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톡] 온혈 가슴에도 시동 장치가 있는걸까?

  • 오피니언
  • 여론광장

[수필 톡] 온혈 가슴에도 시동 장치가 있는걸까?

남상선/수필가, 대전가정법원 전 조정위원

  • 승인 2024-05-29 00:00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세상 불협화음을 듣기 싫고 바쁜 체하는 생활을 하다 보니 TV 시청을 한 지 오래 됐다.

모처럼 TV 리모컨을 들었다. 내키지는 않았지만 무료함을 달래보려 TV 채널을 돌렸다. 채널을 돌려 TV조선2에 고정시키고 시청을 했다. 마이웨이 인생극장으로 효녀 가수 현숙의 삶이 방영되고 있었다.

효녀 가수 현숙은 2004년부터 2019년 현재까지 전국의 어르신들을 위한 목욕 차 17대를 기증하고 봉사한 미담이 나오고 있었다. 말하자면 이동하는 욕장(浴場)을 만들어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이 사용하실 수 있게 해드린 것이었다. 그녀는 말하기를 목욕 차 한 대 두 대 늘어나는 것이 기쁨이라 했다. 시집도 안 간 처녀가 "목욕 차량 이것은 내 자식이다"라고 했다. 아이러니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었다. 속세에 찌든 돈 걱정으로 울고 웃고 부대껴가며 살아가는 범인으로서는 우러러 보이는 향의 삶이 아닐 수 없었다. 보통 사람과는 차원이 다른 여인이었다. 목욕 차량 한 대 값만 하더라도 5천만 원인데 돈은 생각지 않고 사는 여인이었다. 사회를 위해서 불우한 사람들을 위해서 일하는 천사라 해도 잘 못 된 이야기가 아닐 것 같았다. 엄청난 돈을 쓰면서도 여전히 웃는 낯으로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동분서주(東奔西走)하고 있었다.

거동이 불편하신 어른들을 위해 닥치는 대로 못 하는 일이 없는 그녀는 예사로운 사람이 아니었다. 노래 공연으로 어르신들을 기쁘게 해드리고 거동이 불편한 분 휠체어를 밀어드리며 짬을 내어 팔, 다리까지 주물러 드리고 있었다. 또 경로잔치 모임에 가 막걸리 상 안주 부침개를 부치고 나르고 하면서도 얼굴엔 밝은 미소가 달려 있었다. 모태 천사가 따로 없었다. 그 장하고 기특한 심성과 행동은 가히 훈장으로서도 안 되는 기림의 대상이었다.



현숙 가수의 지인인, 방송인 김혜영 MC가 어느 날 신장이 나빠서 걱정하고 있을 때, "난 건강해서 신장 두 개가 다 없어도 된대. 내 신장 한 개 줄게"라고 하는 말에서 가슴이 뭉클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남을 위한 일이라면 앞뒤 재지 않고 나서는 그녀의 헌신적 희생적 정신에 머리가 숙여지지 않을 수 없었다. 세속인의 이해타산과는 거리가 멀게 사는 여인이었다. 시간만 있으면 그 그늘진 곳의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희로애락을 함께 하는 그녀의 숭고한 정신에 마음 모두를 빼앗기고 말았다.

오욕칠정에 눈이 멀어 주판알만 굴리고 있는 세속인의 모습과는 영 대조가 되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크게 없는, 세 가지가 있었다. 부모, 배우자, 자녀, 세 가지 중 배우자와 자녀는 마음과 의지만 있으면 시간이 해결해 줄 수 있는 거지만, 돌아가신 부모님은 세상 다하는 날에 천지개벽까지 더해도 모실 수 없는 분이기에 마음이 아팠다.

그러기에 그녀는 어르신들을 자신의 부모처럼 지극정성의 효심으로 모사는 지도 모른다. 반포보은(反哺報恩)을 하고 사는 까마귀에 부끄럽지 않게 살고 있어 인간 거목 중의 거목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것 같았다.

온혈 가슴에도 시동 장치가 있는걸까?

그녀는 측정할 수 없는 온도계의 눈금으로 온혈가슴의 효심이란 묘목을 방방곡곡에 심어 가며 살고 있었다. 그것도 늘 웃는 밝은 얼굴로 어른들의 팔다리가 되어 풍수지탄(風樹之嘆)의 한을 덜어가고 있었다. 그녀가 가는 걸음걸음에는 백유읍장(伯兪泣杖)의 마음이 묻어나고 온혈가슴의 시동이 걸리고 있었다. 온혈가슴의 시동에서 나오는 사람 냄새와 훈기는 용광로가 뿜어내는 열기로도 감당이 안 될 것 같았다. 그녀의 온혈 가슴에서 발열되는 사랑의 온기는 이 골목 저 골목 어르신들의 가슴을 녹이고 있었다. 노인들의 눈에서는 답례의 어룽어룽한 눈물이 지도를 그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표정이 한 없이 밝고 명랑해 보였지만 들여다볼 수 없는 내면에는 그녀만의 숨겨진 외로움이 숨 쉬고 있는 것 같았다. 그건 바로 조실부모(早失父母)하고 사고무친(四顧無親)으로 사는 숙명적인 고독이요 외로움인 것 같았다.

그래서 그녀는 표정과는 달리 마음으로 울고 서러워하는 것이 틀림없었다.

카네이션은 있는데… 그것을 가슴에 달아드릴 부모는 없었다. 어머니 아버지는 아주 먼 곳에 계시었다.

풍수지탄(風樹之嘆)의 한을 짊어지고 사는 여인이었다.

그러기에 부모님께 드리지 못하는 효심을 이 땅의 아사달 어르신들께 배급하는 거였다.

말하자면 전국의 어르신들이 그녀의 어머니요 아버지가 되는 대리만족으로 살고 있었다.

'나무가 고요하고자 하나 바람이 그치지를 않고 자식이 봉양코자 하나 어버이가 기다려 주지 않는다.'

불현듯 이 한 구절이 비수처럼 파고들어 못난이의 가슴을 후벼파고 있었다.

잘난 사람 못난 사람 그 누구도 때를 놓치고 하는 풍수지탄(風樹之嘆)으로 누더기가 된 아픈 마음을 매달고 사는 바보는 되지 말아야겠다.

살아갈 날이 얼마나 남았다고!

부모님이 구존한 사람은 맹종동순(孟宗冬?)의 마음으로 하늘에 모신 사람은 현숙 가수의 그 따뜻한 온혈가슴으로 식지 않는 시동으로 풍수지탄의 한을 덜어내는 삶을 살아야겠다.

내 주소는 어디라 할 수 있는가?

나는 그 어떤 가슴으로 살고 있는가!

남상선/수필가, 대전가정법원 전 조정위원

남상선
남상선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서산을 비롯한 서해안 '물폭탄'… 서산 420㎜ 기록적 폭우
  2. [우난순의 식탐] 열대의 관능과 망고시루의 첫 맛
  3. 세종시 북부권 중심으로 비 피해...광암교 붕괴
  4. 김석규 대전충남경총회장, 이장우 대전시장과 경제발전방안 논의
  5. [대전다문화] 아이들의 꿈과 열정, 축구
  1. 국민연금공단 대전·세종본부, 취약계층 아동 지원
  2. 세종시, 에너지 자립 스마트시티로 도약 선언
  3. [대전다문화] 도움이 필요하신가요? 사례관리 신청하세요!!
  4. 한밭대 성백상·이주호 대학원생, OPC 2025 우수논문상
  5. 초복 앞두고 삼계탕집 북적

헤드라인 뉴스


충청 덮친 ‘500㎜ 물폭탄’… 3명 사망 피해신고 1883건

충청 덮친 ‘500㎜ 물폭탄’… 3명 사망 피해신고 1883건

16일 밤부터 17일 오후까지 충청권에 500㎜가 넘는 물 폭탄이 쏟아지면서 곳곳에서 인명사고 등 비 피해가 속출했다. 시간당 110㎜ 이상 기록적 폭우가 내린 서산에선 2명이 사망했고, 당진에서도 1명이 물에 잠겨 숨지는 등 충남에서 인명사고가 잇따랐으며, 1800건이 넘는 비 피해가 접수됐다. 세종에서는 폭우로 인해 소정면 광암교 다리가 일부 붕괴 돼 인근 주민 30명이 식당으로 대피하는 소동이 빚어졌다. 17일 충청권 4개 시·도 소방본부에 따르면, 이날 오후 3시까지 충남 지역에만 1883건, 충북 222건, 세종 48건,..

[WHY이슈현장] 꿀벌이 사라진다… 기후위기 속 대전양봉 위태
[WHY이슈현장] 꿀벌이 사라진다… 기후위기 속 대전양봉 위태

우리에게 달콤한 꿀을 선사해주는 꿀벌은 작지만 든든한 농사꾼이기도 하다. 식탁에 자주 오르는 수박, 참외, 딸기 역시 꿀벌들의 노동 덕분에 먹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전 세계 식량 공급의 약 90%를 담당하는 100대 주요 농산물 중 71종은 꿀벌의 수분 작용에 의존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꿀벌들이 사라지고 있다. 기후변화와 '꿀벌응애'라는 외래종 진드기 등장에 따른 꿀벌 집단 폐사가 잦아지면서다. 전국적으로 '산소호흡기'를 들이밀듯 '꿀벌 살리자'라는 움직임이 일고 있으나 대전 지역 양봉..

`해양수산부` 부산 이전 효과 100배? 역효과는 외면
'해양수산부' 부산 이전 효과 100배? 역효과는 외면

해양수산부의 부산 이전이 가져올 효과는 과연 세종시 잔류보다 100배 이상 크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 객관적 분석 자료에 근거한 주장일까.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4일 충청 타운홀 미팅, 전재수 해수부 장관 후보가 14일 청문회 자리에서 연이어 강조한 '이전 논리'다 하지만 이를 뒷받침할 만한 '효과 분석' 지표는 없어 지역 갈등과 분열의 씨앗만 더욱 키우고 있다. 사실 이는 최소 6개월 이상의 용역(가칭 해수부의 부산 이전 효과)을 거쳐야 나올 수 있을 만한 예측치로, 실상은 자의적 해석에 가깝다. 해수부의 한 관계자는 "수도권 일..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폭우에 대전 유등천 교량 통제 폭우에 대전 유등천 교량 통제

  • 민생회복 소비쿠폰 접수창구 준비 민생회복 소비쿠폰 접수창구 준비

  • 밤사이 내린 폭우에 충남지역 피해 속출 밤사이 내린 폭우에 충남지역 피해 속출

  • 폭우 예보에 출입통제 폭우 예보에 출입통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