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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복 연구가가 찾은 부천 시골애 식당. (사진= 김영복 연구가) |
있다.
최근 날씨가 40도에 육박할 정도로 더워가 계속되다 갑자기 장마에 접어 들었다. 초복(初伏)은 하지 다음 제3경일, 중복(中伏)은 제4경일, 말복 (末伏)은 입추 후 제1경일을 가리키는데, 여기서 '경일(庚日)'은 60갑자 중에서 천간(天干) 에 '경(庚)' 자가 들어가는 날을 말한다 .
초복을 앞두고 마침 부천에 직장을 가지고 있는 고향 후배가 민어탕이나 먹자고 하여 서울 지하철 7호선을 타고 신중동역에서 내렸다.
3번 출구에서 내려 약 541m 정도가면 한우육회 태안, 서산의 향토음식 게국지, 홍어, 낙지탕탕이, 병어 조림, 등 해산물 메뉴가 풍부한'시골애(愛)'이 있다.
이 집은 여름철 특별메뉴로 민어탕을 비롯한 민어 요리로 유명한 맛집이다. 이곳의 대표 메뉴는 로 유명하다.
민어탕은 양반들 사이에서 여름철 삼복더위를 잊게 하는 보양 음식으로 큰 인기를 끌었다. 여름 제철 채소와 갖은양념을 넣고 푹 달이면 뽀얗게 우러나오는 기름이 동동 뜬 탕으로, 민어를 따라올 만한 생선은 없었다.
그래서 옛날에는 임금님은 물론 사대부나 양반가에서는 여름에'민어 맑은탕'으로 복달임을 했다. 그리고 형편이 넉넉하지 못한 집안에서는 육개장으로 대신했던 것이다.
오늘은 초복을 마지하여 민어탕을 즐기며 양반행세나 해 볼까 한다. 그러나 이 고기의 이름은'백성의 고기'라 불리는 민어(民魚)다.
민어는 서해와 남해 갯벌이 있는 깊은 바다에서 서식한다. 4~5월까지 긴 겨울잠을 자고 난 민어는 산란기를 앞둔 6~7월이 1년 중 가장 맛있다.
1974년에 발행된『어류박물지(魚類博物志)』에 따르면 전남 법성포에서는 3cm 내외의 것을 '홍치'완도에서는 불둥거리라고 했으며, 서울과 인천상인들 사이에선 민어의 크기가 두뼘이 안 되는 것을 '보굴치', 세 뼘 정도인 것을 '어스래기' , 세 뼘 반인 것을 '상민
어', 네 뼘이 넘는 것을 '민어'라 하였다.
평안남도 한천(漢川) 지방에서는 민어 새끼를 민초라고 불렀고, 전남 지방에선 민어의 특대를 개우치, 소금에 절여 말린 민어의 수컷을 '수치'라 불렀고, 암컷은 '암치'라 불렀다.
꼬리지느러미는 길고 참빗 모양을 하고 있다. 몸빛은 등쪽이 회청색이고, 배쪽은 연한 흰빛이다. 몸길이는 90㎝에 달한다. 우리나라 서·남해에 분포하며 동해안에는 없다. 경기도의 덕적도 연해와 전라도의 신도 연해에서 많이 잡힌다.
민어는 옛날부터 우리 민족이 좋아하는 물고기이며, 그 어업의 역사도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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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어탕. (사진= 김영복 연구가) |
특히 조선중기 학자이며 문장가인 허균(許筠1569~1618)은 『성소부부고 』제26권 설부(說部) 5 [도문대작(屠門大嚼)]에서 '물고기 중에서 흔한 것은 민어(民魚)·조기[石首魚]·밴댕이[蘇魚]·낙지[絡締]·준치[眞魚] 등으로서 서해 곳곳에서 나는데 모두 맛이 좋아 다 기재하지 않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승정원일기(承宣院日記)』인조 17년(1639) 6월 14일 조선중기 문신 이경직(李景稷1577~1640)은"노어와 민어(民魚)가 모두 맛이 좋으니, 진상에 사용하는 생선은 이들 생선을 섞어서 사용하는 것이 마땅합니다."라고 임금에게 주청하였다.
손암(巽庵) 정약전(丁若銓 1758~1816)의 『자산어보(玆山魚譜)』에는 민어를 면어라고 하고 그 속명을 민어(民魚)라고 하였으며, 민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기술하였다.
"큰 것은 길이가 4, 5자이다. 몸은 약간 둥글며 빛깔은 황백색이고 등은 청흑색이다. 비늘이 크고 입이 크다. 맛은 담담하고 좋다. 날 것이나 익힌 것이나 모두 좋고 말린 것은 더욱 몸에 좋다. 부레로는 아교를 만든다.
흑산도 바다에는 희귀하나 간혹 수면에 떠오르고, 간혹 낚아서 잡는다. 나주(羅州)의 여러섬 이북에서는 5, 6월 그물로 잡고 6, 7월 낚시로 잡는다. 그 알주머니는 길이가 수 자에 달한다.
젓갈이나 어포가 모두 맛이 있다. 어린 새끼를 속칭 암치어(巖峙魚)라고 한다. 또, 1종이 있는데 속칭 부세(富世)라 하며 길이가 2자 남짓할 정도에 불과하다."
이를 통하여 민어가 옛날부터 유용한 물고기로 취급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 후기의 학자 이덕무(李德懋), 1741~1793)의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에는 ' 면어는 생김새가 농어와 같으면서 살이 거친데, 아가미가 셋인 것이 면, 넷인 것이 모
(茅)이다. 면어는 곧 악청(樂淸 지명)에서 이르는 민어로 모광(茅狂)이라고도 한다."면어는 곧 민어(民魚)인데, 면과 민(民)은 음이 가깝고 민과 민(民)은 음이 가깝다. 대저이러한 것들의 이름에 방언을 쓰지 않고 그대로 중국말을 쓴 것인데, 다만 글자가 다를 뿐이다. 라고 하면서 민어의 민(敏)과 민어(民魚)의 민(民)이 서로 가까운 것과 같은 것이다.라고 하였다.
조선후기 실학자 풍석(楓石) 서유구(1764~1845)의 『난호어목지(蘭湖漁牧志)』에는 민어를 한자로 민어라고 쓰고, 서·남해에서 나며 동해에는 없고 모양이 조기[石首魚]와유사하나 그 크기가 4, 5배에 달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부레는 교착력이 강하여 전국의 공장(工匠: 물건을 만드는 것을 업으로 하는 사람)이 사용하는 아교가 모두 민어의 부레라고 하였다. 또, 민어의 알젓은 진귀한 식품이고 민어의 염건품(鹽乾品)은 손님 접대용이나 제수용으로 쓰인다고 하였으며, 관서지방 사람은 담상, 즉 소건품(素乾品)을 만드는 데 그것은 더욱 좋다고도 하였다. 부레는 삶거나 젓갈로도 먹지만 교착력이 강해 선조들은 풀(민어교, 民魚膠)로 요긴히 썼다고 한다. 햇볕에 말려 끊인 뒤 고급 장롱을 비롯해 문갑, 등가구를 만들거나 합죽선의 부챗살과...배경에서 비롯됐다. 이는 강강술래에 나오는 "이 풀 저 풀 다 둘러도 민애풀 따로 없네"라는 매김 소리나, '옻칠 간 데 민어 부레 간다'는 속담은 그러한 배경에서 출발했을 거라는 것에서 비롯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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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어탕. (사진= 김영복 연구가) |
이 밖에도 민어를 저며 소금물에 담갔다가 양념장에 재어 굽는 민어구이와 민어살에 밀가루와 달걀을 씌워 기름에 부쳐 전을 만들기도한다.
특히 민어는 여름이 제철로 복 더위에 민어찜은 일품, 도미찜은 이품, 보신탕은 삼품이라 할 만큼 더위에 지친 기력회복에 최상의 보신식품이다.
1908년에 쓰여진『한국수산지(韓國水産誌)』제1집에는 조선 말기의 민어 어업의 실태가 잘 소개되어 있다. 민어의 산지에 대하여 "민어는 서남해에 많고 동해에 이름에 따라 점차 감소하여 강원·함경도 연해에 이르러서는 거의 볼 수 없다."고 하였다.
어장은 "완도·진도·태이도(苔耳島)·칠산탄(七山灘)·격음열도·인천·진남포·연평열도·압록강이고, 가장 주요한 어장은 목포 근해 태이도, 금강 강구(江口), 군산 근해 및 압록강 강구"라고 하였다.
또, 태이도는 예부터 민어의 산지로서 유명하였고 우리나라 사람은 각종 재래식 어구로써 어획하고 있었는데, 1906년에 일본 어민이 태이도에서 안강망(鞍鱇網)을 사용하여 큰 성과를 거둔 뒤 이를 전하여 들은 안강망 업자들이 속속 들어와서 그 어선 수가 40여 척에 달하였 다고 하였다.
우리나라 사람이 사용하였던 민어 어구는 일본조(一本釣)와 연승이 주였고 때때로 주목망(柱木網) 및 중선망(中船網)을 사용하였다고 한다.
이용기(李用基)도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朝鮮無雙新式料理製法)』에서 '민어는 매우 흔한 생선이지만, 여러 가지 잔치에 널리 쓰이는 소중한 생선이라고 하였다. 이러한 기록으로 미루어 볼 때, 민어는 매우 흔하지만 잔치에 빠져서는 안 될 중요한 어물(魚物)로 인식되었던 것 같다.
민어(民魚), 즉 '백성의 고기'라는 이름은 바로 이러한 인식에서 비롯한 것으로 보인다. 민어는 1년 중 6~7월이 가장 맛있다.
민어는 호박 날 때가 되어야 기름지고 맛이 좋은데, 특히 6월 그믐 전에 잡은 것이 가장 맛이 좋다'고 하였다. 일반적으로 민어로 만든 음식은 이용기의 말처럼 여름철이 가장 맛있 지만, 『규합총서(閨閤叢書)』에서는 가을에 두껍게 떠서 말린 민어 어포(魚脯)는 광어보다 낫다고도 하였다.
예로부터 민어는 버릴 게 하나도 없는 생선으로 인식되어 왔다.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에는 민어를 이용한 음식과 조리법에 대해 구체적인 기록이 보이지 않지만, 조선시대부터 1950년대 중반까지 쓰인 조리서를 참고해 볼 때, 민어를 재료로 한 음식들은 민어구이·민어조림·민어국(탕)·민어채·민어회·민어포·어만두 등 종류가 매우 다양하다. 그중에서도 민어탕은 양반들 사이에서 여름철 삼복더위를 잊게 하는 보양 음식으로 큰 인기를 끌었다. 밀가루나 메밀가루 대신, 생선살을 만두피 삼아 만두를 빚는 어만두의 재료로도 많이 사용하였다. 또한 조선시대에는 민어 부레의 독특한 식감을 살려 부레찜이나 어교순대를 만들어 먹기도 하였는데, 이는 매우 고급음식이었다. 이외에도 민어를 소금에 절여 만든 암치, 민어와 영계를 섞어 동글동글 빚어 만든 어알탕, 민어 알을 간장에 절였다가 말린 어란 등이 있다.
민어는 살뿐만 아니라 머리의 붉은 껍질과 살도 맛이 좋기로 유명하며, 민어 알을 간장에 절였다가 말린 어란이 맛이 좋아 청어알, 철갑상어알, 연어알, 숭어알과 함께 5대 미란(五大味卵)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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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공원에 있는 안중근 의사의 어록 등이 담긴 비석. (사진= 김영복 연구가) |
김영복 식생활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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