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동길의 문화예술 들춰보기] 바른 사법? '취중송사(醉中訟事)'

  • 오피니언
  • 여론광장

[양동길의 문화예술 들춰보기] 바른 사법? '취중송사(醉中訟事)'

양동길 / 시인, 수필가

  • 승인 2020-10-16 00:00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조선의 몇 안 되는 청백리(淸白吏) 중 청백리 황희(黃喜, 1363~1452, 조선 문신)정승, 모르는 사람이 없을 듯하다. 정사나 야사, 각종 설화에 수많은 얘기가 전한다. 상반되는 이야기도 많다. 성격이 우유부단하다거나 강직하다. 청백리라 하는가 하면, 그렇지 않다는 이야기도 있다.

'세종실록' 권40, 세종 10년 6월 25일 기사에 황희가 사직을 간청하는 대목이 나온다. 간통에 뇌물수수죄로 몰린 모양이다. 자신의 능력 부족과 불효 불충을 탓하고 노쇠했음을 아뢰며, "이번에는 뜬소문으로 탄핵(彈劾)을 받게 되었으나, 다행히 〈전하의〉 일월 같은 밝으심을 힘입어 무함(誣陷)과 허망(虛妄)을 변명해서 밝힐 수 있어서 여러 사람들의 의심을 조금이나마 풀게 되고, 그대로 계속 출사하라고 명하시니, 은혜가 지극히 우악(優渥)하십니다. 신은 가만히 생각하여 보니, 책임(責任)이 중대한데 품은 계책이 없다면, 곧 비방을 초래하게 되고 화를 자취(自取)하게 되는 것은 사세(事勢)의 당연한 것입니다. 스스로 생각하건대 신의 평소의 행동이 이미 남에게 신임을 받기에 부족하면서도 지위가 신하로서 지극한 자리에 있기 때문입니다. 또 신으로 인하여 누(累)가 사헌부에 미쳤으니 놀라움을 이기지 못하여 깊이 스스로 부끄러워합니다. 신이 비록 탐욕(貪慾)스럽고 암매(暗昧)한들 어찌 장오(贓汚)의 죄명을 면할 수 있겠습니까. 스스로 마음 속으로 겸연쩍어서 조정의 반열에 서기가 낯이 뜨거운데, 〈일국이〉 모두 바라보고 있는 자리에 즐겨 나갈 수 있겠습니까"라 한다. 세종이 극구 만류하나 굳게 사양하고 사퇴한다. 옳은 처신일까?

설화에는 이러한 이야기도 전한다. 황희정승 집안에 하인 부부가 있었다. 어느 날, 하인의 집 개가 새끼를 낳았는데 마침 시부의 제삿날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제사상 차리기는 애물단지인 모양이다. 여종이 와서 물었다. "아버님 제삿날인데 저희 개가 새끼를 낳았습니다. 아무래도 제사를 안 드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정승이 답했다. "안 드려도 되지." 조금 있다 노복도 찾아와 물었다. "아버지 제삿날인데 저희 개가 새끼를 낳았지만, 그래도 제사는 드려야겠지요?" 황희 정승이 답했다. "제사 드려야지." 그러자 옆에 있던 정승 부인이 "대감께서는 어찌 같은 일에 둘 다 옳다고 하십니까?"라고 핀잔했다. 이에 황희는 "아내는 제사 드리기 싫어하기에 지내지 않아도 된다고 한 것이고, 남편은 제사 드리고 싶어 하기에 제사 드리도록 했을 뿐이오"라고 말했다. 명판결이라 세간에 회자 되는 이야기다. 묻는 사람 뜻을 헤아려, 원하는 바 대로 답한 것이다. 옳은 일일까? 요즈음 판결이 그렇다. 영장 발부부터 오락가락이다. 누가 원하는 대로 하는 것일까?

그림은 김홍도(金弘道, 1745 ~ 1806?, 조선 도화서 화원)가 그린 '취중송사(醉中訟事)'이다. 강희언(姜熙彦, 1738 ~ ?, 조지서 별제, 화가)의 집이며 작업장이었던 담졸헌(澹拙軒)에서 그렸다고 되어있다. 팔 폭 병풍 '행려풍속도병(行旅風俗圖屛)' 중 한 폭이다. 원래 낱장으로 전해오던 것을 훗날 표구했다 한다.

우선 우아하게 장식된 일산(日傘)이 눈길을 끈다. 시종이 받치고 있고, 그 아래 남여(藍輿)에 앉은 태수(太守)가 접부채 들어 무어라 지시하는 모습이다. 의자에는 호피가 덮여있다. 왼쪽 전복 입은 사람이 함을 메고 서 있고, 비석 뒤 엎드려 숨어 보는 사람도 있다. 눕다시피 엎드려 지필묵 펼치고 받아쓰는 이도 있다. 가마꾼 주위에는 아전으로 보이는 자들이 섞여 있다. 사이로 기생 행색인 사람과 먹을 것을 담은 광주리를 이고 있는 여인이 보인다. 돗자리 등 집기를 잔뜩 들고 멘 짐꾼도 따른다. 하나같이 매무새가 몹시 흐트러져 있다. 뒤쪽 마을 가운데로 홍살문이 보이니 관아가 가까운 모양이다. 근무 중에 낮술이 지나쳐, 회가 동하여 화류놀이라도 가는 것일까? 아니면, 진탕 놀고 귀청하는 길일까?

포졸이 다투던 사람들 끌고 가다 태수 일행을 만났다. 즉석에서 송사가 벌어졌다. 엎드린 두 사람은 여전히 다투고 있다. 초립 쓰고 포 입은 사람과 경황이 없어 보이는 다른 한 명이 있다. 맨발에 허리를 새끼로 매고 있어 상중으로 보여, 묘지 관련 송사가 아닐까 하는 견해도 있다. 나름대로 판결하는 것일까? 앞쪽 포졸 둘은 열띤 토론 중이다. 뒤쪽 골목길엔 난데없이 멧돼지 두 마리가 가로지르고 있다. 김홍도 풍속화에 자주 등장하는 또 다른 여백이다. 마음의 여백, 정신적 휴식처이다. 어찌 이렇게 순간 포착이 치밀할까? 생생한 현장감을 줄까? 조선 풍속화 대할 때마다 풀리지 않는 의문이다.

트럼프
행려풍속도. 김홍도. 1778년 작. 90.9 × 42.7㎝. 비단에 담채
강세황(姜世晃, 1713 ~ 1791, 한성부판윤, 화가)의 화제를 살펴보자. "모시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각기 그 물건을 가마의 앞뒤에서 쥐고 있는데, 앞쪽 태수의 행색을 보니 심히 걱정스럽지 않는가? 고을 백성이 송사를 올려 형리가 조서를 적는데 올라타서 술에 취해 부르는 걸 받아 적으니 능히 잘못된 판결이 없겠는가? 표암이 평하다.(供級之人各執其物後先於肩輿 前太守行色甚不草草 村氓來訴形吏題牒 乘醉呼寫能無誤決 豹菴 評)" 부패한 관리의 풍자다.

두말이 필요 없다. 법은 누구에게나 공평해야 한다.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판관에 따라, 피의자 위치에 따라 변하는 것이 법인가? 이현령비현령(耳懸鈴鼻懸鈴)이 되어서야 법이라 할 수 있는가? 사법부가 만취한 것은 아닐까, 종종 의문일 때가 있다.

양동길 / 시인, 수필가

양동길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타임월드 매각 검토에 둔산 상권 촉각…백화점 유지 변수
  2. 당진푸르지오3차 입주민, 투기꾼 탓에 추가 분담금 위기 맞자 '어깨띠' 매고 거리로
  3. 대전 한전 전력연구원 ESS 화재…배터리팩 28개 전소
  4. 행정수도 온통대전 충청 밥상머리 민심 관통 전망
  5. 최재근 일자리진흥원장과 전용석 대전신보재단 이사장 각각 임명
  1. 대전시 지역 첫 방산 소부장 특화단지... 'AX 클러스터' 시정동력 탄력
  2. 허태정 "트램 흔들림 없이 추진" 정상 추진의지 밝혀
  3. 중부권 최대 민속놀이 대축제…제36회 충남도지사배 민속대제전 성료
  4. 석 달 파행 끝낼까…대덕구의회 21일 의장단 선출
  5. 충남 천안·아산 7개 산업단지, 반도체 후공정 특화단지 지정

헤드라인 뉴스


충남 3선 국회의원 지낸 강훈식 청와대 비서실장 사의

충남 3선 국회의원 지낸 강훈식 청와대 비서실장 사의

충남 아산시을 지역구에서 3선 국회의원을 지냈던 강훈식 청와대 비서실장이 21일 사의를 밝혔다. 성기홍 청와대 홍보소통수석은 이날 오후 춘추관 브리핑에서 "강훈식 청와대 비서실장은 오늘 오전 이재명 대통령에게 사의를 표명했다"고 말했다.대통령을 보좌하는 비서실장으로서 2025년 이재명 정부 초대 비서실장에 임명된 지 1년 4개월 여만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대통령의 지난주 기자회견에서 국정을 바라보는 국민 시선에 대해 자신의 부족함 탓이라고 수차례 말한 상황에서 대통령을 보좌하는 비서실장이 종합적으로 책임을 지는 차원에서 사의를 표..

저축성예금 50조원 목전 둔 대전... 은행권 예금 금리 경쟁에 더 오를까
저축성예금 50조원 목전 둔 대전... 은행권 예금 금리 경쟁에 더 오를까

주요 시중은행이 앞다퉈 정기예금 금리를 올리며 금융소비자 모시기에 나서면서 50조 원을 목전에 둔 대전 예금은행 저축성예금 수신 잔액도 크게 오를 전망이다. 최근 시장금리가 오르면서 은행들이 수신 경쟁을 본격화하고 있는데, 정기예금 금리를 3% 중반까지 올리고 있다. 21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은행은 이날부터 대표적인 정기예금 상품 금리를 0.1%포인트 올렸다. 지난 14일 같은 상품 금리를 최고 0.6%포인트 올린 이후 일주일 만에 추가 인상이다. 이에 따라 1년 이상 2년 미만 만기 예금 금리는 연 3.4%에서 3.5%로 올..

충청권 AI활용 발전비전 전력공급 원활한 확보 시급… 화력발전 의존 장래에 불리
충청권 AI활용 발전비전 전력공급 원활한 확보 시급… 화력발전 의존 장래에 불리

충청권 지자체가 인공지능(AI)을 활용한 방산·바이오·반도체 산업을 미래 성장동력으로 육성하려 AI 데이터센터에 투자하고 있지만, 필요한 전력 확보가 주요 현안으로 떠오를 전망이다. 충청권은 석탄화력발전 의존도가 높은 데다 송전망과 무탄소 전원 여력이 충분하지 않아 향후 데이터센터가 본격 가동되면 전력 공급에 병목이 발생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21일 한국전력 대전충남본부와 에너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대전·세종·충남·충북이 AI를 활용한 성장전략에 집중하면서 AI 데이터센터 투자가 확대되고 있으나 전력공급이 중요한 현안으로 떠오르고..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지방의회법 제정을 촉구한다’ ‘지방의회법 제정을 촉구한다’

  • 미리 보는 2026 지상군페스티벌…유·무인 복합전투체계 실전 시현 미리 보는 2026 지상군페스티벌…유·무인 복합전투체계 실전 시현

  • ‘풍요로운 추석 명절 보내세요’ ‘풍요로운 추석 명절 보내세요’

  • 차례상 차리기 배우는 어린이들 차례상 차리기 배우는 어린이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