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날 기고] 자랑스런 우리 글자, 훈민정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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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날 기고] 자랑스런 우리 글자, 훈민정음

장준문 / 조각가, 수필가

  • 승인 2018-10-10 10:18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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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날과 함께 우리 한글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본다. 한글은 누구나 알듯 훈민정음을 뿌리로 하고 있다. 훈민정음은 월인석보(月印釋譜) 서문의 "어린 백셩이 니르고자 할 배 이셔도‥"라는 구절이 말해주듯 우리의 말글이 없어서 어려움을 겪는 백성들을 위해 만든 애민정신의 결과물이다. 월인석보는 세종대왕이 왕자시절의 수양대군이 석가여래의 행적에 관해 쓴 석보상절(釋譜詳節)을 읽고 그 감명을 쓴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을 개고(改稿)하여 두 책을 합편한 불경언해서다.

겨레말글의 근간이 되는 훈민정음은 흔히 세종대왕이 집현전 학사들과 함께 만들었다고 알려져 왔으나 실은 그 중심에 천재적 언어학자로 집현전학사 출신인 신미대사(信眉大師, 본명:김수성)가 있었다. 그는 한글창제 조력자의 한 사람인 집현전 학사 김수온(金守溫)의 형으로 위대한 학자며 고승으로서 세종의 왕사(王師) 역을 한 분이다. 그의 제안으로 속리산 법주사의 복천암(福泉庵)에 정음청(正音廳)이라는 기구를 만들어 한글창제의 비밀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한글창제를 비밀리에 추진하게 된 것은 지금으로선 이해하기 어렵지만 조선이 독자적인 문자를 갖는다는 건 사대국인 명 황제에게 불충이 될 수 있고, 또한 유신(儒臣)들의 반대도 우려했기 때문이다. 세종이 일러준 글자원리를 근거로 신미대사 스스로 능히 알던 범어(梵語, 산스크리트어)의 자모원리를 연구하여 그 기본을 완성했다. 이렇게 본다면 훈민정음의 창제는 세종대왕의 창(創)과 신미대사의 제(制)로 이루어 진 것이라 할 수 있다.

훈민정음은 세종대왕과 신미대사의 교감으로 철저히 불교적 원리를 근본으로 했다. 훈민정음해례본 33장은 불교의 우주관인 33천을, 자모 28자는 욕계, 색계, 무색계의 3계 28천을, "나랏말싸미"로 시작되는 훈민정음 서문 108자는 백팔번뇌를 상징하는데 한자서문은 꼭 그 절반인 54자로 되어 있다고 한다.

그러나 숭유억불을 국정의 기본으로 하는 조선에서 불교적 원리를 활용했다는 이유로 최만리 등 원로들이 그 부당함을 상소하고 '통시글'이라는 등으로 비하했다. '통시'란 화장실의 속어로 "뒤 보는 시간이면 익힐 수 있는 하찮은 글"이라는 비아냥이었다. 뒤집어 보면 한글은 그만큼 쉽고 우수한 언어라는 뜻이다. 위대한 우리 한글의 토대가 된 훈민정음은 우여곡절 끝에 세종 28년인 1446년 마침내 반포되었다.

훈민정음은 '예의(例義)'와 '해례(解例)'로 크게 나누어진다. 그런데 한글의 창제 이유와 간략한 사용법에 관해 세종이 직접 지은 '예의'는 세종실록 등에 실려 전해졌으나 창제의 원리 등은 알지 못한 채 수 세기가 흘렀다. 그러다가 일제강점기이던 1940년 안동의 엿장사 목판에서 '훈민정음 해례본'이 발견되었다. 훈민정음 해례본은 성삼문, 박팽년 등 집현전학사들이 만든 것으로서 한글창제의 원리와 구조, 형태 등을 구체적으로 설명해 놓은 책이다. 첫머리에 "나랏말싸미"로 시작되는 서문이 실려 있는데 그 존재가치는 값으로 따질 수 없을 만큼 엄청나다. 해례본 발견소식을 접한 당대 최고의 수집가인 서울의 간송 전형필 선생이 막대한 비용으로 그 목판본을 사들여 간송미술관에 보관하게 되었다. 만일 간송 선생의 그런 애국적 의지가 없었다면 지금 우리 한글은 상당부분 역사적 근거를 잃어버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실제 우리의 민족정신 말살을 획책하던 간악한 일제는 그 훈민정음 해례본만 없애버리면 한글이 뿌리 채 사라지는 것이므로 갖은 계략을 다 썼다. 그러다 여의치 않자 훈민정음이 고작 18세기에 만들어 진 것이라는 등 그 가치의 폄훼를 기도했으나 간송 선생의 절절한 애국 혼으로 기필코 지켜냈던 것이다. 며칠 전 KBS 1tv 프로그램인 '천상의 컬렉션'에서 일제강점기에 일본으로 넘어갔다가 개스비라는 영국인 수집가의 손에 들어 간 스무 점의 국보나 보물급 고려청자들을 간송 선생이 전 재산을 팔아 사들여 왔다는 내용이 방영됐는데 그분의 민족의식이 어떠했는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훈민정음 해례본에는 '상주본'이라는 것도 있는데 고서적 판매상인 상주의 배익기라는 사람의 손에 있다. 그 상주본은 소유권 소송과정에서 밝혀 진 바에 따르면 안동의 광흥사 불상 안에 있던 것을 어떤 문화재 절도범이 훔쳐 상주의 조 모 씨에게 팔아넘긴 것을 다시 배익기가 훔친 것이라고 한다. 우여곡절 끝에 문화재청과의 소송에서 다행히 소유권은 국가로 회수됐다. 그러나 배익기의 1천억 원이라는 어마어마한 금전적 배상 요구로 아직 미회수 상태다. 게다가 가택의 화재와 관리 소홀로 인해 일부가 불에 타고 젖은 얼룩이 있어 귀하디귀한 문화재의 보존이 심각히 우려되는 상황이다.

훈민정음 해례본처럼 귀중한 서책들은 전쟁 등 재난으로 인한 멸실을 우려해 산중의 사찰 등에 분산보관 하는 것이 상례였다. 훈민정음 해례본이 실린 월인석보는 30권 이내가 현존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필자의 고향인 영주의 희방사 소장 1, 2권, 인근의 비로사 소장 7, 8권 등 열 두 권이 몇 군데에 나눠 보관되고 있는데 희방사 본 1권의 첫 머리에 훈민정음 서문이 실려 있다.

훈민정음은 1962년 12월 국보 70호로 지정됐고 1997년 10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됐다. 유네스코에서는 한글의 우수성과 창제의 주역인 세종대왕의 업적을 기려 '세종대왕상'을 제정해서 1990년부터 매년 9월 8일 세계의 문맹퇴치에 기여한 개인이나 단체를 지정해 수여해 오고 있다.

장준문 / 조각가, 수필가

장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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