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연의 산성 이야기] 계백과 5천결사대 비장한 결의 느껴

[조영연의 산성 이야기] 계백과 5천결사대 비장한 결의 느껴

제14회 황산성(黃山城, 黃城-연산면 관동리, 기념물50호)

  • 승인 2017-09-15 00:00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2-1논산황산성전경
논산 황산성 전경


충남 논산시 연산면 소재지에서 북쪽으로 관동리 황산성 표지판을 따라 들어가면 호남선 철도를 지난다. 거기서 3, 4km 더 지나 노인회관 좌측으로 아스팔트 포장의 마을길을 계속 좇아가면 꼬부랑 산길이 비스듬히 임도처럼 나 있다.

둘레 약 870m의 테뫼식 산성으로 백제 최후 결전장의 심장부에 있었던 유서 깊은 성이다. 백제뿐만 아니라 후삼국 역사에서도 어떤 작용을 했을 가능성은 크다.

표지판 뒤로 조금 오르면 물이 약간 흐르는 계곡 50여 m 위, 성의 남벽이 눈에 확 들어온다. 이젠 거의 다 무너졌지만 성의 모습은 대번 알 수 있다. 남문에 오르도록 무너진 돌틈으로 작은 계단이 나 있다. 남문 위에 서면 아늑한 분지가 억새숲 사이로 전개된다. 동?서?북벽은 활처럼 둥그런 모양을 했으며 그 시위 구실을 하는 남벽은 미인의 눈썹같이 휘었다.



일부 잔존 성벽을 보면 막돌로 내탁기법을 사용하여 허튼층쌓기를 했다. 성은 북쪽 맨 뒤 정상 봉우리를 중심으로 좌우 능선을 따라 축조했으며 성 폭은 대략 상부 1미터, 하부 3~4미터 가량으로 추정된다.

2-2황산성동벽
황산성 동벽 모습


북쪽에는 자연지형을 이용한 가운데 부분적으로 2, 3m 정도 원래의 모습이 군데군데 남았다. 제법 널찍한 공터(현재 민묘가 차지함)가 장대지의 위치가 아니었던가 한다. 여기서는 남쪽 멀리 수락산까지 내다보이며 연산들(황산벌) 치열했던 격전장이 모두 다 조망되며 동편으로는 아들 신검에 의해 갇혔다 탈출하여 왕건과 합세, 후백제를 문 닫도록 한 최후의 전장 개태사(開泰寺)의 곡간 지대가 연산 시가지로 이어진다. 왕건이 승리한 데 감사의 마음으로 개태사를 열고 하늘이 보호해 준 산이라 하여 이름 붙여진 천호산 줄기가 황령재를 거쳐 황산벌까지 길게 능선지어졌다.

고려 말에는 진포 쪽으로 들어온 왜구들이 개태사 근처까지 들어와 행패를 부린 일도 있었다. 성 서쪽(좌측) 바로 아래로 양화산성을 지나는 웅진길이 열렸다. 남쪽에는 사비로 나아가는 교통로(현재 4호선 국도)가 지척지간이다. 동부로부터 쳐들어오는 적을 방어하는 것이 이 성의 존재 가치의 전부라 해도 좋을 것이다. 성의 배후 북쪽은 마치 용이 꿈틀거리는 듯 구불구불하게 계룡산까지 이어지는 능선이다. 황산벌 전투 지역 중앙에 들어 있어 이 일대 거점성이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서벽 중간 아래에는 협축한 모습이 남았다.

동·서·북문지의 모습들은 각 능선 위에 있지만 남문지는 계곡 중간부 낮은 지역에 위치했다. 네 문지 중에서 남문으로 올라오는 길목만이 평탄하여 통용문은 주로 이 곳이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성 아래에서 문으로 오르는 길은 약간 비스듬히 나서 직접 들어갈 수 없으며 계단으로 이뤄졌던 것 같다. 북쪽 정상부 아래 삼태기의 안처럼 아늑하고 넓은 공간에 수 채의 건물들이 있었음직하다. 실제로 이 공간 중간 중간에 돌덩이와 기와 조각들이 무더기로 섞인 채 남아서 그를 뒷받침한다.

2-3우물과집수지(논산황산성)
황산성 우물과 집수지


그 상부에는 현재도 맑은 물이 솟는 아담한 우물이 존재해서 주변을 운치 있게 석축으로 꾸민 예쁜 연못 속으로 물을 흘린다. 아마 실제로는 이 연지가 멋보다는 우물로부터 흘러나오는 물을 저수했다가 유사시 활용하고자 한 목적이 더 컸을 것이었겠지만 여러 성들 중에서 궁성의 화려함, 큰 성의 연못에서 느끼는 위압감 등과 달리 이만큼 소박하고 자연스런 미를 간직한 곳이 현존 성들 중에는 별로 없을 듯하다.

못 주변은 잘 다듬은 직사각형 돌을 재료로 직경 7~8미터 원형으로 정교하게 석축했다. 폭과 깊이 30센티 가량의 노출된 작은 배수로가 정면으로 길게 나 호리병 형태를 하고 있다. 가을의 노랗고 부드러운 잡풀, 갈대 사이로 스쳐오는 바람소리가 연못과 어울려 어느 고가의 정원처럼 멋스럽기까지 하다. 따뜻한 양지 속 아늑한 분위기가 배롱나무 한 그루쯤 갖춰져 있다면 더없이 아늑하고 멋있는 분위기를 자아낼 듯하다. 관리를 안 하여 못물이 파란 이끼로 차 있다. 계획적으로 잘 만들어진 작은 배수로를 통해 넘치는 물은 남문 옆으로 빠져 입구 계곡으로 흘러내리도록 만들어 10여 미터 아래 돌 틈에서 그 물이 솟아나오는 것만 발견된다.

2-4논산황산성연지
황산성 연지


「輿地勝覽」에 “군창지(軍倉址)와 우물이 있다”는 기록으로 미뤄볼 때 당시 이 성에는 많은 군사가 주둔하여 활동하였음을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성내에서는 삼국시대 기와와 토기, 조선시대 백자편까지 발굴되었으며 발굴된 기와 조각에 “大安元年(1209년. 고려 희종5)”이라는 명문이 있었다고 한다. 출토물로 미뤄 이 성이 백제시대 축성된 후 고려, 조선까지 계속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정상에 서서 황산벌을 바라보며 천오백 년 전으로 돌아가 5000의 결사대로 신라군을 맞아 싸우던 백제군들의 모습과 계백의 비장한 결의를 상기해 본다. 외성리 남쪽 감곡리에는 계백장군 묘소와 그를 받드는 충곡서원(忠谷書院)이 있다. 시원스럽고 평화롭기만 한 놀뫼 들을 바라보면서 맛보는 감정이 묘하다. 천사백 년 전 황산벌 전투에서 쫓긴 어느 병사는 이 줄기 어느 곳에 숨어 목숨을 부지한 이도 있었으리라. 성 남쪽 바로 밑에 연산향교가 있다.

조영연 / ‘시간따라 길따라 다시 밟는 산성과 백제 뒷이야기’ 저자



조영연-산성필자250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천안교육지원청, 사랑의열매 천안시나눔봉사단과 '더불어 사는 세상' 위한 업무협약 체결
  2. 대전대 펜싱팀, 대통령배 전국펜싱선수권대회 에뻬 단체전 3위
  3. 폐교 예정 대전 성천초 주민 편의 복합시설 추진 협약
  4. 충남대-대전창조경제혁신센터, 중국서 그린바이오 인재 교육
  5. 한밭대 RISE 사업단, 플라즈마 표면처리 국제자격증 합격자 4명 배출
  1. 전북은행 대학생 서포터즈 5기 해단식 진행
  2. 대전건설건축자재협회 'AI 전문가 초청강연' 개최
  3. 건양사이버대 총학생회, 수해 지역 이웃돕기 성금 기부
  4. 한온시스템, 2025년 하반기 채용 연계형 인턴모집
  5. [기고]대형복합화력 증설 멈추고 재생에너지 확대에 주력을

헤드라인 뉴스


투석환자 교통편의 제도정비 시급…지자체 무관심에 환자안전 사각

투석환자 교통편의 제도정비 시급…지자체 무관심에 환자안전 사각

<속보>20일 대전 한 병원에서 만난 조한영(49·가명)씨는 이틀에 한 번씩 인공신장실을 찾아 혈액 투석을 8년간 이어왔다. 월·수·금 오전 7시 병원에 도착해 4시간동안 투석을 받고 나면 체중은 많게는 3㎏까지 빠지고 어지럼증이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 당뇨 합병증으로 콩팥이 먼저 나빠졌고, 오른쪽 눈은 실명했으며, 발에도 질환이 생겨 깁스처럼 발 전체를 감싸고 목발을 짚어서야 겨우 걸음을 뗀다. 투석은 생명을 지키는 일인데 집과 병원을 오가는 병원의 교통편의 제공마저 앞으로 중단되면 혼자서 투석을 이어갈 수 있을지 그는 심각하게..

[날씨] 12호 태풍 `링링` 영향…폭염·열대야 강화
[날씨] 12호 태풍 '링링' 영향…폭염·열대야 강화

주말인 23~24일 폭염과 열대야 현상이 강화됨에 따라 무더위가 이어질 가운데 내륙 곳곳에 국지적 소나기가 내릴 전망이다. 21일 기상청에 따르면 제12호 태풍 '링링'이 동북 동진 중이다. 태풍은 북태평양고기압의 영향으로 일본 남동쪽 해상 가장자리를 따라 규슈를 통과할 예정이다. 이번 주말(23~24일)은 티베트고기압과 북태평양고기압이 결합해 한반도 고기압이 두터워지며 지금보다 온도가 1~2도 더 올라 폭염이 다소 강화된다. 또한, 내륙 중심에 5~40㎜의 국지적 소나기가 내리겠다. 특히 대전·세종·충남 전 지역에 폭염특보 발효에..

충남도 `호우 피해 지원금 현실화` 요구… 정부 "추가 지급 결정"
충남도 '호우 피해 지원금 현실화' 요구… 정부 "추가 지급 결정"

충남도가 지난달 기록적인 폭우에 따른 지원금을 정부에 지속 건의한 결과, 정부가 추가지원을 결정했다. 21일 도에 따르면 지난달 22일 폭우 피해 지원대책 기자회견에서 정부에 피해 지원금 현실화를 건의하겠다는 입장 발표를 시작으로, 정부부처의 현장점검 등에서 '호우 피해 지원금 현실화'를 요청해 왔다. 김태흠 지사도 1일 열린 대통령 주재 제1차 시도지사 간담회에서 분야별 지원금 현실화를 공식 건의한 바 있다. 당시 김 지사는 농업 분야와 관련해 정부의 지원기준인 복구비(대파대) 50%를 100%로 상향하고 농업시설 복구비도 기존..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드론테러를 막아라’ ‘드론테러를 막아라’

  • 폭염에도 가을은 온다 폭염에도 가을은 온다

  • 2025 을지훈련 시작…주먹밥과 고구마로 전쟁음식 체험 2025 을지훈련 시작…주먹밥과 고구마로 전쟁음식 체험

  • 송활섭 대전시의원 제명안 부결…시의회 거센 후폭풍 송활섭 대전시의원 제명안 부결…시의회 거센 후폭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