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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충식 논설실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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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고전적으로 파고들면, 개발(exploit)이 발전(develop)을 얻는 수단이고 발전은 개발의 (착한) 결과다. 개발은 발전의 필요조건이나 충분조건일 수는 없다. 그러나 '발전이 개발보다 좋다'거나 '개발이 발전보다 나쁘다'는 명제가 꼭 성립하지는 않는다. 양적인 발전, 질적인 개발이 있는 법이다. 이런 중의법을 모르지 않을 연구원의 개명에서 건설이나 토건 등 하드웨어적 성장을 넘겠다는 의욕이 읽힌다. 그냥 놔두면 훼손될 대상을 지키는 '보존'이나 현재 상태로 있게 하는 '보전'도 물론 강화돼야 한다.
쓰다 보니 중도일보 사시(社是)인 '지역(사회) 개발'을 짚고 가야 할 일이 생겼다. 1951년 신문 창간 무렵 아메리카에서 따끈따끈하게 창안된 '개발주의'의 지구화인 근대화론은 당시로서는 선구적인 수용이었다. 정부주도형의 '발전국가' 체계가 불가피했고 근대화=개발=발전의 주류발전론이 대세였던 한 시대를 함께했다. 그러면 시대정신을 좇아 사시를 '지역발전', 아니면 다른 걸로 대체할 것인가. 결론부터 내밀면 그럴 필요는 없을 것이다.
'개발'의 뜻에 산업이나 경제를 '발전'시키는 것도 있다. '개발하다'는 2차 대전 후 '발전하다'의 의미가 자꾸 덧칠된다. 정치적 목적이 가미된 해리 트루먼 대통령의 취임사가 분기점이다. 디벨로프는 '발전하다, 개발하다, … (상황이) 전개되다, (전선을) 확대하다, (버릇이) 생기다, (기술을) 익히다, (전략을) 세우다' 등으로 무한 증식을 거듭한다. 싫은 예지만, '메르스에 걸리다'를 'developed MERS'로 쓰면 된다. 발전과 개발은 유의관계도, 동의관계도 된다.
구분이 이처럼 무의미하거나 유의미성의 기준이 모호해지는 가운데 대전발전연구원도 새 작명을 고려중이라 한다. 한정 기술을 '정책'으로 바꾼 '대전정책연구원'은 어떨까. 간판보다는 자립성의 향상, 내발성의 확립, 생태적 건강성의 증진 등 지역발전 전략이 더 중요할 것이다. 모든 '연구원'에 해당하는 이야기다.
광주발전연구원과 전남발전연구원의 경우는 어제(24일) 통합 연구원 창립총회를 열었다. 뚱딴지같은 이야기인가 하겠지만, 대전발전연구원과 충남연구원이 합쳐 대전충남연구원이 됐다고 가정하면 얼마나 획기적인 일인지 알 것이다. 난산을 거듭한 세종발전연구원도 독립기관은 뒤로 미루고 인근 지방자치단체와 공동연구원으로 가면 어떨지, 힌트를 얻게 된다. 성장과 발달을 멈추면 곧 정체다. 이름표에서 '발전'을 뗀 충남연구원이지만 충남 발전을 위한 싱크탱크 역할은 후진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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