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소리] 이청득심(以聽得心)

  • 오피니언
  • 풍경소리

[풍경소리] 이청득심(以聽得心)

권득용 전 대전문인협회장

  • 승인 2020-11-30 10:28
  • 신문게재 2020-12-01 19면
  • 김소희 기자김소희 기자
권득용 전 대전문인협회장
권득용 전 대전문인협회장
생뚱맞은 전화를 받았습니다. 휴대폰 전화가 011으로 입력되어 있다며 주소도 그대로인가를 확인하는 금융보험회사의 컨설팅직원이었습니다. 세상에 010으로 바뀐 지가 언제인데 지금에야 확인하다니 빈정이 상하였지만 1997년에 가입한 보험이 만기가 되었다며 방문했으면 하는 겁니다. 다시 유행하는 코로나19 때문에 잠시 망설였지만 비대면의 일상에 고객을 만나는 일이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따뜻한 차 한 잔을 내놓으면서 경청하는 동안 간혹 긍정의 추임새에 소소한 일상사까지 속내를 털어놓으면서 어떻게 한 번도 이사한 적이 없느냐고 묻습니다. 그러고 보니 지금 우리나라는 코로나 팬데믹 이상으로 주택 문제가 국민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좋은 집에 살고 싶은 욕망이 왜 없겠습니까? 저도 아이들이 어렸을 때 학군이 좋은 둔산으로 이사를 할까 잠시 고민한 적도 있었지만 살다보니 30년이 훌쩍 넘었다는 우문현답을 하였지요.

대전문학관이 있는 아파트 숲은 사시사철 스토리가 있어 참 좋습니다. 감탄의 언어와 열매가 꽃이 되는 만추, 지금은 사랑을 속삭이는 여인의 입술보다 더 붉은 산수유 열매가 루비보석으로 빛나고 있습니다. 맥문동 잎은 자꾸만 푸르르고 은행잎이 수북이 쌓인 풍경 속을 아침마다 걷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래된 것들에게서는 진한 향기가 나는 법이지요. 사람도 사랑도 우리가 만나는 삼라만상이 모두 그러합니다. 저도 오래된 인연을 버리지 못하는 습관이 있습니다.

한 달 전 모르는 전화가 왔습니다. 기억을 더듬어보니 10년 전 광주의 어느 행사장에서 만났던 분으로 한때 '머들령동인'으로 문학청년을 꿈꾸었지만 잊고 살아오다가 늘 숙제를 마치지 못한 아이처럼 마음속 짐이 되어 다시 시 공부를 하고 싶다는 말씀에 용기를 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러면서 시를 잘 쓸 수 있을는지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습니다. 일본의 여류작가 시바타도요(1911~2013) 이야기를 들려드렸습니다. 92세에 아들의 권유로 시 공부를 시작하여 2009년 첫시집 『약해지지 마』를 출간 160만부의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그는 자신의 책이 전세계에 번역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는 것이 꿈이었다고 하면서 '살아있으면 반드시 좋은 일이 있다고 불행이라는 파도에 지지 말아야한다'라고 하였지요.

글을 쓰는 일이란 일상의 소중함을 감성의 연마질로 문학이라는 그릇에 오롯이 담아내는 것으로 독자들에게 수취인불명이 되지 않기 위해 시의 주소는 늘 정직해야 합니다. 시절인연처럼 그분은 습작해온 시들로 대전문학 2020년 겨울호에 등단하였지요. 오랫동안 소망해온 꿈을 이루게 해준 것만 같아 흐뭇한 마음에 문득 논어의 이청득심이 떠올랐습니다. 지금 우리사회에 그 어느 때보다 꼭 필요한 화두가 아닐까 합니다. 위정자를 비롯한 국민 모두가 서로 존중하고 상대방의 말에 귀를 기울여 경청한다면 서로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는 교훈을 다시 한 번 새겨야겠습니다.

코로나가 주춤하는 사이 올해도 감성시인학교를 개최하였지요. 참가자 중 할머니의 말씀을 손녀딸이 적고 다시 할머니가 글씨를 덧씌우는 정경이 궁금하여 슬쩍 물어보았습니다. 치매 초기 증상이 있어 도시생활을 접고 귀촌을 하였다는 87세의 정분섭 할머니였습니다. "오늘 아침 운동하는 길에 민달팽이를 보았다. 불쌍해서 나무를 꺾어 숲으로 보내주었다. 오늘은 나도 민달팽이가 된 날 숲을 만나고 나무도 만나고"라고 썼습니다. 오늘 상을 받은 것은 민달팽이 덕분이라며 연신 민달팽이에게 고맙다는 할머니는 어쩌면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곧 어짊의 극치라 믿으며 측은지심(惻隱之心)으로 한평생을 살아오신 게 분명합니다. 참 오랜만에 가슴 저미는 따뜻한 시를 만났습니다. 감사한 마음에 가을의 끝자락 떨어지는 낙엽을 보면서 가랑잎의 몸무게는 따스함이고 너그러움이라는 시구(詩句)를 다시 떠올려 봅니다.

권득용 전 대전문인협회장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아산시, 미급식 경로당 대상 '통합돌봄 시범사업' 본격 추진
  2. 대전노동권익센터, 이동노동자 실태조사 결과 발표
  3. 대전노인자원봉사 여가지원사업 프로그램 개최
  4. 사회복지법인 신영복지재단 대덕구노인종합복지관 '찾아가는 노인의 날'
  5. 윤희일 장편소설 '코스모스를 죽였다'...오페라로 무대에
  1. 도마동 골목길의 LP카페 '지기'… 무한대 음악 세상과 만난다
  2. 아산시, 'KD아람채 보증금 반환, 주거 안정 해법 지원
  3. [현장취재]K-리더십 연구소 개소식
  4. 아산시, '신창 하이패스 나들목(IC)' 신설 사업 본격 추진
  5. 선문대, "디지털 기반 어르신 건강관리 나섰다"

헤드라인 뉴스


충청 초광역특별법 제정 속도내나… 권한·재정 확보 관건

충청 초광역특별법 제정 속도내나… 권한·재정 확보 관건

충청권 초광역 협력의 실행력을 높일 '충청광역연합 특별법' 제정 논의가 본궤도에 오를 전망이다. 대전·세종·충남·충북 충청권 4개 시·도가 전국 최초 특별지방자치단체인 충청광역연합의 권한과 기능을 강화하고, 초광역 협력사업의 내실 있는 추진을 위해 특별법 제정에 나서면서다. 충청권 4개 시·도는 지난 2일 서울 켄싱턴호텔에서 열린 '충청광역연합 특별법 제정을 위한 정책토론회'에서 조상호 세종시장, 박수현 충청광역연합장, 허태정 대전시장, 신용한 충북도지사, 구형서 충청광역연합의회 의장이 참석한 가운데 특별법 제정을 위한 업무협약을..

[태안다문화] 일본의 가을은 맛으로 온다…‘식욕의 가을’
[태안다문화] 일본의 가을은 맛으로 온다…‘식욕의 가을’

일본에서는 먹거리가 풍성한 가을을 '식욕의 가을(食欲の秋·쇼쿠요쿠노 아키)'이라고 부른다. 햅쌀과 꽁치, 밤, 고구마 등 제철 음식을 즐기며 자연의 풍요로움에 감사하는 일본의 가을 문화를 살펴본다. 일본에는 사계절의 변화를 음식으로 느끼는 문화가 있다. 무더운 여름이 지나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산과 바다에서 다양한 제철 식재료가 나오면서 식탁도 한층 풍성해진다. 일본 음식문화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말 가운데 하나는 '슌(旬·しゅん)'이다. 음식의 맛이 가장 좋은 제철을 뜻하는 말로, 일본에서는 식재료의 계절감과 가장 맛있는 시..

"서산을 철도교통 거점으로", 서산시, 4개 철도사업에 13조7천억 투입 추진
"서산을 철도교통 거점으로", 서산시, 4개 철도사업에 13조7천억 투입 추진

서산시가 교통망 확충과 산업·관광 경쟁력 강화를 위해 13조7천억 원 규모의 4개 철도사업 추진에 행정력을 집중하고 있다. 서산시는 내포태안철도, 대산항인입철도, 중부권동서횡단철도, 충청내륙철도 등 4개 사업을 관련 지방자치단체와 협력해 추진하고 있으며, 올해 확정될 제5차 국가철도망 구축계획(2026~2035년)에 최대한 반영한다는 계획이다. 이들 사업 가운데 내포태안철도와 대산항인입철도, 중부권동서횡단철도는 제4차 국가철도망 구축계획의 추가검토사업에 포함됐으며, 충청내륙철도는 이번 제5차 계획 반영을 목표로 하고 있다. 사업 규..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국군의 날 기념행사 참석한 이재명 대통령 국군의 날 기념행사 참석한 이재명 대통령

  • 안전하고 세련된 모습으로 바뀐 무궁화호 안전하고 세련된 모습으로 바뀐 무궁화호

  • ‘대전시는 수소트램 원점 재검토하라’ ‘대전시는 수소트램 원점 재검토하라’

  • 금빛으로 빛난 대전의 영웅들 금빛으로 빛난 대전의 영웅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