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광장] 시대의 스승 다산을 생각하다

  • 오피니언
  • 목요광장

[목요광장] 시대의 스승 다산을 생각하다

백낙천 배재대학교 인문사회대학 학장

  • 승인 2020-09-16 09:49
  • 신문게재 2020-09-17 18면
  • 이현제 기자이현제 기자
백낙천교수
백낙천 교수
인류는 시시로 창궐한 전염병의 환란을 극복하고 새로운 문명과 기술을 지속해서 꽃피우면서 발전을 거듭해 왔다.

가령, 14세기 유럽 전역을 휩쓸었던 흑사병은 이후 공중위생과 검역의 개념을 정립하는 계기가 됐으며, 한때 치명적인 전염병이었던 천연두는 19세기 제너에 의해 백신(vaccine)의 발명으로 박멸됐다. 이후 지석영 선생에 의해 이른바 마마는 더는 우리에게도 공포의 대상이 되지 않았다.



이렇듯, 인류의 역사에서 전염병은 고비마다 함께 했지만, 인류는 질병의 고난을 넘어 진보를 거듭했다. 이것이 우리가 코로나19 이후의 희망을 바라보게 만드는 경험적 증거들이다.

사위는 어둡고 불 밝힌 연구실에 고요하게 적막이 드리워지는 이때, 나는 시대의 역병이라고 일컬어지던 천주교가 은밀하게 조선의 땅을 덮었던 18~19세기로 길을 떠나 전염병보다 더 혹독했던 시대를 살았던 다산 정약용(1762-1836)과 재회한다. 수년 전 나는 조선 후기 천주교 한글 교리서를 살펴보던 중에 의로운 다산의 형제들(정약현, 정약전, 정약종, 정약용)을 만났다. 그러다가 코로나19로 우리의 삶이 핍진해지고 심신이 갇혀 있는 오늘의 상황과 겹쳐지면서 긴 세월 위리안치(圍籬安置)된 절망 속에서도 의연했던 다산이 불현듯 내게 다가온다.



다산은 천주교를 단순한 감화가 아닌 강력한 혈연과 지연, 사회적 풍속에 힘입어 내적 흡인력의 산물로 간주했던 남인 계열의 학자다. 당시 다산의 삶에 깊이 파고든 운명 같은 두 만남이 있었으니 하나는 정조였고, 다른 하나는 천주교였다.

정조와의 만남이 다산을 빛나게 한 햇살 같은 운명이었다면, 천주교와의 만남은 다산을 고비마다 깊은 수렁에 빠뜨린 족쇄 같은 운명이었다. 그래서 다산이 정조와 함께한 18년은 조선의 르네상스를 일군 세월이었으며, 정조 사후 다산에게 닥친 유배지에서의 또 다른 18년은 천주교로 인한 인고의 세월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다산에게 천주교는 전염병과도 같은 모진 아픔이었으니 그의 셋째 형인 정약종은 신유박해(1801년) 때 하늘을 바라보고 머리 위로 떨어지는 칼날을 두 눈을 뜬 채 받아들였으며, 둘째 형인 정약전은 흑산도 유배지에서 '자산어보'를 남기고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

다산은 그의 형제들을 포함해 당대 내로라하는 인물들과 교유했다. 다산은 이익을 사숙하였는데, 조선 최고의 천재인 이가환은 이익의 종손이며 이승훈의 외삼촌이었으며, 조선 천주교의 반석인 이벽은 큰형 정약현의 처남이었고, 조선 최초의 세례자인 이승훈은 다산의 매형이었다.

또한, 신유박해의 전모를 천하에 밝히고자 했던 '황사영 백서'의 주인공인 황사영은 16세에 진사 급제한 천재로서 다산의 조카사위였고, 진산 사건의 순교자 윤지충은 윤선도의 7대손으로 다산의 사촌이었을 정도로 천재 집안이자 천주교에 뿌리 깊은 가계였다.

유배지 강진에서의 다산은 시대와 처절하게 결별한 불우한 사람이었고 조선은 그를 철저하게 외면했지만, 그곳에서 다산은 홀로 고고했고 위대한 삶을 살았다. '목민심서', '경세유표', '흠흠신서' '아언각비' 등 방대한 저술을 통해 학문적 식견을 유감없이 발휘했으며, 의학서인 '마과회통'과 '종두심법요지'는 훗날 지석영의 종두법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나아가 다산이 수원 화성 축성의 설계자요 거중기 개발자였다는 사실에 이르면 실로 다산의 방대한 학문적 폭과 깊이를 헤아리기 어렵다.

이렇듯 다산은 난폭했던 시대를 거슬러 개화의 여명을 앞서 제시하였으니, 지금 우리는 전염병보다 더 모질고 혹독한 시련에서도 꿋꿋하게 버텨 조선 계몽의 빛을 밝힌 다산의 삶을 통해 시대 극복의 희망을 바라보고자 한다.
백낙천 배재대학교 인문사회대학장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드디어~맥도날드 세종 1호점, 2027년 장군면 둥지
  2. 성탄 미사
  3. 이장우 대전시장에 양보? 내년 지방선거, 김태흠 지사 출마할까?
  4. [다문화] 이주배경인구, 전체 인구 5% 돌파
  5. [충남 10대 뉴스] 수마부터 행정통합까지 다사다난했던 '2025 충남'
  1. [대전 다문화] "가족의 다양성 잇다"… 2025 대덕구 가족센터 성과공유회
  2. 대전·충남 행정통합, 가속페달…정쟁화 경계도
  3. [세상보기]섬세한 도시
  4. [대전 다문화] 다문화가정 대상 웰다잉 교육 협력 나서
  5. [인터뷰]윤기관 전 충남대 명예교수회장, 디카시집 <우리도 날고 싶다> 발간

헤드라인 뉴스


대전·충남 행정통합, 가속페달…정쟁화 경계도

대전·충남 행정통합, 가속페달…정쟁화 경계도

대전·충남 통합특별시 출범 지원을 위한 범정부적 논의가 본격화되는 등 대전·충남 행정통합에 가속페달이 밟히고 있다. 일각에선 이를 둘러싼 여야의 헤게모니 싸움이 자칫 내년 초 본격화 될 입법화 과정에서 정쟁 증폭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하는 경계감도 여전하다. 행정안전부는 24일 대전·충남 통합특별시 출범과 관련해 김민재 차관 주재로 관계 부처(11개 부처) 실·국장 회의를 개최하고, 통합 출범을 위한 전 부처의 전폭적인 특혜 제공 협조를 요청했다고 밝혔다. 행안부는 이날 회의에서 대전·충남 통합특별시 출범을 위한 세부 추진 일정을 공..

[2025 대전·세종·충청 10대뉴스]  윤석열 탄핵에서 이재명 당선까지…격동의 1년
[2025 대전·세종·충청 10대뉴스] 윤석열 탄핵에서 이재명 당선까지…격동의 1년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정국과 조기대선을 통한 이재명 대통령 당선. 이 두 사안은 올 한해 한국 정치판을 요동치게 했다. 지난해 12·3 비상계엄 선포 이후 국회는 연초부터 윤 대통령 탄핵 심판 국면에 들어갔고, 헌법재판소의 심리가 이어졌다. 결국 4월 4일 헌법재판소가 탄핵을 인용하면서 대통령 궐위가 확정됐다. 이에 따라 헌법 규정에 따라 60일 이내인 올해 6월 3일 조기 대통령선거가 치러졌다. 임기 만료에 따른 통상적 대선이 아닌, 대통령 탄핵 이후 실시된 선거였다. 선거 결과 이재명 대통령이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를 꺾고 정권..

[2025 대전·세종·충청 10대뉴스] 대통령 지원사격에 `일사천리`…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2025 대전·세종·충청 10대뉴스] 대통령 지원사격에 '일사천리'…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대전·충남 행정통합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대전·충남 행정통합의 배를 띄운 것은 국민의힘이다. 이장우 대전시장과 김태흠 충남지사다. 두 시·도지사는 지난해 11월 '행정통합'을 선언했다. 이어 9월 30일 성일종 의원 등 국힘 의원 45명이 공동으로 관련법을 국회에 제출했다. 정부 여당도 가세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충청권 타운홀미팅에서 "(수도권) 과밀화 해법과 균형 성장을 위해 대전과 충남의 통합이 물꼬를 트는 역할을 할 수 있다"면서 전면에 나섰다. 더불어민주당은 '대전·충남 통합 및 충청지역 발전 특별위원회'(충청특위)를 구성..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유류세 인하 2개월 연장…기름값은 하락세 유류세 인하 2개월 연장…기름값은 하락세

  • 성탄 미사 성탄 미사

  • 크리스마스 기념 피겨쇼…‘환상의 연기’ 크리스마스 기념 피겨쇼…‘환상의 연기’

  • 크리스마스 분위기 고조시키는 대형 트리와 장식물 크리스마스 분위기 고조시키는 대형 트리와 장식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