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게티이미지 |
화사한 그의 꽃
산에 언덕에 피어날지어이.
그리운 그의 노래 다시 들을 수 없어도
맑은 그 숨결
들에 숲 속에 살아갈지어이.
쓸쓸한 마음으로 들길 더듬는 행인아.
눈길 비었거든 바람 담을지네.
바람 비었거든 인정 담을지네.
그리운 그의 모습 다시 찾을 수 없어도
울고 간 그의 영혼
들에 언덕에 피어날지어이.
대학 시절, 대전 대흥동 큰 길가의 커피숍은 친구와 나의 아지트였다. '산에 언덕에'였다. 2층에 있었는데 우리는 창가에 나란히 앉아 밖의 풍경을 보며 재잘거렸다. 손님이 거의 없어 우리들의 다락방 같은 곳이었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오르다 보면 벽에 시 '산에 언덕에'를 적은 액자가 눈에 들어왔다. 다소 촌스런 그림에 검은 색 물감으로 시를 적어 놓았다. 커피숍 이름을 '산에 언덕에'로 한 것으로 보아 주인이 신동엽의 시를 꽤 좋아한 모양이다. 닳고 닳아서 모서리가 뭉툭한 짙은 갈색의 나무 탁자는 옛날 우리 집 마루 같아서 정감이 갔다.
친구와 나는 턱을 괴고 파르페를 먹으며 웃기도 하고 눈물 짓기도 하며 청춘의 몸살을 견뎌냈다. 가슴을 무겁게 짓누르는 현실이 진절머리 나는데도 파르페 위에 뿌려진 초콜릿은 왜 이리 달콤할까. 매캐한 취루탄 냄새와 독재자의 탐욕은 끝이 없고 청춘의 피는 들끓었다. 취루탄 파편을 맞고 축 늘어진 이한열의 머리칼이 6월의 햇살에 빛났다.
역사의 수레바퀴는 돌고 돈다. 권력자들의 아귀다툼은 여전하고 민초는 강인하다. 4.19 혁명도 그러했다. 이 땅의 신동엽들은 결기를 다졌다. 무능한 독재자를 내쳤다. 이승만 정권을 무너뜨리고 들어선 장면 정권도 도긴개긴이었다. 자유와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민초들의 염원은 무참히 깨졌다. 그리운 그의 얼굴의 무덤에 핀 꽃이 산에, 언덕에, 들에 피어나건만 쓸쓸한 바람만이 스친다. '그리운 그의 모습 다시 찾을 순 없어도 울고 간 그의 영혼 들에 언덕에 피어날지어이'. 우난순 기자 rain4181@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