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기의 행복찾기] 우선순위 정하기

  • 오피니언
  • 여론광장

[박광기의 행복찾기] 우선순위 정하기

박광기 대전대학교 대학원장, 정치외교학과 교수

  • 승인 2019-10-04 00:00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지난 주 칼럼을 쓰려고 '우선순위 정하기'라는 제목을 막 썼을 때, 장인어른께서 별세하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평소 아침 일찍 일어나시는 장인어른께서 기척이 없어 방에 들어가 보니 이미 호흡을 멈춘 상태였다고 합니다. 주무시다가 돌아가신 것으로 추정됩니다. 장인어른의 사망소식을 듣고 경황이 없는 처남을 대신하여 장례식장을 알아보고 상조회사에 연락해서 추후 절차를 진행했습니다. 지난 8월 어머님이 돌아가신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또 다시 장인어른을 하늘에 모시게 되었습니다.

장인어른의 장례를 마치고 돌아와 컴퓨터를 열어보니 제목만 달랑 써져 있는 칼럼이 임시 저장되어 있었습니다. 임시 저장된 파일을 열고 한 동안 멍하니 화면만 바라보았습니다. 지난 주 쓰려고 했던 '우선순위 정하기'라는 칼럼의 내용이 하나도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아직까지 지난 주 어떤 생각으로 이런 제목을 썼는지 기억이 없는 것도 사실입니다. 지금까지 많은 글을 써왔지만, 글의 내용을 모두 기억하지 못합니다. 그 동안 써온 글의 내용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글을 쓰기 위해 준비를 하고 무엇을 쓸 것인가를 생각하다보면 불현듯 어떤 주제가 떠오르고, 그 주제에 적당한 제목을 적은 후 그냥 쭉 써오는 습관 때문입니다. 아마도 이런 이유에서 지난 주 쓰려고 했던 글의 제목을 생각하고 막 글을 쓰려고 했을 때, 장인어른의 사망소식에 대한 충격으로 글쓰기의 흐름이 소멸되어 쓰려고 했던 글의 내용이 기억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우리는 어떤 일을 할 때, 의도적이든 의도하지 않은 무의식적인 상태에서 조차도 일하기 위한 나름의 순서를 정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어떻게 무엇을 할 것인가를 위해서 먼저 해야 할 것과 나중에 할 것을 나름의 논리로 정한다는 것입니다. 만약 이런 나름의 순서가 없다고 하면 일은 말 그대로 뒤죽박죽이 되고 말 것입니다. 더구나 서로 다른 일이 겹쳐서 동시에 많은 일을 해야 할 경우에는 어떤 일을 먼저 해야 하고 나중에 해도 되는 일을 찾아 순서를 정해서 일을 해야만 일을 처리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만약 일의 우선순위가 없이 서로 다른 일을 동시에 한다고 하면, 아마도 처리해야 하는 일들의 성과는커녕 실수와 잘못된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일을 하는 것이나 또는 인생의 목표를 정하고 그 목표를 향해 노력하기 위해서도 지금 당장 해야 할 것과 나중에 천천히 해야 하는 일의 순서를 정해서 차근차근 일을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흔히 이런 과정을 단기적 계획, 중·장기적 계획을 세우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각 단계별 계획의 수립에 있어서도 각각 해야 할 일을 정하고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 먼저 해야 할 것과 나중에 할 일을 정하고 그에 따라서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 필요한 일의 순서를 정해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런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은 비단 일을 하거나 계획을 수립하여 추진하는 것에만 국한된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그 동안 살면서 알게 모르게 아마도 거의 모든 영역에서 순서를 정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시험을 보고 성적의 순위를 정하는 것도 그렇고, 달리기나 운동경기에서 순위를 정하는 것도 그렇고 어찌 보면 우리가 살면서 하는 것의 모든 것에 알게 모르게 순위를 정하는 것에 너무나 익숙해져 있습니다. 그리고 그 순위에 따라서 때로는 기뻐하기도 하고 슬퍼하거나 아쉬워하기도 합니다. 우리에게 익숙해져 있는 순위 정하기와 더불어 우리는 그 순위의 상위권에 들어가기 위해 모든 노력을 경주하기도 합니다. 다시 말하면 순위 정하기는 곧 1등을 지향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순위를 정하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거나, 우선순위에서 밀려 중위권이나 하위권에 속하게 되면 우리는 그것을 '실패'한 것으로 간주하고 인생이나 삶의 낙오자로 낙인찍기도 합니다. 그래서 언제부터인지 우리 사회는 1등만이 살아남는 사회가 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구성원 대부분은 1등이 아닌 사람들입니다. 물론 1등을 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인정도 하고 존중을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1등이 아닌 대부분의 사람들이 우리 사회를 구성하고 있고, 이들의 역할과 임무와 노력이 우리 사회의 근저를 이루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순위를 정함에 있어서 대부분의 경우, 중요하고 긴급한 일을 우선순위에 놓고 있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쉬운 일이나 그리 중요하지 않은 일을 먼저 하는 경우도 흔합니다. 우선 단순하거나 쉽게 할 수 있은 일을 빨리 처리하고 중요한 일에 대한 심사숙고와 집중을 하는 것도 일을 잘 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우리가 정하는 우선순위도 중요하지만, 반대로 '끝 순위'를 정하는 것도 나름 중요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흔히 우선순위에 해당하는 것이 좋은 것이거나 긍정적이라고 인식하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는 '먼저'라는 우선순위가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이번에 연이은 어머님과 장인어른의 별세에 삶과 죽음의 우선순위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삶의 우선순위는 그 삶을 어떻게 사는 가에 따라서 긍정도 될 수 있고 또 다소 부정적인 것도 될 수 있지만, 그래도 평범한 삶 속에서 죽음의 우선순위는 결코 긍정으로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습니다. '먼저'가 아닌 '나중'이 죽음의 경우에는 남아있는 가족에게는 조금은 더 위안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삶과 죽음에 순위를 매기는 것이 옳은 것이 아니고, 또한 해서는 안 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우리의 의지에 의해 삶과 죽음을 선택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이런 것은 '나중'이라는 끝 순위를 택하고 싶은 심정입니다.

그 동안 우리는 너무나도 우선순위에 목을 매고 있던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먼저'가 '나중'보다 항상 옳은 것이고 좋은 것이며 긍정적이라는 착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우리는 1등만을 지향하는 노력을 해 왔고, 그 순위에 들지 못하면 낙오와 실패로 간주하는 잘못된 사고를 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삶과 죽음이라는 거대한 운명 속에서 우선순위는 아무런 의미가 없고, 인간이 스스로 택할 수도 없는 것이라는 점을 새삼 인식하게 됩니다. 정말 무엇이 우리에게 우선순위의 의미를 주는 것인가를 고민하게 됩니다.

행복한 주말되시길 기원합니다.

대전대학교 대학원장

대전대학교 정치외교학과

박광기 올림

박광기교수-220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유명무실한 대전시·교육청 청소년 도박 중독 예방·치유 조례
  2. GM세종물류 노동자들 다시 일상으로...남은 숙제는
  3. “정부 행정통합 의지 있나”… 사무·재정 담은 강력한 특별법 필요
  4. 성장세 멈춘 세종 싱싱장터 "도약 위한 대안 필요"
  5. 한국효문화진흥원 설 명절 맞이 다양한 이벤트 개최
  1. 충남대병원 박재호 물리치료사, 뇌졸중 환자 로봇재활 논문 국제학술지 게재
  2. [사설] 김태흠 지사 발언권 안 준 '국회 공청회'
  3. 지역대 정시 탈락자 급증…입시업계 "올해 수능 N수생 몰릴 것"
  4. 으뜸운수 근로자 일동, 지역 어르신 위한 따뜻한 나눔
  5. 무면허에 다른 이의 번호판 오토바이에 붙이고 사고낸 60대 징역형

헤드라인 뉴스


지방선거 앞 행정통합 블랙홀…대전 충남 등 전국 소용돌이

지방선거 앞 행정통합 블랙홀…대전 충남 등 전국 소용돌이

6·3지방선거를 앞두고 정국 블랙홀로 떠오른 행정통합 이슈에 대전 충남 등 전국 각 지자체가 소용돌이 치고 있다. 대전시와 충남도 등 통합 당사자인 광역자치단체들은 정부의 권한 이양이 미흡하다며 반발하고 있는 데 시민단체는 오히려 시민단체는 과도한 권한 이양 아니냐며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여기에 세종시 등 행정통합 배제 지역은 역차별론을 들고 나왔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는 10일 법안심사제1소위원회를 열고 전남·광주, 충남·대전, 대구·경북 등 3개 권역의 행정통합 특별법과 지방자치법 개정안에 대한 병합 심사에 돌입했다. 이..

충청권 상장기업, 시총 211조 원 돌파 쾌거
충청권 상장기업, 시총 211조 원 돌파 쾌거

국내 메모리 반도체 업황의 호조세와 피지컬 AI 산업 기대감 확산으로 국내 증시가 최근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면서, 충청권 상장사의 주가도 함께 뛰고 있다. 특히 전기·전자 업종에서의 강세로, 충청권 상장법인의 시가총액은 한 달 새 40조 1170억 원 증가했다. 한국거래소 대전혁신성장센터가 10일 발표한 '대전·충청지역 상장사 증시 동향'에 따르면 2026년 1월 충청권 상장법인의 시가총액은 211조 8379억 원으로 전월(171조 7209억 원)보다 23.4% 증가했다. 이 기간 대전과 세종, 충남지역의 시총은 14.4%, 충북은..

[독자제보] "폐업 이후가 더 지옥" 위약금에 무너진 자영업자
[독자제보] "폐업 이후가 더 지옥" 위약금에 무너진 자영업자

세종에서 해장국 프랜차이즈를 운영하던 A 씨는 2024년 한 대기업 통신사의 '테이블오더(비대면 자동주문 시스템)' 서비스를 도입했다. 주문 자동화를 통해 인건비 부담을 줄일 수 있고 매장 운영도 훨씬 수월해질 것이라는 설명을 들었기 때문이다. 계약 기간은 3년이었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테이블오더 시스템은 자리 잡지 못했다. A 씨의 매장은 고령 고객 비중이 높은 지역에 있었고 대다수 손님이 기기 사용에 익숙하지 않았다. 주문법을 설명하고 결제 오류를 처리하는 일이 반복되며 직원들은 '기계를 보조하는 역할'을 떠안게 됐다. A 씨..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줄지은 대전·충남 행정통합 반대 근조화환 줄지은 대전·충남 행정통합 반대 근조화환

  • 대전·충남통합 주민투표 놓고 여야 갈등 심화 대전·충남통합 주민투표 놓고 여야 갈등 심화

  • 설 앞두고 북적이는 유성5일장 설 앞두고 북적이는 유성5일장

  • 신속하고 철저한 수사 촉구하는 대전중앙로지하상가 비대위 신속하고 철저한 수사 촉구하는 대전중앙로지하상가 비대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