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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열 수필가 |
그동안 사람을 알아갈 때 "나는 아무거나 잘 먹는다"는 말을 들으면 속으로 '겁!'났다. 그런 사람 앞에서 식성이 까다롭게 비치면 까칠한 사람으로 여겨짐은 가부장적 사회의 당연한 문화였다. 지금은 개인의 음식 취향을 고려해줄 정도로 세상이 많이 변하고 있다. 음식 메뉴를 고르는 일은 섬세한 노력과 공감이 필요하다. 우리는 배려를 받기도 하지만 배려하면서 살아가야 한다.
대전문인협회에서 대만으로 4박 5일 문학기행을 떠났다. 대남(臺南)에서 대중(臺中)을 거쳐 대북(臺北)까지 앞서거니 뒤서거니 섬에 뿌리를 내린 다양한 삶의 흔적을 훑어보았고 때론 톺아보았다. 처음 디딘 대만은 음식에 대한 선택폭이 많았고 맛도 그다지 느끼하지 않았다. 귀국하기 전날, 저녁을 먹으러 갔다. 대만의 상징적인 101타워 안에 있는 '정태풍(鼎泰豊)'이라는 이름의 식당이었다. '鼎泰豊'이라는 간판 이름이 독특했다. 한 글자 한 글자가 주역의 괘명(卦名)으로 연상되면서 이름의 의미가 꼬리를 물면서 밀려왔다.
안으로 들어가니 엄청난 규모였다. 주방이 가운데 있었는데 몇십 명의 젊은 요리사가 딤섬을 빚고 있었다. 마음 한편으로는 먹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들었다. 우리 일행만 해도 21명이나 되고 저 많은 손님 속에서 나 같은 사람에게 신경 쓸 일은 만무하다. 한국도 그렇지 못한데 낯선 외국에서 무엇을 바라겠는가. 종업원이 주문을 받는데 어떻게 알았는지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손님이 계신가요" 하고 묻는다. "예"하고, 대답하지만 기다림 없는 독백일 뿐이다.
막상 여러 종류가 차례대로 나오는데 따로 고기가 들어가지 않는 딤섬을 내어주는 것이 아닌가. 먹는 내내 맛과 멋으로 대접받는 기분이었고, 한편으로는 황송한 기분이 들었다. 지금껏 식당에서 여러 음식을 먹었지만 이렇게 소수자를 배려하는 경험은 받지 못했다. 대만의 문화 수준이 우러러 보였다. 귀국 후 중국어 선생을 통해 알아보니 수도권을 중심으로 '딘타이펑(鼎泰豊)'매장이 여섯 군데 있었다. 상호의 뜻이 '크게 풍요로운 삶, 또는 크고 풍요로운 솥'이었다. 하지만 나의 마음에 차지 않았다. 화가가 그림을 그렸어도 감상은 보는 자의 것이라는 말처럼, 현지에서 느꼈던 감정으로 이름의 의미를 부여하고 싶어 '주역' 책을 보고 나름대로 풀이했다.
鼎, 솥을 걸고 나무로써 불을 지펴 많은 음식을 삶아 사람을 기른다. 泰, 천지가 사귀어 만물이 통하며, 위와 아래가 서로 사귀니 손님과 주인의 뜻이 같음이라. 豊, 해와 달이 차면 기울듯, 천지도 불고 줄고 하는데 하물며 사람의 인연에서랴. 오직 서로 믿음으로서 풍성함을 이룬다.
물론 '鼎泰豊'의 뜻이 창업자의 의도와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외국 문학작품의 경우 한 사람의 번역본만 있기보다는 여러 종류가 있을 때 풍성한 음미의 맛을 줄 수 있듯이, 고객이 부여한 의미도 나름대로 가치가 있을 것이다. 이런 나의 이름 풀이는 배려받음에 대한 보이지 않는 조그만 배려의 몸짓이다. 의도하지 않은 쓰임, 그것이 바로 문학의 효용 아니겠는가.
101타워 딤섬집은 당연할 수 있지만 소소한 배려의 참된 모습을 보여주었다. 배려는 말이 아닌 행동으로 타인에게 베푸는 아주 작은 날갯짓이면 된다. 7월 장마 기간에 일어난 극한 호우로 곳곳에서 사상자와 수재민이 발생했다. 우리의 조그만 배려의 손길들이 서로 이어질 때 참담한 재난의 아픔도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김태열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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