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외면한다고 상처가 잊혀질까

  • 오피니언
  • 편집국에서

[편집국에서]외면한다고 상처가 잊혀질까

원영미 편집부 차장

  • 승인 2019-12-15 21:54
  • 신문게재 2019-10-24 22면
  • 원영미 기자원영미 기자
원영미
원영미 편집부 차장
아이들을 모두 재우고 난 주말 밤, 꿀 같은 시간. 평일엔 즐겨보지도 않던 TV 드라마가 주말이면 왜 그리도 재미 지는지…. 그날도 드라마에 시선을 집중하며 보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즐겁던 기분이 사라지고 불편함에 눈살이 찌푸려졌다. 중간광고 탓이다. 단순히 드라마 중간에 광고가 나와서가 아니다.

최근 '위안부 피해자 조롱 광고'로 노 재팬(일본불매) 운동에 다시 불을 붙인 '유니클로'가 문제였다. 겨울 대표상품인 발열내의와 재킷 등을 홍보하는 광고가 그 짧은 시간에 2개가 잇따라 나왔다. 듣는 사람도 없는데 '아 뭐야…' 혼잣말을 하며 TV를 껐다.

유니클로 광고가 최근 논란이 되고 있다. 그 광고에서 90대 할머니와 10대 소녀가 대화를 나눈다. "제 나이 때는 어떻게 업었나"라는 소녀의 질문에 "80년도 더 된 일을 기억 하냐고?"라며 대답하는 내용이 자막으로 담겼다. 80년 전이라면 1939년, 바로 일제강점기다. 당시는 조선인에 대한 일제의 위안부 등 강제동원이 절정에 달했던 시기다.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살아남아 그들의 만행을 똑똑히 증언하고 있다. 아무리 유니클로가, 일본 전체가 나서서 '우리는 모른다', '기억나지 않는다'고 외면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얘기다.

'때린 사람은 기억을 못 해도, 맞은 사람은 기억한다'는 말이 있다. 초등학생이었을 때 잊히지 않는 기억이 있다. 일제 식민지 잔재인 '국민 학교' 명칭이 초등학교로 바뀌기 전이다. 그때는 방학마다 청소당번을 정해 친구와 조를 이뤄 하루는 학교에 나가야 했다. 2학년 겨울방학이었는데 학교에 갔더니 수도가 꽁꽁 얼어 물걸레를 빨 수가 없었다. 학교에 나와 계시던 한 선생님은 밖으로 조금만 가면 물가가 있으니 가서 걸레를 빨아다 청소를 하라고 하셨다. 얼음장 같은 물이 어찌나 차갑던지, 9살 겨울의 기억이 30년이 넘은 지금도 지워지지 않는다.

이렇게 별것 아닌 일도 누구의 가슴엔 힘든 기억으로 남아있는데, 꽃다운 10대를 철저히 짓밟힌 위안부 할머니들의 아픔을 기억나지 않는다는 한마디로 치부할 수 있는 것인지 묻고 싶다. 결국 유니클로는 논란이 된 광고를 내렸지만, 우리의 분노는 더 끌어 오르고 있다.

위안부 피해 생존자인 이옥선 할머니는 그들의 '20년 역사'를 다룬 영화 '에움길' 상영회에서 당시의 끔찍했던 경험을 생생하게 전했다. "일본군에 맞아 귀도 들리지 않고 이도 다 빠졌다. 일본은 지금 한국사람 강제로 끌고 간 일이 없다고 한다. 일본 정부는 우리가 다 죽기를 기다리고 있다. 다 죽어도 위안부 문제는 해명해야 한다. 할머니들이 다 죽기만 기다리지 말고 일본 정부의 공식사죄와 배상을 요구한다."

오는 30일은 강제동원 피해자들에 대한 일본기업의 법적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한 대법원의 판결이 나온 지 1년이 되는 날이다. 외면한다고 모른척한다고 해서 이미 저질러진 역사가 없었던 일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일본 정부의 진정성 있는 반성과 사과, 그에 따른 배상이 이뤄지길 기대한다.
원영미 편집부 차장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서산 지곡면에 '문화예술 새 거점' 들어선다, 내포-서산 창작예술촌 건립 속도
  2. 'KTX 세종선·CTX 연장' 충청권 합의로 새 국면
  3. 천안시, 원성커뮤니티센터 건축설계 최종보고회 개최
  4. 장기수 천안시장, 복지현장서 폭염 대비 안전점검
  5. 천안시, 민선 9기 출범 맞춰 안전·보건경영방침 개정
  1. 與 당권주자, 지역 현안 실종된 순회경선에 비판 고조
  2. 남서울대, 롯데마트 성정점서 탄소중립 조형물 전시회 성료
  3. 천안시청공무원노동조합, 이색 청렴 캠페인 전개
  4. 천안시, 'K-컬처박람회' 앞두고 선제적 방역소독 총력
  5. 천안문화재단, 하반기 삼거리·서북갤러리 전시 개최

헤드라인 뉴스


폭염보다 더 힘든 희망고문…대전 쪽방촌 개발사업 또 표류하나

폭염보다 더 힘든 희망고문…대전 쪽방촌 개발사업 또 표류하나

연일 체감온도 33도 이상 불볕더위에 대전에서 폭염특보가 발효 중인 가운데, 정동 쪽방 주민들은 폭염보다 더 힘든 희망고문에 시달리고 있다. 주거 취약계층 지원과 역세권 정비를 위한 이곳 쪽방촌 공공개발 사업이 지난해 9월 2년 반 만에 기본조사가 재개돼 기대감을 모았으나 최근 완공 시점이 2032년으로 변경된 데다 여전히 토지건물주 이견에 벽을 넘지 못해서다. <중도일보 2025년 1월 14·20·21·23일 자, 7월 9·10일 자, 8월 6일 자 1면 보도 등> 사업시행자인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올 연말까지 기본조사를 마친..

서남부터미널 폐업 초읽기… 조속한 교통대책 마련 필요
서남부터미널 폐업 초읽기… 조속한 교통대책 마련 필요

대전 서남부터미널 운영업체의 '경영 악화'로 터미널 폐업이 사실상 불가피해지면서 지자체의 조속한 폐업 결정과 교통대책 마련이 요구된다. 최근 단 하나 남아있던 금남고속마저 '이용객 감소'를 이유로 유성복합터미널로 기점 변경을 신청, 충남도가 본격적인 검토에 들어가면서 사실상 폐업 초읽기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운송업계에선 폐업을 늦추는 것보단, 조속한 이동권 확보 방안 마련이 우선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2일 운송업계 등에 따르면, 최근 금남고속은 충남도에 기점 변경을 신청했다. 금남고속은 도시철도 2호선 트램 공사로 서남부터미널 진입..

금융당국,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품 겨냥 `긴급조치권` 카드 꺼냈다
금융당국,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품 겨냥 '긴급조치권' 카드 꺼냈다

금융당국이 증시를 뒤흔드는 주범으로 지목된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품을 겨냥해 긴급조치권이라는 강도 높은 카드를 꺼내 들었다. 기본예탁금 상향 등을 골자로 하는 보완책에 이어 발표된 추가 대책 일환으로, 글로벌 반도체 종목 쏠림 현상에 레버리지 상품까지 겹쳐 극도로 높아진 시장 변동성을 관리한다는 차원이다. 2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긴급한 상황에서 시장 안정화 조치를 취할 법적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금융감독원과 함께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마련한다. 최근 홍콩의 가변 레버리지 배율 사례를 참조했다. 홍콩 증권선물위원회(SFC)는..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민주당 당대표·최고위원 충청서 순회경선 시작 민주당 당대표·최고위원 충청서 순회경선 시작

  • 북적이는 계곡과 한산한 도심 북적이는 계곡과 한산한 도심

  • 장종태 의원 민주당 대전시당위원장 선출 장종태 의원 민주당 대전시당위원장 선출

  • 과태료 부과 무시한 채 불법광고물 부착 과태료 부과 무시한 채 불법광고물 부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