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위 뭐 읽지?]김훈의 『남한산성』- 말과 말의 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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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위 뭐 읽지?]김훈의 『남한산성』- 말과 말의 싸움

  • 승인 2017-10-03 14:09
  • 우난순 기자우난순 기자
남한산성
/사진=연합
아주 먼 옛날, 인류가 이 땅에 발을 디딜 때부터 전쟁은 불가피한 일이다. 원시사회에서의 전쟁은 밥그릇 싸움이었다. 먹이가 부족했던 시절 물소 한마리, 나무 늘보 한 마리는 한 가족 혹은 한 부족의 한 끼였으니 말이다. 그러나 신석기, 철기, 청동기를 거쳐 먹이가 풍부해지자 영토 싸움으로 발전했다. 권력다툼이 벌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권력은 둘이 나눠 가질 수 없는 법이다.

조선은 늘 외세에 시달렸다. 전략적 요충지여서 조선의 운명은 바람 앞의 촛불 신세였다. 힘이 비대해진 일본 봉건세력은 대륙 침략의 발판으로 조선을 침략했다. 임진왜란으로 조선은 멸망 직전이었으나 다행히 이순신이라는 걸출한 장수 덕분에 위기를 모면했다. 허나 만주 오랑케가 중국 대륙에 느닷없이 출현해 청이라는 국호를 세우고 조선을 속국으로 삼으려 했다. 조선 왕조는 결국 항복하고야 만다. 병자호란이라 명명된 전쟁이다.

김훈의 『남한산성』은 인조가 청나라 군대에 쫓겨 남한산성에서 47일 동안 버티다 항복하는 과정을 그렸다. 김훈은 이 소설에서 인간의 현실은 자존과 영광만으로 성립되기 어렵다고 했다. 치욕과 굴종 또한 삶과 역사의 중요한 일부라고 했다. 청과 끝까지 싸우자는 김상헌의 주전파든 투항하자는 최명길의 주화파든, 어느 한쪽이 옳다고 볼 수 없다는 얘기다. 고립무원의 성 안에서 시시각각 멸망이 다가오고 있는데 허황된 말 싸움이 가당키나 한가. 전쟁은 인간의 비열함과 야만성이 드러난다. 병자호란은 인조가 삼전도에 가서 청나라 칸에게 세번 절하고 아홉번 머리 숙인 치욕의 역사로 기록됐다. 김훈은 치욕과 자존은 다르지 않다고 했다. 오직 삶의 영원성만이 치욕을 덮어서 위로할 수 있다고 봤다.

북·미 대립으로 한반도는 일촉즉발의 위기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병자호란 시대나 지금이나 우리가 처한 상황은 다르지 않다. 한치의 양보 없는 김정은과 트럼프는 말폭탄을 쏟아내기 바쁘다. 이 상황에서 한반도의 주인인 우리는 어찌해야 하나. 정치인들이 쏟아내는 허황된 말의 홍수 속에서 지도자 또한 갈피를 못잡고 있다. 김훈 말마따나 정치인들은 삶의 구체성을 결여하고 있다. 다시는 그 끔찍한 전쟁을 겪을 수 없는 터인데, 우리의 땅과 언어를 보존해야 하는데….



『남한산성』은 김훈 특유의 단단하고 쫀쫀한 문체로 역사의 한 변곡점을 풀어냈다. 이번에 영화로도 만들어져 10월 3일 개봉한다. 원작에 충실해 완성도를 높였다고 한다. '말'이 범람하는 시대에 '말'로 겨눈 색다른 전쟁영화와 함께 책으로 남한산성을 만나보는 건 어떨까.
우난순 기자 rain4181@

김훈
김훈 /사진=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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