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하추동] 히니에 대한 열등감에서 벗어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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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하추동] 히니에 대한 열등감에서 벗어나기

김완하(시인·한남대 국문창작과 교수)

  • 승인 2018-10-09 08:25
  • 고미선 기자고미선 기자
김완하
김완하(시인·한남대 국문창작과 교수)
나는 아일랜드 시인 셰이머스 히니(1939~2013)에게 많은 열등감을 가지고 있었다. 내가 1995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그에게 열등의식을 가지고 있다니! 그게 가당키나 한 말인가. 그러나 그것은 시인의 입장보다 그의 아버지와 할아버지에 대한 애정과 농촌 삶에 대한 자부심에 대해서였다. 히니에게 내가 놀라워하는 것은 그의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노동에 대한 동경과 존경심이었다. 농촌에서 태어나 자란 나는 농촌에 대한 기억이 그리 좋지만 않은 까닭이다. 그곳에는 노동의 힘겨움이 있고, 환경의 열악함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히니의 시에 농촌 삶은 너무 즐겁고 행복한 추억으로 형상화되어 있었다. 그에게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삽질은 노동을 넘어 예술의 극치에 닿아 있는 듯해 보였다.

그러한 열정과 사랑으로 히니는 그가 경험한 삶의 터전에서 얻은 전통과 토속성을 친밀한 필체로 그려냈다. 그는 아일랜드 정치적 상황에서 비롯된 투쟁과 갈등을 매우 섬세하고 사실적으로 표현했다. 이로 인해 서정적인 아름다움과 윤리적인 깊이를 갖추어 일상의 기적과 살아 있는 과거를 고양시켰다는 평을 얻었다.



나는 2016년 미국으로 연구년을 갔었다. 그곳에 가면서 나는 고향과 아버지에 대한 시를 쓰려는 계획을 세웠다. 우리가 머문 곳은 버클리대에서 30여분 거리인 라피엣(Lafayette)이었다. 주말이면 라피엣 도서관에 나가 지난 시간을 돌아보며 시를 쓰는 순간은 정말 의미 있고 기쁜 것이었다.

새벽은 숫돌에서 푸르게 날이 섰다 / 어둠 속에서 낫을 미시는 아버지 어깨가 / 두꺼운 어둠 벽을 무너뜨렸다 / 새벽 들길에 이슬 한 짐 지고 오셨다 // 내 아침잠에서 깨어날 즈음 / 안마당에 부리시던 아버지 지게 / 어둠 속에서도 점점 부풀어 올랐다 / 아버지 뒷동산을 지고 일어서셨다 // 마당에 가득 풀들이 튀어 올랐다 / 고요한 뜰 위로 생기를 불어넣으며 / 집 안은 온통 풀 내음에 출렁거렸다 / 하루가 새 길을 트고 있었다 // 종아리에 묻은 풀씨 쓸어내리며 / 아버지 베잠방이 주머니에서 / 샛노란 참외 두 개를 내놓으셨다 / 삼베옷에 쓱쓱 문질러 낫으로 깎아주시면 / 달고 시원한 맛 속으로 하루가 힘차게 달려갔다 -「새벽의 꿈」 전문



그곳에서 제일 먼저 쓴 시가 「새벽의 꿈」이었다. 이 시는 유년의 기억과 사실을 바탕으로 향상화한 것인데, 이 시를 쓰고 나자 아버지는 내게 한층 다정다감한 분으로 다가왔다. 언어의 힘과 치유라고 할까. 그분의 성실한 삶과 활력으로 나의 유년도 아주 밝게 빛이 났다. 그 후에 참외를 볼 때면 그날 아침 아버지가 깎아주신 노란 참외 향기와 시원한 맛을 떠올린다.

이 시를 쓰고 나 아버지는 내게 어둠을 밝혀 새로운 길을 열어주신 분으로 여겨졌다. 살아계실 때 좁아보이던 아버지 어깨는 넓게 떠올라 나를 목마 태우시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이미 20여 년 전에 돌아가셨고 이제 내겐 이미지만 남았다. 어린 날 아버지는 한 가정의 가장으로 현실의 만족보다는 늘 새로운 세계를 바라보셨다. 현실에 안주하기보다 무언가 늘 조금은 부족한 것을 채우려 애를 쓰셨다.

어린 날 아버지는 새벽마다 신문을 읽으셨다. 거기에 실려 온 시를 읽고 나도 시인의 꿈을 품게 되었다. 그러므로 아버지는 내게 시의 씨앗을 심어준 분이다. 그러니 내 시에 나타난 아버지는 새벽을 밝혀 나의 넓은 길을 열어주고 그 길로 달려갈 수 있게 힘을 북돋아 주신 분이다. 그래서 이제 나도 셰이머스 히니에 대한 열등감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가 있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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