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톡] 주례한테 인사 온 예비 신부들의 만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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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톡] 주례한테 인사 온 예비 신부들의 만물상

남상선/수필가, 대전가정법원 전 조정위원

  • 승인 2023-12-08 00:00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나는 지금까지 제자들 결혼 주례를 여러 번 섰다. 주례 부탁을 해 왔을 때, 결혼 주례는 아무나 서는 것이 아니라는 말로 거절을 했다. 주례는 인품도, 덕망도, 있고,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사람이어야 하는데, 나는 그런 조건을 하나도 갖추지 못한 사람이라서 주례 자격이 없다고 거절을 했다.

허나, 주례 부탁을 해 온 제자는 얼마나 단호한 결심을 했는지 물러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평생 한 번밖에 없는 결혼식 주례를 아무나 모시고 싶지는 않습니다. 정말 존경하는 선생님을 주례로 모시고 싶습니다. 저의 간절한 소망이오니 제 청을 제발 들어 주십시오" 했다.

마음 내키진 않았지만 간청이라 고민 반, 염려 반, 심사숙고 끝에 청을 들어 주었다.



나는 주례의 그 어떤 조건도 갖춘 게 없는 사람이지만 실은 거절하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솔직히 얘기하자면 내가 신장 150㎝밖에 안 되는 단신이어서 주례 단상에 올라 조롱거리가 되지 않을까 하는 기우(杞憂)에서 흔쾌한 답변을 못했는지도 모른다.

주례 수락을 하면 으레 예비 신랑신부가 인사차 주례를 찾아보는 것이 상례(常禮)로 되어 있다.

내 주례를 서 주기로 한 제자들도 이런 것을 알았는지, 우리 집 방문하는 걸 잊지 않았다.

그 바람에 아내는 생각지도 않았던 새 손님맞이에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다과(茶菓) 준비도, 식사 준비를 하는 것도, 그 동안에 보지 못하던 신경을 쓰는 것이 틀림없었다.

지금부터는 우리 집을 찾아온 예비신랑신부에 관한 얘기 중, 예비신부에 관한 얘기로만 수다를 떨어 보겠다.

우리 집을 방문한 예비 신부들의 공통점은 한결같은 미인들이었다.

미인을 일러 침어낙안(沈魚落雁)(미인을 보고 물 위에서 놀던 물고기가 부끄러워서 물속 깊이 숨고, 하늘 높이 날던 기러기가 부끄러워서 땅으로 떨어졌다는 뜻으로, 아름다운 여인의 용모를 가리킴)이니, 해어화(解語花)(말을 알아듣는 꽃이라는 뜻으로, 미인을 뜻함), 또는 폐월수화(閉月羞花)(미인 앞에 기가 죽어 달도 숨고, 꽃도 부끄러워한다는 뜻으로, 여인의 얼굴과 맵시가 매우 아름다움을 일컫는 말)란 말을 쓰지만, 우리 집을 방문한 이 여인들한테는 하나 어색할 게 없는 것 같았다.

아가씨들은 나름대로 특징들이 있었다. 귀태 나는 A 아가씨는 새 손님으로 초대받아 온 것처럼 방석에 꼼짝 않고 앉아, 준비된 다과상이나 밥상이 나오기만을 기다리는 구중심처의 공주와 같았고, 다과 준비를 하는 아내를 도와 도란도란 담화를 나누며 과일도 깎고, 차 준비를 같이하는 B아가씨 같은 여성도 있었다. 거기에 또 어떤 아가씨는 행주치마를 달라 해서 그걸 걸치고 찌개도 끓이고, 밥상도 같이 차리며, 불고기 구이에 야채 요리까지 거드는 C 아가씨 같은 사람도 있었다. 그 C 아가씨 얼굴엔 미소가, 상냥한 말투가 배어 있었으니 금상첨화(錦上添花)가 따로 있는 게 아니었다.

친근감 융화력까지 동원하여 주인의 마음을 녹이고 있었으니 부러움을 더하는 점입가경이었다.

아가씨들의 말투는 대개가 상냥했지만 그 중에는 "감사하다"라는 말을 적재적소(適材適所)에 잘 구사하여 듣는 이의 마음을 사로잡고 호감을 불러일으키는 아가씨도 있었다.

뭐 그리 바빴는지 그 가운데는 속도위반을 하고 온 쌍도 있었다. 아가씨의 또 다른 뱃속엔 확실한 만년보험 보장 결혼선물로써 준비한 새 생명이 맥박의 박동으로, 부피감 있는 볼륨감으로, 예비 신랑신부의 마음을 들뜨고 기쁘게 해 주는 진풍경도 있었다.

이만하면 예비 신부들의 다양한 만물상이라고 불러도 이상할 게 없잖겠는가?

우리는 애지중지하는 딸들을 위 A,B,C 중 어떤 딸들로 키우고 있는지 눈길을 돌려봐야겠다.

또 결혼적령기에 있는 예비신부 감 되는 딸들은 내 자화상이 어디에 속하는지도 맥을 짚어봐야겠다.

자식을 가진 부모는 누구를 막론하고 자식들이 좋은 배우자를 만나 결혼하기를 원한다.

청춘남녀가 자기 짝을 찾을 때도 마찬가지다. 여자는 좋은 남자가 자기 짝이 되기를 원하고, 남자는 좋은 여자가 자기 배우자가 되기를 기대한다.

사람이면 누구나 좋은 사람 만나는 인연을 맺고 싶어 하는 것이 인지상정(人之常情)이리라.

물건을 살 때에도 좋은 상품은 고객이 거액을 주고라도 서로가 가져가려는 상품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못한 상품도 있다. 좋은 상품은 그 제품의 브랜드 가치가 높은 것이다. 품질도, 보기도, 좋고, 오래 쓸 수 있는 내구성도 보장되는 것이라야 한다. 그래야 돈을 많이 주고서라도 서로가 가져가려는 상품이 되는 것이다. 사람도 마찬 가지다.

학벌도, 인물도, 좋고, 사람의 품성 됨됨이가 좋은 사람으로, 좋은 부모 만나 경제력도 있는 금수저 집안 출신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배우자감으로 지목되는 것이다. 소위 이런 조건들이 세인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좋은 배우자감의 최대공약수가 되는 것이다. 학벌 좋고, 인물이 잘났다 해서 꼭 브랜드 가치가 높은 것은 아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어른 뺨치게 깜직하고, 현명하며, 생각하는 것이 건전한 사람들도 많다. 인생관, 가치관, 미래관이 뚜렷하여 장래가 촉망되는 젊은이들도 많지만, 한편엔 일부 골이 좀 비어 있고, 익다 만 과일 같은 젊은이들도 심심치 않게 있어 걱정스럽게 하고 있다.

결혼 적령기에 있는 청년에게 배우자 선택 기준에 대해 물어 보면 < 무조건 예뻐야 한다.>는 답변으로 부모의 말문이 막히게 하는 젊은이들도 심심치 않게 있는 편이다.

그보다는 사람의 됨됨이와 인성, 일거수일투족을 중시하는 말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

진정 브랜드 가치가 높게 사는 예비 신랑신부는 어떤 사람이겠는가!

우리 주변엔 얼굴도 예쁘고, 일거수일투족이 칭송의 대상이어서, <비단보에 황금을 싼 보따리>를 번쩍거리면서 사는 아가씨도 상당수 있다.

하지만, 얼굴은 예쁜데, 인성과 그 됨됨이, 일거수일투족이 이맛살을 찌푸리게 하는, <비단보에 싼 개똥>으로 사는 아가씨도 심심찮게 볼 수 있어 안타깝기 그지없다.

'주례한테 인사 온 예비 신부들의 만물상'

우리는 내 아들 딸을 <비단보에 황금을 싼 보따리> 로 키우고 있는가?

아니면, <비단보에 싼 개똥>으로 키우고 있는가?

나는 과연 어떤 신랑 신부 감에 해당하는가?

내 번지수를 확실히 찾아 볼 일이로다.

남상선/수필가, 대전가정법원 전 조정위원

남상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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