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동길의 문화예술 들춰보기] 고품격 모임, 유숙의 <수계도>

  • 오피니언
  • 여론광장

[양동길의 문화예술 들춰보기] 고품격 모임, 유숙의 <수계도>

  • 승인 2024-05-10 19:16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12333
새로 지정한 보물 김홍도의 <서원아집도>를 소개하다, 옛사람의 우아한 모임에 대해 언급하자 토 다는 사람이 있다. 지금도 멋진 만남이 많다는 것이다. 모임의 목적과 내용, 의식에 대한 성찰이지, 좋은 집회가 없다는 뜻이 아니다. 예나 지금, 누구나 멋진 내용으로 활동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 한다. 다만, 편의 위주, 경제 위주, 인연 따라 하는 것이 아쉽다는 말이다. 하다못해 모임 날 하나도 매번 택일 했던 것과 달리, 매월 모일, 몇 번째 요일 등으로 정한다. 하나하나 정성을 다했던 것과 비교된다. 날 받아 온다고 하지 않았는가, 전문가에게 묻기도 했다. 택일의 목적인 운수 같은 것을 믿고 안 믿고는 차후문제다. 정성이 중요하다는 의견 개진이다.

좋은 날로 양수(홀수) 또는 양수가 겹치는 날을 선호했다. 음양오행설이 기반이다. 음양이 서로 의존하지만, 양이 상징하는 것은 빛, 밝음, 하늘, 건조함, 굳음, 능동성 등이다. 새로운 해가 열리는 설날(1.1), 봄이 열린다는 삼짇날(3.3), 양기가 가장 왕성하다는 수릿날(단오, 5.5), 견우와 직녀의 사랑이 담긴 칠석날(7.7), 어른을 모시고 시와 국화주로 즐긴 중양절(9.9) 등이다. 모두 존중과 배려가 담긴 명절이기도 했다.



선망의 대상이었던 아회 하나 더 소개하자. <난정수계(蘭亭修?)>이다. 서성으로 숭앙받는 중국 동진의 서예가 왕희지(王羲之, 307 ~ 365)가 353년 3월 3일 난정에서 주선한 시회이다. 수계는 맑은 물에 몸과 마음을 닦아 묵은 때와 부정한 기운을 없애는 것이다. 초대된 문인은 42명이다. 이날 참석한 문인 21명이 쓴 시 37편을 묶은 <난정집>, 왕희지가 썼다는 서문에 의하면, 난정은 높은 산과 험한 산줄기, 무성한 숲속에 좌우로 물이 흐르는 곳이다. 물길 끌어다 곡수(曲水) 만들어 술잔을 띄운다. 하늘은 깨끗하고 맑으며, 봄바람이 더 없이 따뜻하고 부드럽다. "보고 듣는 즐거움을 마음껏 누리기에 충분하여 참으로 기쁘기 한이 없다. 무릇 사람이 서로 어울려서 한평생을 살아가되, 어떤 이는 마음속에 품은 생각을 벗과 마주 앉아 이야기하고, 어떤 이는 자신에게 맡겨진 바를 대자연에 맡기어 노닐기도 한다. 비록 나아감과 물러남이 서로 다르고, 고요함과 시끄러움도 같지 않으나, 자신의 처지를 만족하며 잠시나마 득의(得意)하면 기쁘고 흡족하여 장차 늙음이 다가오고 있는 것도 모르는 법이다."

아회에 대한 선망이 대단하여, 시회도 만들고, 신라의 경주 포석정, 조선의 창덕궁 후원 옥류천 바위 위의 유배거와 같은 유상곡수(流觴曲水)도 만들었다.



<난정수계>가 있은 후 1500년이 지난 1853년 3월 3일 조선의 남산 기슭에서 수계가 다시 열렸다. 육교시사(六橋詩社)가 주최한 것으로 추정된다. 여항문인 30명이 모였다. 미술사가 조정육이 <주간조선>에 게재한 '그림 시에 빠지다'에 의하면, 모임의 주도자 소당(小棠) 김석준(金奭準·1831~1915, 예서와 지두화에 능)은 23세, 도화서 화원 유숙(劉淑, 1827 ~ 1873)은 27세, 최연소자 안재흥(安在興)은 20세, 최고령자였던 변종운(卞鍾運)은 63세로 연령층이 다양했다고 한다. 노소가 함께하는 바람직한 모임 형태다.

이날 모임의 현장모습을 그려낸 것이 유숙의 <수계도(유숙, 1853, 지본담채, 30 × 800cm, 개인소장)>이다. 유숙은 시회 '벽오사'의 일원이기도 하다. 그림의 전체 길이가 8m에 이른다. 맨 오른쪽에는 원래 김정희(金正喜)와 전기(田琦)의 축두(軸頭)가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사라지고 없다. 그림 오른쪽 입구에는 반갑게 수인사 나누며 등장하는 6명의 문인이 보인다. 중앙에는 22명의 문사와 차 끓이는 다동이 배치되어 있다. 중앙 탁자 위에는 문방사우와 서책 등 몇 가지 물품이 놓여있다. 책을 읽거나 글쓰기도 하고, 감상도 하며 삼삼오오 담소 중이다. 두 사람은 언덕의 바위 위에서 경관을 즐기며 사색하고 있다. 하나같이 의관정제에 합죽선과 장죽으로 모양을 냈다. 참석자 모두 품격을 높이려는 노력이 아니랴. 이어서 30명 전원이 쓴 30수의 시문과 1857년 봄에 이상적(李尙迪)이 이 두루마리를 본 기록이 있다. 이어서, 그 다음에 바로 쓴 김석준의 글에 의하며, 원래 추사(秋史)가 추제(追題)를 써 준다고 했으나 한 해 전에 돌아가시자(1856년) 지난날 써 준 '서화동심처(書畵同心處)'와 전기(田琦)의 '청인굴(淸人?)'로써 축머리를 장식했다고 밝히고 있다.

등장인물 모두 표정이 다르다. 인물화에 능한 유숙의 솜씨이기도 하려니와 현장에서 직접 실사한 탓도 있으리라. 배경으로 등장하는 풍경도 예사롭지 않다. 전체적인 느낌만으로도 품위와 아취가 느껴진다.

동경하는 모습, 삶의 모델을 구현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집단이 하는 것은 더욱 어렵다. 그렇다고 무엇인가 남기자는 것은 아니다. 보여주고 남기기 위한 시대가 아니다. 스스로의 고품격 행위 자체를 즐겁게 향유하는 시대다. 늘 창의적으로 기획하고 준비하는 습관이 중요하다. 창의력 발위가 어려우면 고상한 대상의 재현이라도 해보자.

양동길/시인, 수필가

양동길
양동길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애터미 '사랑의 김장 나눔'… "3300kg에 정성 듬뿍 담았어요"
  2. 김해시, 2026년 노인일자리 7275명 확대 모집
  3. 당진시, 신규 공무원 임용식 개최
  4. "철도 폐선은 곧 지역소멸, 대전서도 관심을" 일본 와카사철도 임원 찾아
  5. 전기차단·절연 없이 서두른 작업에 국정자원 화재…원장 등 10명 입건
  1. 30일 불꽃쇼 엑스포로 차량 전면통제
  2. <인사>대전시
  3. 충남대-대전시 등 10개 기관, ‘반려동물 산업 인재 양성 업무협약’
  4. 대전시 제2기 지방시대위원회 출범
  5. 김태흠 충남지사, 천안아산 돔구장 건립 필요성·추진 의지 거듭 강조

헤드라인 뉴스


누리호 4차 발사 성공… 민간주도 우주시대 첫발

누리호 4차 발사 성공… 민간주도 우주시대 첫발

27일 오전 우주로 날아간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 4차 발사가 성공하며 뉴스페이스 시대 개막을 알렸다. 배경훈 부총리 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이날 오전 2시 40분 누리호 4차 발사 결과 브리핑을 통해 발사 결과를 직접 발표했다. 배 부총리는 "누리호 4차가 성공했다"며 "오전 1시 13분 고흥 나로우주센터서 발사된 누리호가 고도 601.3㎞ 궤도 속도 7.56㎞/s, 경사각 97.75도로 태양 동기 궤도에 성공적으로 진입했으며 탑재된 차세대중형위성 3호와 12기의 큐브 위성이 모두 성공적으로 분리돼 궤도에 안착했고 남극 세종기..

이번엔 반려동물 간식… 바이오 효소 들어간 꿈돌이 닥터몽몽 출시
이번엔 반려동물 간식… 바이오 효소 들어간 꿈돌이 닥터몽몽 출시

대전시는 26일 시청 응접실에서 대전관광공사, ㈜인섹트바이오텍과 함께 '꿈돌이 닥터몽몽' 출시를 위한 공동브랜딩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이번 협약은 캐릭터 중심의 제품을 넘어 지역 재료·스토리·생산기반을 더 촘촘히 담아야 한다는 취지로 대전의 과학·바이오 정체성을 상품에 직접 반영하려는 시도다. 이번에 출시 준비 중인 '꿈돌이 닥터몽몽'은 인섹트바이오텍의 연구 포트폴리오로 알려진 자연 유래 단백질분해효소(아라자임) 등 바이오 효소 기술을 반려동물 간식 제조공정 단계에 적용해 기호성과 식감 등 기본 품질을 고도화한 것이 특징이다. 인섹..

안전상식 겨룬 초등생들의 한판…공주 대표 퀴즈왕 탄생
안전상식 겨룬 초등생들의 한판…공주 대표 퀴즈왕 탄생

열띤 경쟁 속에서 펼쳐진 공주시 어린이 안전골든벨이 성황리에 마무리했다. 25일 공주환경성건강센터에서 공주시와 중도일보가 주최·주관한 '2025 공주 어린이 안전골든벨'이 열렸다. 이날 행사는 안전에 취약한 어린이들이 안전 상식을 재밌는 퀴즈로 풀며 다양한 안전사고 유형을 학습하기 위해 마련됐다. 이날 74명의 공주지역 초등학생들이 대회에 참가해 골든벨을 향한 치열한 접전을 펼쳤다. 본 대회에 앞서 심폐소생술 교육이 먼저 진행되자 학생들은 교사의 시범을 따라가며 "이렇게 하는 거 맞나요?"라고 묻거나 친구에게 압박 리듬을 맞춰보며..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구세군 자선냄비 모금 채비 ‘완료’ 구세군 자선냄비 모금 채비 ‘완료’

  • 가을비와 바람에 떨어진 낙엽 가을비와 바람에 떨어진 낙엽

  •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행복한 시간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행복한 시간

  • 대전시의회 방문한 호치민시 인민회의 대표단 대전시의회 방문한 호치민시 인민회의 대표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