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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문점에서 지루한 휴전 협상이 진행되고 있을 즈음, 어느 접전 지역의 중간 지점에 위치한 한 오두막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동족상잔(同族相殘)의 표본적인 피해자들이 모여들며 벌이는 또 다른 전쟁이 이 영화의 줄거리다.
눈 덮인 일망무애(一望無涯)의 산등성이에 자리한 한 채의 초가집에 과부(윤정희)가 살고 있다. 이 고립무원(孤立無援)의 초가집도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는 결코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래서 주인공 과부는 생존본능에 입각하여 낮에는 태극기, 밤에는 인공기를 문 앞에 걸어놓는 식으로 위험한 줄타기를 하고 산다. 산등성이를 울리는 몇 발의 총성은 두 명의 남자를 차례로 이 산골짜기의 초가로 쫓겨 오게 만든다.
정과 사람의 온기에도 약했던 홀로 초가를 지키던 여인은 이들에게 전쟁의 피난처를 제공해준다. 그러나 이 초가도 결코 안전한 피난처는 아니었는데….
대저 사람의 욕망은 식욕과 성욕, 수면욕이다. 이중에서 가장 강한 건 성욕이라 했던가. 초가의 과부는 가뜩이나 없는 먹을거리를 챙겨주고, 차가운 방이나마 함께 자게끔 배려해 준다.
그렇지만 여기로 찾아든 노인(장동휘)은 끝내 그 과부를 자신의 욕망의 대상으로 정복하고야 만다. 이튿날엔 또 다른 남자가 찾아드는데 혈기방장(血氣方壯)한 청년(김형일)이다.
젊은이는 동란의 와중에 발까지 다쳐 꼼짝을 못하는 늙은이로 인해 냉골이 된 건넌방에서 하룻밤을 겨우 지낸다. 그리곤 '고작' 하루 사이에 과부까지 점령한 늙은이가 한없이 부럽기만 하다.
작심한 젊은이는 20리나 되는 길을 걸어가서 한아름의 나뭇짐을 해 온다. 덕분에 세 사람은 모처럼 따뜻한 방구들(화기(火氣)가 방 밑을 통과하여 방을 덥히는 장치)에서 잠을 자는 호사를 누린다.
오랫만에 따끈한 밥까지 지어 먹은 과부는 늙은이를 건넌방으로 쫓아내고 건강한 청년의 육체를 받아들인다. 졸지에 안방에서 밀려난 노인은 무기력한 자신의 처지에 비참함을 느끼며 눈물짓는다.
'승자'가 된 청년은 따뜻한 안방에서 여인을 품에 안고 득의양양(得意揚揚)하게 잠들지만 이 또한 오래 가지 못한다. 길을 잃고 찾아든 한 젊은 색시(신영진)의 등장 때문이다.
전쟁통에 남편을 잃은 젊은 색시는 과부와 달리 정조를 지킬 줄 아는 여자였다. 자신을 거둬준 늙은이를 제2의 남편으로 모시겠노라 약속한다. 하지만 표리부동(表裏不同)한 젊은이는 나무를 하러 간 벌판에서 끝내 그녀를 겁탈한다.
너무나 부끄러워 겨우 집에 돌아와서도 이를 숨기지만 젊은이는 자랑스레 발설하여 화를 자초한다. 결국 세 사람은 죽고 죽이며 최후를 맞고 초가집은 불에 휩싸인다. 과부는 혼자 생존했지만 이미 제 정신이 아니다.
그녀는 습관처럼 태극기와 인공기를 양손에 들고 걸어 나가면서 영화는 막을 내린다. 우한 코로나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마스크 구입 전쟁까지 벌어지고 있다.
급기야 정부가 마스크 수급 문제의 해결책으로 '출생연도별 마스크 5부제'까지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이게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의 본질이냐?"는 국민적 불만이 임계점을 넘었다.
'만무방'의 본뜻은 '염치가 없이 막된 사람'을 의미한다. 우한 코로나 사태의 도래 전 나는 천원샾에서 지금도 쓰고 있는 마스크 15장을 고작 1천 원에 샀다. 그러나 지금은?!
흡사 만무방 같은 정부의 늑장 대처(對處)에 국민들은 지금 분노를 넘어 집단우울증까지 앓고 있다. 슬기로운 대처(對處)가 아닌 방화 '만무방 식 임기응변'(臨機應變)의 대처(帶妻=아내를 둠)는 『만무방』 영화의 종말처럼 모두를 자칫 비극과 파멸로 몰아가는 단초가 될 수도 있다.
홍경석 / 수필가 & '사자성어를 알면 성공이 보인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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