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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매산 아래 상법마을 다랭이논에서 모를 심고 있는 정용국 씨<사진=정효석> |
차황면 상법마을, 일명 '황매산 아래 차황골'이라 불리는 그곳에서 정용국 씨(49세)는 20년째 고향인 황매산 자락 차황에서 농사를 짓고 있다.
그가 일구는 땅은 300마지기(약 6만 평), 이름만 들어도 정겹고 아련한 '다랭이논'이다.
척박한 경사면을 이고 선 이 논들은 모내기철이면 이앙기를 써도 하루에 심을 수 있는 면적이 제한적이라 한 달 내내 모를 심어야 하는 노동의 연속이다.
그러나 그 노동은 단순한 수고가 아니다.
이 땅에 뿌리를 내린 자만이 느낄 수 있는 의지의 표현이며, 땅과 대화를 나누는 예술이기도 하다.
황매산은 사계절 내내 색을 바꾼다.
봄이면 철쭉이 능선을 붉게 물들이고, 여름이면 짙은 초록의 바다를 이룬다.
가을이면 황금 들녘이 일렁이고, 겨울이면 적막이 대지를 덮는다.
그 풍경 속에서 정 씨는 친환경 유기농법, 자연농법으로 농사를 짓는다.
농약 대신 메뚜기가 잡아먹고, 비료 대신 산바람과 벌레 소리가 논을 키운다.
그래서일까.
그가 짓는 쌀은 '메뚜기 쌀'이라 불린다.
이름만 들어도 정겹고, 웃음이 난다.
가게에선 팔지 않는다.
입소문이 먼저 가고, 마음이 따라간다.
그는 20대 중반, 도시를 떠나 황매산 자락 차황으로 돌아왔다.
같은 또래 고향 친구와 백년가약을 맺고, 지금은 1남 1녀의 아버지다.
누군가에게는 산골이지만, 그에겐 삶의 무대요, 아이들 놀이터요, 땀과 사랑이 묻어나는 터전이다.
정용국 씨가 지키는 건 단지 논밭만이 아니다.
그는 황매산 아래 사라져가는 마을의 숨결을, 잊혀가는 농부의 손맛을, 사계절 다른 표정을 가진 차황의 정서를 지킨다.
그 모습은 마치 황매산처럼 굳세고 조용하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농촌은 자꾸만 작아지지만, 차황 청년 농부는 그렇게 오늘도 논길을 걷는다.
발밑에선 메뚜기가 튀고, 등 뒤로는 바람이 지난다.
우리는 그 쌀을 먹으며 문득 이렇게 말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 밥맛, 참 곱다."
산청=김정식 기자 hanul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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