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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과 전문의인 노승무 교수 |
오늘도 언제나 그렇듯 나는 샤워를 끝낸 후 옷장열쇠를 안내창구에 있는 반납상자에 넣고, 로비에서 책을 읽으며 아내를 기다렸다. 얼마 후 수영을 마친 아내가 열쇠를 반납하고, 현관문을 통과하려는 순간 '삐리리-, 삐리리-' 경고음이 로비가 떠나가게 울린다. 웬일일까? 영문을 모르는 아내는 당황스러워했고, 나도 어안이 벙벙했다. 곧바로 직원이 웃으며 나온다. "고마워요, 자동차를 다 기증해주시고…." 옷장열쇠를 반납한다는 걸 깜빡하고 자동차열쇠를 반납상자에 넣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둘은 달라도 너무 다르다. 모양도, 색깔도, 크기도….
치매다! 나이도 그렇고, 요즈음 내가 관찰한 바로는 틀림없는 치매다. 왜 이런 검색대가 필요한지도 이제야 알겠다. 아무래도 나이든 사람이 많은 농촌인지라 옷장열쇠를 반납하지 않고 그냥 가지고 가는 일이 자주 있었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검색대는 훌륭한 '자동치매검사기' 역할도 하는 셈이다. 아주 효과적으로 치매환자를 골라낸 것이다. 보건소에서 치매검사를 한다고 하지만, 이용하는 사람이 많지 않을 것이다. 자신이 환자라는 사실을 확인받고 싶어 하지 않는 심리가 있을 테니.
전에는 하지 않던 실수를 하면, 서로 치매검사나 받아보라고 하면서 지낸지가 제법 되는데, 나보다 먼저 아내가 딱 걸린 것이다. 그건 그렇고, 참 이상하다. 미우나 고우나 30여 년을 같이 살았는데, 치매 확인을 하고 이렇게 기쁘다니.
내가 막 검색대를 지나는데, 청소를 하던 직원이 큰 소리로 부른다. "저기 수건 가져가셔야지요!"라고 하면서 의자에 걸쳐놓았던 목욕 수건을 가리킨다. 무엇이 그리 좋은지 아내의 웃음소리가 크게 로비를 울린다. 치매에 걸리면 웃음소리도 커지는지….
드디어 주위에 젊잖게 있던 여러 사람들이 참았던 웃음을 터트린다. 스포츠센터가 날아갈 뻔 했다.
충남대 명예교수·전 충남대 의대 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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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박하고 반납을 바꾼 자동차 키와 옷장 열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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