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소리] 딤섬이 알려준 배려

  • 오피니언
  • 풍경소리

[풍경소리] 딤섬이 알려준 배려

김태열 수필가

  • 승인 2025-07-28 10:12
  • 신문게재 2025-07-29 19면
  • 조훈희 기자조훈희 기자
풍경소리 김태열 수필가
김태열 수필가
기대 반 우려 반이 섞인 대만 여행이었다. 음식문화가 발달한 중화권에서는 육류라고 하면 돼지고기를 의미한다. 어릴 적 목격한 사건으로 고기를 좋아하지 않고 무엇보다 돼지고기에 대한 트라우마가 깊다. 퇴직 후 배낭 메고 중국을 둘러보려고 중국어를 공부했다. 겨우 몇 번의 패키지 여행길에서 부딪힌 음식과의 불협화음은 중국 여행에 대한 환상은 물론 중국어 공부 의욕도 서리맞은 식물처럼 시들하게 했다. 다행히 대만은 섬이라 해산물을 이용한 음식이 많고 미식의 나라로 손꼽힌다고 하니 그나마 마음이 놓였다.

그동안 사람을 알아갈 때 "나는 아무거나 잘 먹는다"는 말을 들으면 속으로 '겁!'났다. 그런 사람 앞에서 식성이 까다롭게 비치면 까칠한 사람으로 여겨짐은 가부장적 사회의 당연한 문화였다. 지금은 개인의 음식 취향을 고려해줄 정도로 세상이 많이 변하고 있다. 음식 메뉴를 고르는 일은 섬세한 노력과 공감이 필요하다. 우리는 배려를 받기도 하지만 배려하면서 살아가야 한다.

대전문인협회에서 대만으로 4박 5일 문학기행을 떠났다. 대남(臺南)에서 대중(臺中)을 거쳐 대북(臺北)까지 앞서거니 뒤서거니 섬에 뿌리를 내린 다양한 삶의 흔적을 훑어보았고 때론 톺아보았다. 처음 디딘 대만은 음식에 대한 선택폭이 많았고 맛도 그다지 느끼하지 않았다. 귀국하기 전날, 저녁을 먹으러 갔다. 대만의 상징적인 101타워 안에 있는 '정태풍(鼎泰豊)'이라는 이름의 식당이었다. '鼎泰豊'이라는 간판 이름이 독특했다. 한 글자 한 글자가 주역의 괘명(卦名)으로 연상되면서 이름의 의미가 꼬리를 물면서 밀려왔다.

안으로 들어가니 엄청난 규모였다. 주방이 가운데 있었는데 몇십 명의 젊은 요리사가 딤섬을 빚고 있었다. 마음 한편으로는 먹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들었다. 우리 일행만 해도 21명이나 되고 저 많은 손님 속에서 나 같은 사람에게 신경 쓸 일은 만무하다. 한국도 그렇지 못한데 낯선 외국에서 무엇을 바라겠는가. 종업원이 주문을 받는데 어떻게 알았는지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손님이 계신가요" 하고 묻는다. "예"하고, 대답하지만 기다림 없는 독백일 뿐이다.



막상 여러 종류가 차례대로 나오는데 따로 고기가 들어가지 않는 딤섬을 내어주는 것이 아닌가. 먹는 내내 맛과 멋으로 대접받는 기분이었고, 한편으로는 황송한 기분이 들었다. 지금껏 식당에서 여러 음식을 먹었지만 이렇게 소수자를 배려하는 경험은 받지 못했다. 대만의 문화 수준이 우러러 보였다. 귀국 후 중국어 선생을 통해 알아보니 수도권을 중심으로 '딘타이펑(鼎泰豊)'매장이 여섯 군데 있었다. 상호의 뜻이 '크게 풍요로운 삶, 또는 크고 풍요로운 솥'이었다. 하지만 나의 마음에 차지 않았다. 화가가 그림을 그렸어도 감상은 보는 자의 것이라는 말처럼, 현지에서 느꼈던 감정으로 이름의 의미를 부여하고 싶어 '주역' 책을 보고 나름대로 풀이했다.

鼎, 솥을 걸고 나무로써 불을 지펴 많은 음식을 삶아 사람을 기른다. 泰, 천지가 사귀어 만물이 통하며, 위와 아래가 서로 사귀니 손님과 주인의 뜻이 같음이라. 豊, 해와 달이 차면 기울듯, 천지도 불고 줄고 하는데 하물며 사람의 인연에서랴. 오직 서로 믿음으로서 풍성함을 이룬다.

물론 '鼎泰豊'의 뜻이 창업자의 의도와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외국 문학작품의 경우 한 사람의 번역본만 있기보다는 여러 종류가 있을 때 풍성한 음미의 맛을 줄 수 있듯이, 고객이 부여한 의미도 나름대로 가치가 있을 것이다. 이런 나의 이름 풀이는 배려받음에 대한 보이지 않는 조그만 배려의 몸짓이다. 의도하지 않은 쓰임, 그것이 바로 문학의 효용 아니겠는가.

101타워 딤섬집은 당연할 수 있지만 소소한 배려의 참된 모습을 보여주었다. 배려는 말이 아닌 행동으로 타인에게 베푸는 아주 작은 날갯짓이면 된다. 7월 장마 기간에 일어난 극한 호우로 곳곳에서 사상자와 수재민이 발생했다. 우리의 조그만 배려의 손길들이 서로 이어질 때 참담한 재난의 아픔도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김태열 수필가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대덕공동관리아파트 이재명 정부에선 해결될까… 과기인 등 6800명 의지 모여
  2. '팔걷은 대전경찰' 초등 등하굣길 특별점검 가보니
  3. 충남대병원 등 48개 공공기관, 인적자원개발 우수기관 인증
  4. 대전 죽동2지구 조성사업 연내 지구계획 승인 받을까
  5. 대전대, 70대 구조 중 숨진 故 이재석 경사 추모 분향소 연다
  1. 대전교도소 금속보호대 남용·징벌적 사용 확인…인권위 제도개선 주문
  2. 새마을문고 사랑의 책 나눔…‘나눔의 의미 배워요’
  3. [2026 수시특집-대덕대] 교육수요자 중심의 미래형 인재를 양성하는 직업교육 중심 대학
  4. 대전 대학생 학자금대출 ‘늘고’ 상환 ‘줄고’… 취업난에 연체 리스크 커졌다
  5. 최교진 부총리, 현창 첫 일정으로 금산여고 찾아 '고교학점제 점검'

헤드라인 뉴스


李정부 공공기관 2차이전 로드맵 지방선거 前 확정 시험대

李정부 공공기관 2차이전 로드맵 지방선거 前 확정 시험대

이재명 정부가 16일 국정과제를 확정한 가운데 이에 포함된 공공기관 제2차 이전 로드맵을 내년 지방선거 전 확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국가균형발전 마중물인 이 사안을 두고 선거용으로 활용한 역대 정부 전철(前轍)을 되풀이 하지 않고 이재명 정부 균형발전 의지를 증명하기 위함이다. 이와 함께 1호 국정과제인 개헌 추진과 관련해 560만 충청인의 염원인 세종시 행정수도 완성을 위한 수도조항 신설을 정치권에 촉구하는 것도 충청권의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정부는 이날 이재명 대통령 주재로 열린 국무회의에서 지난달 13일 국정기획위원회..

`시가 총액 1위 알테오젠` 생산기지 어디로?… 대전시 촉각
'시가 총액 1위 알테오젠' 생산기지 어디로?… 대전시 촉각

코스닥 시가총액 1위, 국내 탑클래스 바이오 기업 알테오젠이 첫 생산 기지 조성에 시동을 걸면서 대전시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대전과 인천 송도 중 신규 공장 부지를 놓고 고심하는 알테오젠을 지역으로 끌어오기 위해 행정당국은 지속해서 러브콜을 보내는 것이다. 국내 굴지의 바이오 기업 알테오젠 생산기지 확보는 고용창출과 세수확충 등 지역경제 활성화로 이어질 것으로 보여 성사 여부에 관심이 쏠린다. 16일 중도일보 취재 결과 대전에 본사를 둔 바이오 기업 알테오젠이 자체 공장 건립에 나선다. 현재 알테오젠은 자체 생산 시설이 없다...

대전 삼계탕 평균 1만 7000원 육박... 1만원으로 점심 해결도 어렵네
대전 삼계탕 평균 1만 7000원 육박... 1만원으로 점심 해결도 어렵네

대전 외식비 인상이 거듭되며 삼계탕 평균 가격이 1만 7000원을 목전에 두고 있다. 지역 외식비는 전국에서 순위권에 꼽히는 만큼 지역민들의 부담은 갈수록 커지는 모습이다. 16일 한국소비자원 가격정보종합포털 참가격에 따르면 8월 대전 외식비 평균 인상액은 전년 대비 많게는 6%에서 적게는 1.8%까지 오른 것으로 집계됐다. 가장 큰 상승폭을 보인 건 김치찌개 백반이다. 직장인들이 점심시간 가장 많이 찾는 대전 김치찌개 백반 가격은 8월 1만 200원으로, 1년 전(9500원)보다 7.3% 상승했다. 이어 삼계탕도 8월 평균 가격이..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대한민국 대표 軍문화축제 하루 앞으로 대한민국 대표 軍문화축제 하루 앞으로

  • ‘청춘은 바로 지금’…경로당 프로그램 발표대회 성료 ‘청춘은 바로 지금’…경로당 프로그램 발표대회 성료

  • 새마을문고 사랑의 책 나눔…‘나눔의 의미 배워요’ 새마을문고 사랑의 책 나눔…‘나눔의 의미 배워요’

  • 추석맞이 자동차 무상점검 추석맞이 자동차 무상점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