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오천균 419혁명공로자의 아들 오성진(사진 가운데)씨와 남동생 오광웅(사진 오른쪽에서 두 번재)씨가 3.8민주의거기념사업회에 발전기금을 전달했다. (사진=기념사업회 제공) |
그의 남동생 오광웅(83)씨와 혁명공로자의 아들 오성진(65) 씨가 3월 8일 기념사업회에 1050만 원을 전달했다.
고 오천균 4·19혁명공로자는 충남대학교 학생회장을 맡아 1960년 4월 26일 대전 한밭중학교에서 충남도청까지 이승만 자유당 정권 퇴진을 요구하는 대전시내 고등학생과 대학생 500여 명의 연합시위를 주도했다. 모함으로 한때 유치장에 갇히기도 했던 그는 충남대 법대학장이 무모한 학생을 유치한 경찰에 직접 항의하면서 풀려날 수 있었다.
또 서울처럼 대학이 많은 것도 아니어서 울분을 표출할 집단 형성이 어려운 데다 교내에서 사법경찰의 감시가 심해 목소리를 모으기 어려운 상황에서 대전지역 고등학교와 대학교 대표와 뜻을 모아 연합시위를 벌였다. 부정선거를 규탄하고 독재정권의 타도를 외치며 거리를 행진하는 학생들을 바라보던 대전시민들도 연합시위에 동참했다.
(사)3·8민주의거기념사업회가 2021년 발간한 '한밭의 1960년, 3·8민주의거'에 따르면, 4월 26일 당일 도청 앞에 모인 군중을 대표해 오천균 학생회장은 도지사실에서 임부택 비상계엄 3관구 사령관의 중재 하에 도지사와 경찰국장과 마주 앉아 학생들의 요구사항을 전달하고, 최대한 수용하겠다는 결심을 받아 냈다. 이날 도청 앞에 수백 명의 학생들이 연좌시위할 때 군과 경찰이 여러 대의 차량으로 정문을 가로막고 대치하는 모습과 그가 한밭중 교정에서 결의문을 낭독하는 기록사진이 지금껏 남아 있다.
기념사업회에 기금을 전달한 오천균 4·19혁명공로자의 남동생인 오광웅 씨는 대전고 2학년 때 3·8민주의거에 직접 참여해 독재정권 퇴진에 힘을 보탰고, 그날 경찰 곤봉에 구타당하고 경찰이 학생들에게 뿌린 도로 포장용 콜타르를 온몸에 뒤집어 쓴 채 귀가했다.
곤봉에 맞아 초주검이 되어 집에 돌아온 동생을 본 그는 폭압 정권에 분노했고, 훗날 회고록에서 "대학생인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을 고등학생들이 했고 폭력적인 일을 당했다는 사실에 미안한 마음이었다"라고 말했다. 오천균 4·19혁명공로자는 대학을 졸업해 서울지방병무청장을 역임하고 2020년 타계했다.
오광웅 씨는 중도일보와 전화 인터뷰를 통해 "형님이 살아계셨으면 3·8기념관 건립에 가장 먼저 힘을 보태셨을 것인데, 형님 슬하에 자제들과 뜻을 모아 기부하게 됐다"라며 "무엇이든 열심히 하면 반드시 길이 열린다며 가르침 주시던 형님이 지금도 선연히 떠오른다"고 말했다.
임병안 기자 victorylb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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