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하추동]거북이가 토끼를 이길 수 있었던 이유

  • 오피니언
  • 춘하추동

[춘하추동]거북이가 토끼를 이길 수 있었던 이유

  • 승인 2017-08-29 13:23
  • 신문게재 2017-08-30 22면
  • 김호택(연세소아과 원장)김호택(연세소아과 원장)
▲ 김호택(연세소아과 원장)
▲ 김호택(연세소아과 원장)
강연을 위해 아산의 한 대학을 방문한 김에 유명하다는 그 대학 구내를 돌아보았다. 명성대로 참 잘 꾸며져 있었고, 호숫가에는 산책로도 잘 정비돼 있어 공원과 같았다. 취업률 상위 대학답게 청년벤처를 유도하는 건물과 기업들도 많아 열심히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런데 -물론 거의 모든 학교가 그렇지만- 학교 앞에는 복사ㆍ제본하는 가게 하나를 빼면 온통 음식점이었다. ‘욜로(YOLO)’라는 알 수 없는 이름의 음식점도 있었다. 가까이 가서 보니 실내포장마차였는데, ‘You Only Live Once’라는 뜻이라고 했다. 제대로 된 영어 문장은 아닌 것 같았지만 그 실내포차 간판을 보면서 ‘먹을 수 있을 때 실컷 먹어라’는 의미로 읽혔다.

‘라면국물 편의점 포차’라는 집도 있었다. ‘청춘아! 라면국물에 소주 한잔으로 밤을 새워보자’는 문구가 함께 눈에 띄었다.

마음이 아팠다. 청년들의 고민이 함께 읽혀지는 것 같았다.

내가 젊었던 40년 전에도 짬뽕국물에 고량주 먹으며 통음(痛飮)하던 시절이 있었다. 어쩌다 선배가 군만두, 탕수육이라도 하나 사주면 감읍(感泣)했다.

그렇지만 당시에는 어렵고 힘들기는 했지만 조금만 노력하면 취직 걱정은 하지 않아도 좋았고, 큰 꿈은 못 꾸더라도 미래에 대해 걱정하는 젊은이는 많지 않았다. 비싸서 엄두도 내지 못하던 백색전화기가 집집마다 보급되고, TV와 냉장고로 대변되는 소위 백색가전도 장만할 수 있었다. 세상은 지금보다 더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로 개발독재를 애써 눈 감던 시절이었다.

요즘 젊은이들은 ‘단군 이래 가장 좋은 스펙을 가졌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무원 시험에 매달리는 젊은이들이 많다는, 사회적으로는 그리 바람직스럽지 않은 현상을 탓할 수가 없다. 이런 현실을 사는 청춘의 아픔이 안타깝다.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마땅한 방법이 없다는 것 또한 참으로 안타깝다.

그렇지만 젊은이들뿐만 아니라 연령대와 지역과 직역을 막론하고 우리 모두가 지금까지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길을 가고 있다. 불안하고 미래에 대한 확신이 없기는 노인과 중년층도 마찬가지이다.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모른다고 한탄만 하고 앉아있을 수는 없으니, 길이 없다면 만들겠다는 마음을 놓을 수는 없다.

대구에 강연하러 갔다가 오히려 배우고 왔다. 대구 엔젤로타리클럽의 이명숙 회장은 당신의 지난 1년 간 활동을 보고하면서 이렇게 마무리했다.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에서 거북이가 승리한 이유를 아십니까? 토끼는 거북이를 이기는 것이 목표였기 때문에 방심하고 잠이 들었던 것이고, 거북이의 목표는 오로지 산 정상까지 오르는 것이었기 때문에 한발 한발 자기 페이스대로 걸어서 이길 수 있었던 겁니다.”

내가 어린 시절 잘 사는 부모를 둔 친구들도 많았다. 수십 년을 살다 보니 부모 힘을 바탕으로 지금까지 성공한 친구도 많지만 그 많던 재산과 명예가 어디 갔는지 찾아볼 수 없는 친구도 많다. 적수공권에서 성공한 친구도 많다. 인생은 결국 새옹지마이고, 내가 지금 노력하는 것이 당장 빛을 발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그 작은 노력들이 하루하루 쌓이다 보면 어느 날 갑자기 내가 성장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살아온 경험에 의하면 그렇다. 그 성장을 바탕으로 한 발 더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얻는 날이 올 것이라는 마음으로 살아 주기를 젊은이들에 바란다.

인생의 미래를 알 수 없기에 젊은이들은 불안하다. 불확실한 미래는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의 축복일 수도, 불안감으로 잠 못 이루게 하는 저주일 수도 있다. 5000년 전 젊은이들도 그랬다.

거북이가 토끼를 이기려는 조급한 마음으로 달렸다면 아마도 몸을 다쳐 경주를 중도에 포기했을 것이다.

항아리에 들어 있는 물은 다 차야 넘치고, 99℃로 달아오른 물은 1도를 채워야 끓는다. 차분한 마음으로 한 발씩 내딛으며 스스로 정한 목적지를 향하는 거북이의 마음을 가질 수 있다면 좋겠다. 공자님은 이런 마음을 항심(恒心)이라고 하셨다.

김호택(연세소아과 원장)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SMR 특별법' 공방 지속… 원자력계 "탄소중립 열쇠" vs 환경단체 "에너지 전환 부정"
  2. 세종시 '러닝 크루' 급성장...SRT가 선두주자 나선다
  3. [오늘과내일] 더 좋은 삶이란?
  4. 조국혁신당 대전시당, '검찰개혁 끝까지 간다'… 시민토크콘서트 성황
  5. 李정부 첫 조각 마무리…충청 고작 2명 홀대 심각
  1. 더불어민주당 전대주자들, '충청당심' 공략 박차
  2. 대전문화재단,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사회공헌활동 펼쳐
  3. [월요논단] 지역주택조합의 분담금 반환과 신의성실의 원칙
  4. 대전미술대전 무산 위기 넘기고 올 가을 정상 개최 가시화
  5. 복지.SOC.민생 방점… 대전시, 추경 8431억 증액

헤드라인 뉴스


가까스로 살린 대전미술대전…문화행정은 이제부터 숙제

가까스로 살린 대전미술대전…문화행정은 이제부터 숙제

36년 전통 지역작가 등용문인 대전광역시미술대전이 가까스로 정상화가 가시화됐지만, 이 과정에서 지역 문화행정이 풀어야 할 난맥상도 함께 드러냈다는 지적이다. 행정당국의 집행 관리 부실과 시의회의 검증 미비 등으로 한때 무산위기까지 몰린 것인데 지역 예술계에선 이같은 구조적 허점에 대한 대대적 손질이 불가피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13일 취재에 따르면, 제37회 대전광역시미술대전(이하 대전미술대전)은 대전시립미술관 대관 과정에서 미술관 운영위원회 정족수 미달, 협회 관계인 포함 등 절차상 문제가 한 차례 불거졌다. 시의회 행정사무감..

이 대통령 “공직자의 손에 대한민국 운명이 달려 있다”… 예비공직자 특강
이 대통령 “공직자의 손에 대한민국 운명이 달려 있다”… 예비공직자 특강

이재명 대통령은 14일 예비 공직자 대상 특강에서 “여러분의 손에 대한민국의 운명이 달려 있다”고 강조했다. 이날 5급 공채에 합격한 예비사무관(제70기) 350명을 대상으로 충북 진천군 국가공무원 인재개발원에서 ‘국민주권시대, 공직자의 길, 국민과 함께 만들다’라는 주제로 열린 특강에서다. 예비 사무관을 대상으로 한 대통령 특강은 2005년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이후 20년 만으로, 새 정부의 국정철학과 국정 운영 방향을 직접 전달하고 소통하기 위해 마련됐다. 이 대통령은 "권력은 나의 의지를 타인에게 강제할 수 있는 힘이지만,..

무더위에 수박 한 통 3만원 훌쩍... 농산물 가격 급등세
무더위에 수박 한 통 3만원 훌쩍... 농산물 가격 급등세

여름 무더위가 평소보다 일찍 찾아오면서 수박이 한 통에 3만원을 넘어서는 등 농산물 가격이 급등하고 있다. 13일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에 따르면 대전 수박 평균 소매 가격은 11일 기준 3만 2700원으로, 한 달 전(2만 1877원)보다 49.47% 오른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1년 전 2만 1336원보다 53.26% 오른 수준이다. 2020년부터 2024년까지 가격 중 최대·최소를 제외한 3년 평균치인 평년 가격인 2만 1021원보다는 55.56% 인상됐다. 대전 수박 소매 가격은 2일까지만 하더라도 2만 4000원대였으나 4일..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폐업 늘자 쏟아지는 중고용품들 폐업 늘자 쏟아지는 중고용품들

  • 물놀이가 즐거운 아이들 물놀이가 즐거운 아이들

  • ‘몸짱을 위해’ ‘몸짱을 위해’

  • ‘꿈돌이와 전통주가 만났다’…꿈돌이 막걸리 출시 ‘꿈돌이와 전통주가 만났다’…꿈돌이 막걸리 출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