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을 중간결산하면 한국의 판정승이었다. 전통적으로 조립 세트 산업의 강점만 있으면 되는 줄 알았던 우리가 국산화와 수입처 다변화에 이렇게 진지하게 뛰어든 경험도 처음이다. 100개 품목에서 338개 이상 품목으로 육성 정책 대상을 늘린 조치는 어차피 피할 수 없는 길이다. 극자외선 포토레지스트, 기체 불화수소를 비롯해 대체 불가능한 일본산 소재가 200여종에 달한 것도 결정적인 이유에 포함돼 있다.
지나고 보니 앞을 향해서만 걸었다. 일본만 의식하는 수세적 대응에 급급하다 보니 세계를 선도하겠다는 포부를 키울 여유는 상대적으로 못 챙긴 1년이었다. 아베 정부가 메모리 강국 단잠에 취한 한국을 깨웠다고 말하는 지금도 우리가 공세적이 될 수만은 없다. 한·일 갈등이 봉합되지 않으면 생산 차질이 우려되는 품목에 더 집중해야 하는 까닭이다. 대체 공급이 안 되는 소재나 반도체 제조용 장비 등을 추가 수출규제 대상에 올리는 것이 일본의 다음 수일 수도 있다.
따라서 기존 공급처 정상화에 손을 놓아선 안 된다. 일본 의존도가 높은 품목이 많은 것 또한 엄연히 현실이다. 한국 주도의 반도체 시장을 헝클어놓겠다는 발톱까지 일본은 감춰두고 있다. 91.6까지 오른 우리 경쟁력이 일본을 앞지를 때까지 소부장 산업 자립화를 가속해야 한다. 이와 별도로 코로나19 사태로 글로벌 공급망 와해를 겪기도 했다. 글로벌 가치 사슬의 핵심에 도달할 때까지 가야 하는 또 다른 이유다. 일본 수출규제에 따른 위기 해결이 덜 됐다는 사실을 지난 1년의 공과와 함께 늘 기억해야 한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