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생의 시네레터] 역사 속 인간의 고통과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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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생의 시네레터] 역사 속 인간의 고통과 투쟁

  • 승인 2025-02-20 17:05
  • 신문게재 2025-02-21 9면
  • 최화진 기자최화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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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브루탈리스트' 포스터.
2차 대전과 나치 독일에 의한 희생자를 다룬 영화는 참으로 많습니다. 이 영화가 2차 대전과 관련한 기존 영화들과 다른 점은 가해자의 폭력과 피해자의 비극적 희생을 극단적으로 강조하거나 상징화 하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또한 작품의 무대가 독일이나 폴란드 등 유럽이 아니라 제3 지대라 할 수 있는 미국이라는 점이 중요합니다. 주인공 라슬로는 어쨌든 살아남았고, 인생의 기회를 다시 한번 얻을 수 있는 땅에 왔습니다.

가해자와 피해자를 극단적으로 대비할 경우 필연 선과 악의 윤리적 판단이 작용합니다. 그러나 이 영화는 주인공을 극단적 악의 반대편이 아니라 강함과 연약함, 선과 위선, 도덕과 부도덕, 윤리와 욕망을 함께 지닌 인간으로 그려냅니다. 그리하여 전쟁의 가해자인 나치 독일 역시 선을 탄압했다기보다 평범한 인간들의 욕망을 억압한 존재로 발견되도록 합니다. 영화 초반 주인공 라슬로가 매춘부를 찾는 장면을 노골적으로 오래 보여주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는 또한 마약을 하기도 합니다. 그런 그는 미국에 와서도 여전히 고통스럽습니다. 뉴욕의 자유의 여신상을 거꾸로 보여주는 의미심장한 장면처럼 그에게 그곳은 자유의 땅이 아닙니다. 도와주다가 차별하고, 배제하며, 천대하는 인간들투성이입니다. 그의 욕망은 한결같이 억압됩니다.

라슬로에게 건축은 이 모든 부당하고 부조리한 현실에 맞서 있는 그대로의 인간으로 서고자 하는 투쟁의 과정입니다. 노출 콘크리트 구조물 건축을 의미하는 브루탈리즘을 실천합니다. 아무런 장식도, 화려함도 없이 온전히 빛의 변화에만 의존하는 건축 양식은 그의 삶과 정신을 온전히 표상합니다. 천재 건축가인 그에 대한 몰이해와 혐오에도 그는 포기하지 않고 싸워나갑니다.

215분의 긴 러닝타임 중간에 15분의 인터미션이 있습니다. 앞뒤로 100분씩의 내용이 균형과 비례를 이룹니다. 천천히 스토리와 캐릭터를 쌓아가는 과정이 마치 건축과도 같습니다. 그리고 길. 이 영화는 때때로 내러티브 진행에 견주어 강하게 길을 보여줍니다. 삶을 대하는 라슬로의 열정과 이상을 짐작하게 합니다. 영화는 라슬로를 전쟁에서 살아남아 위대한 업적을 남긴 인물로 신격화, 신화화하지 않습니다. 연약한 인간이 온갖 간난신고를 뚫고 끝끝내 자신의 삶을 구축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평범한 재료인 콘크리트를 높이 우뚝 세워 하늘을 향하게 하는 그의 건축 양식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김대중(영화평론가/영화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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