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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호 배재대 미디어콘텐츠학과 교수. |
당시는 주한미군의 법적 지위, 불평등한 주한미군지위협정(SOFA), 그리고 미국의 대북 강경정책에 대한 불만이 고조되어 있었다. 김대중 정부가 '햇볕정책'을 통해 남북 화해를 추진했지만, 미국 부시 행정부는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고 대화를 거부했다. 이처럼 외교 정책에서의 간극은 국민에게 혼란을 안겼으며, 미군 관련 사고는 이러한 불균형이 표면화된 단적인 사례로 기능했다.
2025년 7월, 미국은 한국을 포함한 14개국에 대해 전방위적 무역 제재를 발표하고, 모든 수입품에 대해 25%의 추가 관세를 부과했다. 특정 품목에 국한되지 않은 이 조치는 미국의 공급망 재편과 보호무역주의의 본격적 전개를 의미한다. 직전 마크 루비오 국무장관의 아시아 순방에서 한국이 제외되었고, 이재명 대통령이 NATO 정상회의에 불참한 사실이 겹치면서, 한미 간 전략적 불일치가 분명히 드러났다.
이러한 정황은 한미동맹이 단순한 군사적 협력을 넘어, 정치·외교 전반에서 중대한 시험대에 올라와 있음을 시사한다. 특히 남북 관계의 역사, 한국 내 운동권의 반미 정서, 그리고 이재명 정권의 정치적 성향을 종합할 때, 반미 감정을 전략적으로 활용하려는 시도가 현실화할 가능성이 존재한다.
실제로 문화예술계에서는 반미 정서를 반영한 콘텐츠 제작의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2000년대 초반 개봉한 영화 '괴물(2006)'과 '웰컴 투 동막골(2005)'은 2002년 사건의 사회적 분위기를 투영한 대표적 사례였다. 이러한 작품들은 국내외에서 주목받았고, 국민의 감정에 호소하며 정치적 의제화에도 일정 부분 영향을 미쳤다. 외교가 이처럼 감정과 선동에 휘둘릴 경우, 국익은 훼손되고 국제사회에서의 신뢰 또한 크게 약화할 수밖에 없다. 오늘날 역시 동일한 함정을 반복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
현재 대한민국은 미·중 패권 경쟁의 중심부에 놓여 있으며, 안보와 통상이 복합적으로 얽힌 국제 정세 속에 있다. 이런 시대에 외교는 감정이 아니라 이성에 기반해야 하며, 전략적 사유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이 시점에서 되새겨야 할 원칙이 바로 '원교근공(遠交近攻)'이다. 이는 사마천의 '사기', '범저채택열전(范雎蔡澤列傳)'에 등장하는 외교 전략으로, 강대국 사이에서 생존하기 위해 인접국(북한·중국·일본·러시아)과 필연적으로 대립하더라도, 이를 극복하기 위해 먼 나라(미국)와는 우호적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전략적 통찰을 담고 있다.
조선 말기에 널리 읽힌 '조선책략(朝鮮策略)' 역시 유사한 맥락에서 조선이 러시아의 남하를 견제하기 위해 미국과의 선린 외교를 강조하였다. 이는 단순한 외교 지침이 아닌, 제국주의 질서 속에서 약소국이 취할 수 있었던 유일한 생존 전략이었다. 오늘날의 한국도 유사한 조건에 놓여 있으며, 초강대국 사이에서 자주성과 안보를 동시에 확보해야 하는 현실에 직면해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주한미군의 존재는 동북아의 전략 균형을 유지하고, 한반도 평화와 안정의 근간을 이루는 존재이다. 실제로 1953년 정전협정 체결 이전 동북아시아는 청일전쟁(1894), 러일전쟁(1904), 만주사변(1931), 중일전쟁(1937), 태평양 전쟁(1941), 한국전쟁(1950) 등 전쟁이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미군이 주둔한 이후 지금까지 약 70년간, 이 지역에서는 대규모 전쟁이 한 차례도 발생하지 않았다. 이는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동맹 체제와 전쟁 억지력이 구축한 구조적 평화의 산물이다.
따라서 일시적인 통상 마찰이나 정책 갈등이 존재하더라도, 이를 감정적으로 반미로 몰아가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 2002년의 경험은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언제든 반복될 수 있는 구조적 경고다. 외교는 국민감정을 달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국가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냉철한 전략이어야 한다. 급변하는 국제질서 속에서 한미동맹은 조율과 점검은 가능하되, 무리한 해체나 약화는 선택지가 되어서는 안 된다. 국가의 생존과 번영을 위한 전략적 사유는 단기적 정치 유불리를 넘어서는 고차원의 판단이어야 한다. /강병호 배재대 미디어콘텐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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