 낫다'는 주장 대신 '저쪽이 문제다'라는 부정 메시지만 남는다"고 비판했다.
이에 그는 "대통령과 여야 대표가 만나는 자리를 왜 정례화하지 않는가. 극적으로 한 번 만나면 뉴스는 되지만 문제는 안 풀린다"며 여야정 협의체를 예로 들며 구조 개선을 주문했다.
강 부국장은 "기자들이 소위(小委) 회의 문 앞에서 기다리며 발로 뛰던 현장성을 잃으면, 국회가 제 역할을 못 한다"고도 꼬집었다.
그는 마지막으로 "정치 신뢰를 회복하려면, 여야가 국민 앞에서 자주 만나고 토론해야 한다"며 "상시 소통 테이블이 필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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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호택 배재대 교수. |
최호택 배재대 교수는 한국 정치가 '갈등을 만드는 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최 교수는 "대통령부터 대기업 CEO까지 끝이 아름다운 사람을 못 봤다. 마지막은 불행과 혐오로 끝난다"며 한국 정치인이 권력으로 기쁨 대신 갈등만 키운다고 지적했다.
그는 의원내각제 전환과 연립내각 협정서 헌법 명문화, 중대선거구제·양원제 도입, 법조인 과잉 해소 등 구체적 제안을 쏟아냈다.
최 교수는 "대통령제가 이기면 다 가지는 구조라 개헌이 어렵다. 권력 구조를 나누고, 연정 협정서를 헌법에 담아야 한다"며 후보 다양화와 법조인 과다 문제, 지역 불균형 해소를 위한 중대선거구제, 양원제 도입 등 현실적 대안을 잇따라 제시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시민사회와 언론의 역할을 짚었다.
최 교수는 "갈등의 시대에 시민사회와 언론이 공론장을 실험해보라"며 언론과 대학, 교회 등 생활 속 자치 실험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최화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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