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난순의 식탐] 다섯 덩이의 빵과 물고기 두 마리

  • 오피니언
  • 우난순의 식탐

[우난순의 식탐] 다섯 덩이의 빵과 물고기 두 마리

  • 승인 2020-04-01 10:16
  • 우난순 기자우난순 기자
KakaoTalk_20200401_100314541


내가 자란 고향의 면소재지엔 자그마한 교회가 있다. 워낙 궁벽한 시골이어서 면소재지라고 해도 그럴 듯한 건물은 초등학교, 지서, 면사무소 그리고 마을 끄트머리에 붙어있는 교회가 전부였다. 고딕 양식의 교회는 제법 멋들어졌다. 뾰족한 첨탑과 살구색의 건물 외양이 밀레의 그림처럼 꽤나 이국적인 분위기였다. 교회는 내가 사는 마을에서도 멀리 보였는데 아스라한 풍경에 매료돼 사춘기 적 『제인 에어』의 소설적 상상에 사로잡히곤 했다. 소박하지만 범접할 수 없는 위엄이 깃든 교회는 나에게 동경의 대상이었다.

그 교회를 초등학교 때 동네 친구들과 몇 번 간 적이 있다. 여름방학이 오면 교회 선생님(전도사)들은 마을에 와서 아이들을 데려갔다. 여름성경학교가 열리는 계절이 온 것이다. 우리는 신나서 교회 선생님을 따라갔다. 교회 안을 처음 본 나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오르간 소리가 높다란 천장에 천상의 소리처럼 울려퍼졌다. 천사의 목소리 같았다. 햇볕에 그을려 시컴댕이 같은 우리는 자애로운 선생님을 따라 찬송가를 배웠다. 노래도 부르고 사랑 충만한 하나님의 말씀을 열심히 듣고 나면 교회 선생님은 우리에게 선물을 나눠줬다. 과자와 사탕. 이거야말로 하나님의 큰 사랑이었다. 사실 그것 때문에 아이들은 교회를 갔다. 바삭바삭한 쿠키와 달콤한 사탕을 입에 넣을 때의 행복을 뭐에 비할까.

사람의 마음을 가장 사기 쉬운 것이 음식이다. 예수의 아버지 하나님도 사탕 하나, 과자 몇 개로 천진한 아이들을 마술피리처럼 꾀었지 뭔가. 맛있는 밥 한 그릇. 상대방을 무장해제시키는 데 이만한 방법도 없다. 한 친구는 회사 후배들과 식당에 가면 지갑 여는데 1초의 망설임도 없었다. 커피 값도 친구가 낸다고 했다. 그뿐인가. 일 끝나고 술집에 가도 계산은 친구 몫이었다. 이 관성에 익숙한 후배들은 나중엔 당연히 선배가 사려니 한다는 것이다. 친구는 변변찮은 월급으로 저축은 고사하고 늘 카드 값에 허덕였다. 보다못한 내가 나무랐다. 친구는 시니컬한 어조로 토로했다. "밥이라도 사주니까 걔네들이 날 상대하는 거야. 내가 외로워서, 인정받고 싶어서 돈을 지불하고 사랑을 사는 거지." 예수도 울고 갈 친구의 말 못할 허세의 사연은 이랬다.



유년 시절 교회 선생님의 '유혹'에 못 이겨 교회에 간 것 말고는 끝이었다. 그러다 대학 다니면서 개척교회에 발을 들였다. 중년의 목사는 다른 일을 하다 뒤늦게 신학대학원을 나온 신출내기 목사였다. 목사는 종교적 사명감은 투철했지만 신자가 열 명도 안됐다. 가난한 동네였기 때문에 교회도, 신자들도, 그리고 나도 가난했다. 일요일엔 오전 예배를 보고 교회 사택에서 다함께 점심을 먹었다. 목사와 사모(부인)는 두레상에 방금 푼 밥을 나르며 많이 먹으라고 손을 끌었다. 우리는 상에 둘러앉아 뜨끈한 찌개와 겉절이 등으로 한 가족처럼 밥을 먹었다. 당시 나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교회에 나갔지만 신자가 너무 없어 목사 부부의 생계가 걱정될 정도였다. 그래도 목사 부부는 항상 미소를 띠었다. 나의 교회 입문은 두 달 만에 또 끝났다.

내가 종교적 인간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신이 날 거부하는 건지 내가 신의 부름에 응답 못하는 건지는 모르겠으나 도대체가 감응이 안 생긴다. 이런 나에 대해 고민도 했지만 교회에 가는 일은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한국 종교는 자본의 관점에서 해석이 가능하다. 권력은 부패한다고 했다. 돈의 맛을 본 종교도 부패의 악취가 진동한다. 네 이웃을 사랑하라? 지금 상식을 뭉갠 일부 교회의 행태는 한국 종교가 철학의 부재에서 출발했다는 걸 증명한다. 설교는 재미없었지만 '다섯 덩이의 빵과 물고기 두 마리'로 가난한 이들을 배불리 먹인 개척교회 목사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미디어부 부장>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대학 교직원 사칭한 납품 주문 사기 발생… 국립한밭대, 유성서에 고발
  2. [문화 톡] 대전 진잠향교의 기로연(耆老宴) 행사를 찾아서
  3. 대전특수교육수련체험관 마을주민 환영 속 5일 개관… 성북동 방성분교 활용
  4. 대전 중구, 교육 현장과 소통 강화로 지역 교육 발전 모색
  5. 단풍철 맞아 장태산휴양림 한 달간 교통대책 추진
  1. "함께 땀 흘린 하루, 농촌에 희망을 심다"
  2. 대전도시공사,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 표창’ 수상
  3. 공장·연구소·데이터센터 화재에 대전 핵심자산 '흔들'… 3년간 피해액 2178억원
  4. 대전 대덕구, 자살률 '뚜렷한 개선'
  5. 대전 서구, 간호직 공무원 역량 강화 교육으로 전문성 강화

헤드라인 뉴스


`행정수도 완성` 4대 패키지 법안 국회 문턱 오른다

'행정수도 완성' 4대 패키지 법안 국회 문턱 오른다

2026년 행정수도 골든타임을 앞두고 4대 패키지 법안이 국회 문턱에 오르고 있다. 일명 행정수도완성법으로 통한다. 세종시를 지역구로 둔 무소속 김종민(산자·중기위) 국회의원은 지난 5일 행정수도특별법과 행정수도세종특별시법, 국회전부이전법, 대법원이전법을 패키지로 묶은 '행정수도완성법'을 대표 발의했다. 조국혁신당이 지난 5월, 더불어민주당이 지난 6월 차례로 발의한 행정수도특별법에 보완 사항을 적시함으로써 '행정수도 세종'의 조기 완성을 뒷받침하기 위한 조치다. 실제 현재 양당의 법안은 현재 국회 상임위에서 병합 심사로 다뤄지고..

대전 갑천생태호수공원, 개장 한달만에 관광명소 급부상
대전 갑천생태호수공원, 개장 한달만에 관광명소 급부상

대전 갑천생태호수공원이 개장 한 달여 만에 누적 방문객 22만 명을 돌파하며 지역 관광명소로 주목받고 있다. 6일 대전시에 따르면 갑천생태호수공원은 9월 말 임시 개장 이후 하루 평균 7000명, 주말에는 최대 2만 명까지 방문하는 추세다. 전체 방문객 중 약 70%가 가족·연인 단위 방문객으로, 주말 나들이, 산책과 사진 촬영, 야간경관 감상의 목적으로 공원을 찾았다. 특히 추석 연휴 기간에는 10일간 12만 명이 방문해 주차장 만차와 진입로 혼잡이 이어졌으며, 연휴 마지막 날에는 1km 이상 차량 정체가 발생할 정도로 시민들의..

`이번엔 축구다`… 대전하나시티즌, 8일 전북 현대 상대로 5연승 도전
'이번엔 축구다'… 대전하나시티즌, 8일 전북 현대 상대로 5연승 도전

대전하나시티즌이 K리그1 선두인 전북 현대를 상대로 5연승에 도전한다. 대전은 8일 오후 4시 30분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리는 하나은행 K리그1 2025 36라운드(파이널A 3라운드)에서 전북 현대와 맞대결을 펼친다. 이날 기준 대전은 승점 61점(17승 10무 8패)으로 K리그1 2위에 올라있다. 대전은 포항 스틸러스전 3-1 승리를 시작으로 제주SK(3-1 승), 포항(2-0 승), FC서울(3-1 승) 등을 차례로 잡으며 지금까지 4연승을 달리고 있다. 황선홍 감독은 서울전 승리 이후 기자회견에서 "그동안 3연승이 최고였는데..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국민의힘 충청권 지역민생 예산정책협의회 국민의힘 충청권 지역민생 예산정책협의회

  • ‘야생동물 주의해 주세요’ ‘야생동물 주의해 주세요’

  • 모습 드러낸 대전 ‘힐링쉼터 시민애뜰’ 모습 드러낸 대전 ‘힐링쉼터 시민애뜰’

  • 돌아온 산불조심기간 돌아온 산불조심기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