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하추동]한 해를 보내는 방법

  • 사회/교육
  • 교육/시험

[춘하추동]한 해를 보내는 방법

김정숙(충남대 교수)

  • 승인 2017-12-12 11:21
  • 정성직 기자정성직 기자
김정숙
김정숙(충남대 교수)
눈이 바람에 흩날린다. 이제 완연한 겨울이다. 여러 길이 좁아들 때 한꺼번에 몰리는 병목 현상처럼, 이맘때는 자주 못 만났던 사람들, 해결되지 않거나 밀린 일들을 매듭지어야 하는 생각으로 버겁기도 하다. 이럴 때일수록 아주 평범한 말이지만, 모든 것을 한꺼번에 하려는 마음을 조금 내려놓으면 가장 중요하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선명하게 떠오를 것이다. 그 일들 중에서 지금 안 하면 많이 후회할 일, 만나고 싶지만 이때가 지나면 다시 만나기 어려운 사람, 가장 마음을 기울여왔던 일부터 시작하면 좋겠다.

삼백육십오 일의 여정을 마치는 길목에서 지나온 시간을 돌아본다. 크고 작은 길목은 골목길로 이어져 지도처럼 펼쳐져 있다. 그 골목에서 우리는 어떤 표정으로 만나고 헤어지며 울고 웃었을까. 시인 이상은 막다른 골목에서 두려움과 공포를 느꼈고, 세상을 떠난 가수의 '골목길'에는 사랑하는 사람이 살고 있는 창을 바라보며 느낀 설렘과 후회의 감정이 애절하게 스며 있다. 뮤직비디오 '소격동'은 소녀를 그리워하는 소년의 추억이 깃든 눈 내리는 골목길의 풍경을 담고 있다. 이렇게 골목은 사랑과 설렘, 후회와 회상 등 우리가 살아가며 겪은 감정을 오롯하게 간직하고 있다.

확 트인 도로가 제공하는 선명한 편리성은 우리 삶에 대부분 필요하고 유용하다. 그러나 때로 직선으로 쭉 뻗은 도로 말고, 잠시 숨거나 쉬고 싶은 모퉁이 골목이 필요하다. 어릴 적 동네 골목의 숨바꼭질을 떠올려 보는 것만으로도 작은 위안을 받는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종교성을 떠나 많은 사람들이 꼭 걷고 싶은 곳으로 잘 알려져 있다. 사람들이 많이 찾는 둘레길과 올레길에 힐링 혹은 치유라는 말이 결합된 것을 보아도 도시 속 골목길은 지친 우리에게 쉼터가 되곤 한다.

이런 둘레길과 올레길은 떠나야 닿을 수 있는 곳이고 특별한 경우에 가는 곳이 되어가면서 어느새 돈과 시간을 들여야 하는 특정한 여행지가 되어가는 것 같아 아쉽기도 하다. 그래서 골목길은 우리 가까운 곳에 있으면 있을수록 좋다. 골목은 우리 이웃들이 지나다니며 만들어진 자연의 일부이다. 오랜 시간이 지나는 동안 그 지역의 삶과 문화를 닮아 형성된 장소이다. 서울의 북촌이나 서촌, 경리단길의 골목길은 다양한 이야기를 품고 있다. 우리 지역인 대동에도 옛 골목길이 예쁘게 재조성되어 있다. 벽화가 그려져 있고 작은 골목길에 화분도 놓여 있다. 소박하고 정겨운 모습이 향수와 안정감을 자아낸다. 원도심의 길목이나 가까운 골목길이 자주 찾아가고 싶은 곳이 되면 사람들의 마음과 우리 사회는 한결 평화로워질 것이다.



골목길은 개발과 도시 성장의 이면을 보여주는 곳이기도 하다. 나의 고향 마을에는 노성천이 있다. 갈대와 노을이 어우러진 그 곡선의 둑길을 참 좋아했는데, 돌을 쌓고 모래 공사를 한 후에는 잘 안 가게 된다. 은행동 대전아트시네마 앞에 가로수들이 잘려 밑둥만 남겨진 모습을 보고 많이 안타까웠던 때가 작년 이맘쯤이다. 도시 재개발이나 지역 정화 사업 등을 추진하다 보면 골목길의 자취가 사라지고 직선으로 변해가는 경우를 종종 접하게 된다.

이런 골목길에는 달동네, 쪽방촌, 판자촌, 저개발 지역 등의 이름으로 불리는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의 아픔이 있다. 골목길을 재생하고 기억하는 것은 이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어려움과 고통도 함께 아우를 때 더 의미가 있다. 삶의 흔적과 역사적인 자취, 그리고 옛 것과 새로운 것이 조화를 이룬 골목길을 기대해 본다.

영화 '길La Strada'의 잠파노와 젤소미나의 서커스 유랑이 보여주듯 길목은 인생에 대한 은유이며 이야기이다. 살아가면서 만나는 중요한 통로와 어귀를 잘 살피는 것은 우리 삶을 더 따듯하고 풍요롭게 하는 일이다. 그 통로는 이웃들과 연결되는 마음의 길로 이어질 것이다. 겨울의 길목에서 최선을 다한 우리가 함께 따듯한 격려를 나누며 골목길을 걸어보는 것도 한 해를 멋지게 보내는 방법일 듯싶다. 발길이 닿는 그곳에 온기가 퍼질 것이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호서대' 연극트랙', 국내 최대 구모 연극제서 3관왕
  2. 아산시, 민관협력 활성화 워크숍 개최
  3. 천안법원, 공모해 허위 거래하며 거액 편취한 일당 '징역형'
  4. 충청남도교육청평생교육원, 노인 대상 도서관 체험 수업 진행
  5. 엄소영 천안시의원, 부성1동 행정복지센터 신축 관련 주민 소통 간담회 개최
  1. 상명대, 라오스서 국제개발협력 가치 실천
  2. 한기대 김태용 교수·서울대·생기원 '고효율 촉매기술' 개발
  3. 천안법원, 음주운전으로 승용차 들이받은 50대 남성 징역형
  4. 천안시의회 드론산업 활성화 연구모임, 세계드론연맹과 글로벌 비전 논의하다
  5. 세종시 '러닝 크루' 급성장...SRT가 선두주자 나선다

헤드라인 뉴스


`이재명 정부와 민주당` 충청권 역주행...행정수도 진정성 있나

'이재명 정부와 민주당' 충청권 역주행...행정수도 진정성 있나

행정수도와 국가균형발전 키워드를 주도해온 더불어민주당이 '해양수산부 이전' 추진 과정에서 강한 반발과 비판에 직면하고 있다. 이 대통령의 국정 지지도는 각종 여론조사 결과 대선 득표율(49.4%)을 크게 뛰어넘는 60% 대를 넘어서고 있으나 유독 충청권에서만 하락세로 역주행 중이다. 지난 7일 발표된 리얼미터와 여론조사 꽃, 4일 공표된 한국갤럽의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충청권은 호남과 인천경기, 서울, 강원, 제주권에 비해 크게 낮은 60%대로 내려앉거나 그 수준에 머물고 있다. 그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2026년 충청권 지방선..

조국혁신당 대전시당, `검찰개혁 끝까지 간다`… 시민토크콘서트 성황
조국혁신당 대전시당, '검찰개혁 끝까지 간다'… 시민토크콘서트 성황

조국혁신당 대전시당이 12일 유성문화원에서 '검찰개혁 시민콘서트'를 열어 당원·시민들과 함께 검찰개혁의 필요성과 구체적인 방향 등을 논의했다. 이날 행사엔 황운하 시당위원장과 차규근·박은정 의원이 패널로 참여하고, 배수진 변호사가 사회를 맡아 진행했다. 이들은 조국혁신당이 발의한 검찰개혁 5법 공소청법, 중대범죄수사청법, 수사절차법, 형사소송법 개정안·검찰독재 정치보복 진상규명과 피해회복을 위한 특별법 등의 내용과 국회 논의 상황, 향후 입법 일정·전망을 설명했다. 차규근 의원은 "수사절차법과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통해 검찰의 무차별..

무더위에 수박 한 통 3만원 훌쩍... 농산물 가격 급등세
무더위에 수박 한 통 3만원 훌쩍... 농산물 가격 급등세

여름 무더위가 평소보다 일찍 찾아오면서 수박이 한 통에 3만원을 넘어서는 등 농산물 가격이 급등하고 있다. 13일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에 따르면 대전 수박 평균 소매 가격은 11일 기준 3만 2700원으로, 한 달 전(2만 1877원)보다 49.47% 오른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1년 전 2만 1336원보다 53.26% 오른 수준이다. 2020년부터 2024년까지 가격 중 최대·최소를 제외한 3년 평균치인 평년 가격인 2만 1021원보다는 55.56% 인상됐다. 대전 수박 소매 가격은 2일까지만 하더라도 2만 4000원대였으나 4일..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폐업 늘자 쏟아지는 중고용품들 폐업 늘자 쏟아지는 중고용품들

  • 물놀이가 즐거운 아이들 물놀이가 즐거운 아이들

  • ‘몸짱을 위해’ ‘몸짱을 위해’

  • ‘꿈돌이와 전통주가 만났다’…꿈돌이 막걸리 출시 ‘꿈돌이와 전통주가 만났다’…꿈돌이 막걸리 출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