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홍철 칼럼] 119. 위기 상황에 구별되는 인간 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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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홍철 칼럼] 119. 위기 상황에 구별되는 인간 유형

염홍철 국립한밭대 명예총장

  • 승인 2025-05-08 12:00
  • 현옥란 기자현옥란 기자
염홍철칼럼
염홍철 국립한밭대 명예총장
고등학교 학생 때 이어령 선생님이 쓴 '무익조'라는 단편소설을 읽고 많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무익조(無翼鳥)란 '날개 없는 새'라는 뜻이지요. 이 소설이 던진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그 뒤로 지금까지 '용기'에 대한 저의 판단 기준으로 삼고 있지요. 목소리 크고 체격이 좋고 지위까지 높은 사람에게서 '용기 있는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을 수 있는데, 알고 보면 '허당'인 경우가 많습니다. 요즘 들어 이어령 선생님의 '무익조'가 던지는 메시지가 더 와닿네요. 외관과 달리 사실상 '허당'들이 많이 눈에 띄니까요.

이 소설은 상반된 캐릭터를 가진 두 주인공을 대비시킵니다. 한 사람은 목소리 우렁차고, 힘이 세고, 운동 잘하고, 의리 있는, 씩씩한 사람인데 반해 다른 한 사람은 집안 형편은 좋았으나 육체적으로 병약하고, 또래 사이에서 '비겁자'로 놀림 받던 그런 사람입니다.



두 사람은 중학교 때 동급생이었지요. 첫 번째 사람은 평소에 죽음에서 도망치려 할 때 지르는 비명 소리를 비꼬면서, 자신은 절대로 비명을 지르며 살지 않겠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그 기질대로 장성하여 공군 파일럿이 되었지요. 두 번째 사람은 자신의 심약함을 스스로 인정하면서 친구들 앞에서 무릎을 꿇기도 했고, 나중에는 미국으로 도피 유학을 떠난 나약한 지성인입니다.

그러나 이런 외관상 이미지와는 달리 두 사람은 위기 상황에 처해서는 상반된 태도를 보입니다. 첫 번째 사람은 공군 대위로서 훈련 비행 중 비행기가 추락하여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 평소의 자신이 주장하던 것과는 달리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부하 훈련병의 비명을 외면한 채 혼자 탈출하여 목숨을 구합니다. 다른 한 사람은 미국 생활 내내 딱 벌어진 어깨에 어금니를 깨문 채 미소를 짓는 앞의 친구를 떠올리며 자신도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지 않겠다는 다짐하며 살았습니다.

이 단편 소설에는 누가 보아도 외견상으로 용기 있어 보이는 사람은 한계상황에서는 비겁한 모습을 보였고, 나약한 지성인은 자신과 조국 대한민국에 대해 깊은 성찰과 고민을 해 가면서 비겁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그런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이런 모습을 우리 주위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지요. 목소리 크고, 말끝마다 '목숨을 건다'라며 의리를 강조하는 사람이 실제로는 지극히 이기적이고 오히려 비겁한 모습을 보이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조용하고 나약해 보이지만 자신을 희생할 줄 알고, 주위 사람들에게 따뜻한 나눔의 정을 묵묵히 실천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지요.

누가 참 용기를 가진 사람이겠습니까? 개인보다는 공익을 위하는 것이, 투쟁보다는 설득을 통해 이루어내는 것이, 강함을 확고하게 보여주기보다는 유연성을 가지면서 겸손하게 대처하는 것이 진정한 용기라고 생각합니다.

용기 있는 삶이 필요합니다. 용기의 화신처럼 평가되는 처칠은 "용기는 모든 인간적인 특성을 보장해 주기 때문에 인간 최고의 특성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용기는 저돌적이고 맹목적인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가용자원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그것을 활용할 수 있는 차분한 지성에서 나오는 담대함입니다.

그리고 진정한 용기는 자신의 결점을 스스로 인정하고, 비판도 사랑하며, 때로는 자신의 이익도 포기할 줄 아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우리는 도처에서 비겁한 사람들을 많이 봅니다. 위기 상황에 처하면 자신만 살려고 진실을 왜곡하고 책임을 주위에 떠넘깁니다. 그래서 용기가 아니라 추함과 비겁함을 보이지요. 그러나 외관상 나약해 보이지만 끝까지 책임을 지고 정의를 위해서는 희생도 마다하지 않는 진정으로 '용감한' 사람들이 우리 주위에 많이 있어 희망을 주고 있지요.

염홍철 국립한밭대 명예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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