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박범정 태평양노무법인 (대전) 대표노무사 |
작금의 저출산·초고령화로 노동인구가 줄어드는 시대에 정년은 한 세대의 복지 문제가 아니라 노동시장 설계의 문제다. 같은 제도라도 대기업과 중소기업, 제조업과 서비스업에서 충격의 크기는 다르게 나타날 수 밖에 없다.
기업 현장에서 만난 세 가지 장면이 이를 보여준다. 첫째, 직원 280명 규모 자동차부품 제조업체인 A사는 3교대 라인에서 50대 후반 숙련자가 품질과 안전을 지탱한다. 정년연장 자체에는 찬성하지만, 연공급 구조에서 65세로 '일괄' 늘리면 60세 이후 5년이 고정비 급증으로 직결된다.
이 회사는 정년 60세를 유지하되 퇴직 후 1년 단위 촉탁계약직 재고용(최대 63세)으로 숙련을 남기고, 야간·고강도 공정 대신 주간 품질·교육·예방점검 직무로 전환했다. 임금도 호봉이 아니라 직무 중심으로 설계해 비용과 안전을 함께 관리했다.
둘째, 직원 70명 식품·물류 사업장인 B사는 청년 채용이 번번이 실패하자 외국인 노동자로 공백을 메우고 있다. 여기서 정년을 65세로 올리면 생산성보다 인건비 부담이 먼저 커지고 신규채용 여력은 더 줄 수 밖에 없다. 이곳은 '풀타임 연장'이 아니라 정년 이후 재고용을 시간선택·부분근로로 열어 상황에 맞춰 주 3~4일, 특정 시간대 근무를 허용하고, 나머지 구간을 청년·신입직원이 채울 수 있도록 공정을 쪼갰다. "사람을 오래 쓰기"보다 "버틸 수 있게 일의 형태를 바꾸기"가 먼저였던 셈이다.
셋째, 150명 규모 IT서비스 업종인 C기업은 정년보다 '직무의 수명'을 더 두려워한다. AI가 고객응대, 문서·기획, 단순 개발업무까지 대체하며 5년 뒤 직무가 남을지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이 회사는 정년 논의와 별개로 직무·역량 중심 임금체계로 전환하고 50대 이상을 대상으로 재교육·직무전환 트랙을 운영했다. 고령자 고용의 핵심은 연령이 아니라 이동 가능한 통로였다.
정년연장이 임금체계개편으로 이어지는 이유도 여기 있다. 연공급은 안정적이지만 정년이 길어질수록 기업 부담이 커진다. 임금피크제가 '대안'으로 쓰였으나 최근 판례 흐름은 정당성을 엄격히 따져 단순한 '정년 연장에 따른 임금 삭감' 교환은 점점 어려워졌다.
결국 직무 재설계, 합리적 평가기준, 투명한 전환절차가 없으면 노사 갈등만 증폭 될수 있다. 노동자는 생계와 존엄을, 사용자는 비용과 지속가능성을 말한다. 둘 다 옳다. 다만 우량 일자리 부족과 청년실업이 공존하는 현실에서 획일적 정년연장이 '일자리 막힘'으로 체감될 수 있다는 점은 경계해야 한다. 사오정·오륙도의 불안을 줄이려다 이태백의 절망을 키워서는 안 된다.
따라서 해법은 충분한 숙의과정을 거쳐서 '현장 맞춤'으로 찾아야 한다. 특히 업종별 위험도·생산성, 청년채용 여력, 고령자의 건강과 직무적합성까지 함께 보는 정교한 논의가 필요하다.
결론은 명확하다. 정년 60세 법을 65세로 일괄 상향하는 방식은 현장 격차를 무시한 거친 칼이다. 법은 숫자를 고정하기보다 '65세까지의 고용기회 보장'이라는 목표를 세우고, 업종·규모별로 선택 가능한 메뉴를 넓혀야 한다.
예컨대 첫째 정년연장에 따른 직무급 전환 방식, 둘째 정년은 유지하되, 촉탁 계약직 재고용 방식, 셋째 단계적 연장에 따른 시간선택·부분근로 확대 등 세 가지 방식을 기업 현장에서 자율적으로 선택하게 하는 것이다. 대신 선택권이 남용되지 않도록 차별 금지, 임금·처우의 합리성, 건강·안전, 전환교육 지원 같은 최소 기준과 정부의 사업장 정년 연장 전환비용 지원이 병행돼야 한다.
인간은 일하는 기계가 아니다. 오래 일하게 하는 정책이 아니라, 건강하게 일하고 존엄하게 전환하며 일과 여가의 균형을 지킬 수 있게 하는 제도가 필요하다. 정년의 답은 책상 위 숫자가 아니라 현장에서 찾아야 한다. /박범정 태평양노무법인 (대전) 대표노무사
획일적 정년연장보다, 현장이 선택하고 책임질 수 있는 제도, 그 선택권을 법이 보장하는 방식이 지금 우리가 가야 할 길이다. /태평양노무법인 박범정 노무사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박병주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