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톡] 오지랖 넒은 박여사

[공감 톡] 오지랖 넒은 박여사

  • 승인 2016-08-05 00:30
  • 김소영(태민)김소영(태민)
▲ 단편영화 '버스44' 포스터
▲ 단편영화 '버스44' 포스터


“딩동딩동” 이른 아침부터 초인종이 울린다. 마침 통화중이라 누구인지 확인도 못한 채 문을 열었다. 눈앞에 남다른 패션을 선보이고 있는 멋쟁이 박순금 여사가 서 계시다. 친정 엄마다. 하던 통화를 마저 끝내려 하였는데 그새를 못 참고 불호령이 떨어진다.

“짐 안 받고 뭐하냐?”
딸네 집 오신다고 양손에 무언가를 바리바리 들고 오셨다. 친정엄마의 호령에 끝인사도 제대로 못하고 전화를 끊었다. 불같은 성격을 알기에 아무 군소리 없이 얼른 짐을 받아 들었다.

51년 전 친정 엄마는 가난한 시골 9남매의 장녀로 집안을 일으키고 말겠다는 큰 포부를 가지고 혼자 서울로 상경했다. 전라도 광주의 똑순이 기질로 웬만한 남자들도 못 하는 일들을 거뜬히 해나가며 돈을 벌었다. 벌이가 좋아 동생들을 서울로 다 데리고 와서 공부시키고, 시집 장가 다 보내고, 부모님에게는 농사 지을 넓은 땅도 사드리며 자기의 꿈을 이룬 여장부다.

그만큼 오지랖도 넓어 불쌍한 사람을 보면 그냥 보지 못하고 주머니에 가진 돈을 다 내어주기도 하고 또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성격이라 그로인해 여러 가지 크고 작은 인생의 굴곡도 많은 여인이었다.

인신매매가 성행할 때 새벽 집 앞 큰길에서 봉고차에 끌려가는 아가씨 고함 소리에 달려가 몇 번을 신고하기도 했고, 또 이런 일도 있었다. 엄마와 시장을 가는 길에 한 손에는 지갑을 또 한 손에는 학생으로 보이는 여자의 팔을 붙잡고 어디론가 끌고 가는 험상궂게 생긴 남자가 보였다. 주위에 사람들이 많았고 웅성거리고는 있었지만 날카롭게 치켜 올라간 눈꼬리며, 숯검댕이 눈썹, 우락부락한 덩치로 함부로 범접할 수 없는 인상 때문인지 다들 도움을 주려고 선뜻 나서는 사람은 없었다. 여학생은 도움을 청하고자 자기 사정을 주위에 호소하고 있었다.

잔뜩 겁먹은 눈에는 눈물까지 글썽거렸다. 그 때 갑자기 박여사가 나서려는 조짐을 받은 난 엄마의 옷자락을 꽉 움켜쥐었다. 무서운 요즘 세상에 험한 꼴이나 당하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니나 다를까 나의 손길을 세차게 뿌리치는 박여사. 그 남자의 손에서 지갑을 눈 깜짝 할 사이에 낚아채서는 여학생의 손에 쥐어주고 옆에 어리둥절 바라보는 험상궂은 남자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로 여학생을 나무랐다.

“넌 고모한테 왔으면 빨리 가지 왜 여기서 이러고 있어?”라며 남자의 손에서 여학생을 떼어냈다. 그리곤 여학생의 손을 이끌고 버스 정류장으로 데리고 갔다. 그 험상궂은 남자는 “뭐야 이 아줌마는? 뭐하는 겁니까?” 라고 따져 들었지만 못 들은 척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박여사는 안전하게 버스에 여학생을 태우고 나서야 “나 저애 고모 친구야. 주위에 사람들도 많은데 조용히 가는 게 좋을 거야. 내가 바로 경찰 부르기 전에.” 라고 하자 험상궂은 남자는 재수 없다며 욕 한마디와 우리 쪽에 더러운 침 사례(謝禮)를 하고는 사라졌다.

그제서야 나도 박여사에게 한 마디 할 수 있었다. “엄마 요새 세상이 얼마나 무서운 줄 알아? 저 사람이 해꼬지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랬어?”

▲ 단편영화 '버스44' 중 한장면
▲ 단편영화 '버스44' 중 한장면

그때 문득 생각나는 영화 하나가 있었다. 홍콩에는 버스44라는 2001년에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가 있다.

내용은 이렇다. 중국의 어느 시골길에 한 청년이 2시간 가까이 기다려 44번 버스를 탄다. 출발한 버스는 얼마 가지 않아 2인조 강도의 습격을 받는다. 승객들의 금품을 빼앗은 강도들은 젊은 여자인 운전사를 성폭행하려 한다.

그런데도 버스 승객 그 누구도 도와주지 않고 침묵한다. 뒤늦게 버스를 탔던 한 남성만이 용기있게 그 상황에 뛰어들어 말리다가 심하게 얻어맞는다. 급기야 그 강도들은 버스를 세우고 여성 운전기사를 숲으로 끌고 들어가 번갈아 가며 욕을 보인다. 한참 뒤 여성 운전기사는 그 강도들과 돌아온 뒤 강도를 말리던 남자에게 다짜고짜 버스에서 내리라고 한다. 남자는 황당해 하며 “아까 난 당신을 도와주려고 하지 않았느냐?”고 하자 기사는 “당신이 내릴 때까지 출발하지 않겠다”라고 단호히 말한다. 그러자 승객들은 그 남자를 강제로 끌어내리고 짐도 던져 버린다. 그러자 버스는 출발했고 여성 운전기사는 커브길에 이르자 속도를 내어 그대로 낭떠러지로 추락한다 그리고 전원 사망을 한다.

그 여성 기사는 오직 살만한 가치가 있던, 악행을 제지했던 그 남자를 일부러 내리게 하고 외면했던 승객들을 모두 데리고 인생을 마감했던 것이다.

이 ‘버스44‘라는 영화에서 기사가 당하는 일이 타인의 일이고 자신에게 위험이 오지 않았으니 그만이라는 생각으로 버스가 빨리 운행되기만을 기다리던 승객들. 그들을 바라보던 여자 운전기사의 원망에 찬 눈빛 연기가 가슴을 파고든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버스기사의 심정을 담아낸 표정과 눈빛이었기에 시리도록 남았다.

이 영화를 통해 악행을 저지르는 자들은 물론이고 방관자도 죄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리고 나 또한 방관자는 아닐까 반문해 본다.

어려운 처지에 놓인 타인에 대해 모른 체하는 방관자 보다는 오히려 오지랖을 넓혀 아는 체 하는 게 사람의 도리가 아닐까? 그러므로 70이 넘어 주름살로 얼룩진 엄마가 자랑스럽다. 방관자가 아닌 오지랖 넓은 우리 멋쟁이 박순금 여사는 오늘도 어디선가 큰소리치며 이름처럼 반짝반짝 빛나는 삶을 살고 있을 것이다.

/김소영(태민) 시인

▲ 김소영 시인
▲ 김소영 시인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대전 문화동 국방부 땅 매각 검토될듯…꽃마을엔 대체부지 확보 요청도
  2. 李정부, 해수부 논란에 행정수도 완성 진정성 의문
  3. 지역정책포럼 '이재명 정부 출범과 지역과제' 잡담회 개최
  4. 아빠도 아이도 웃음꽃 활짝
  5. [월요논단] 대전 야구.축구, 흥행은 성공, 결과는 불만
  1. 대전교육청 리박스쿨 관련 단체 민간자격증 소지자 16명 확인
  2. [홍석환의 3분 경영] 잘할 수 있다는 믿음
  3. [편집국에서] 안전 이별 했어?
  4. [오늘과내일] 대전 칼국수와 나가사키 짬뽕의 인문학적 교류 가능성
  5. 2026년 지방선거 향하는 세종시 정치권...'시장 선거' 구도는

헤드라인 뉴스


李정부 해수부 이전 지방선거 메가톤급 뇌관되나

李정부 해수부 이전 지방선거 메가톤급 뇌관되나

이재명 정부의 해양수산부 부산 이전 추진이 채 1년도 남지 않은 제9회 지방선거를 흔드는 메가톤급 뇌관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탈(脫) 세종이 현실화되면 직접적 타격을 입는 충청권을 넘어 인천, 호남까지 연쇄 충격파가 우려되면서 전선확대가 불가피해졌기 때문이다. 이재명 정부는 16일 정부서울청사 창성동 별관에서 앞으로 5년간 국정 청사진을 제시할 국정기획위원회 1차 전체회의를 갖고 본격 가동에 착수했다. 이 대통령의 PK 대표 공약이었던 해수부 부산 이전도 조만간 구체화 될 전망이다. 대통령실에선 경제성장수석 산하에 신설되는 해양수산..

"팔지도 않은 집에 세금을?" 대전 재초환 둘러싸고 `설왕설래`
"팔지도 않은 집에 세금을?" 대전 재초환 둘러싸고 '설왕설래'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재초환)를 둘러싸고 설왕설래가 이어지고 있다. 대전에선 올해 입주한 서구 용문1·2·3구역 '둔산더샵엘리프' 재건축 사업이 적용대상으로 꼽히면서 반발이 커지고 있다. 16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올해 재건축 부담금 부과 예상 단지는 전국 58곳으로 집계됐다. 이중 대전에선 용문1·2·3구역이 유일하다. 재초환은 재건축으로 얻은 초과 이익이 조합원 1인당 8000만 원이 넘으면 초과 이익의 최대 절반을 부담금으로 환수하는 제도다. 이를 두고 용문1·2·3구역 주택재건축정비사업조합은 재초환 제도에 대해 강한 불만을 제..

[대입+] 문과 침공 현실화… 인문계·교대 합격생 절반 이상이 `이과생`
[대입+] 문과 침공 현실화… 인문계·교대 합격생 절반 이상이 '이과생'

2025학년도 대학 정시모집에서 인문계 학과와 교대 정시 합격자 가운데 절반 이상이 수학 '미적분' 또는 '기하'를 선택한 수험생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2022학년도 통합수능 도입 이후 수학 선택과목 간 표준점수 차이로 인해, 자연계열 수험생들이 인문계 학과에 대거 교차 지원하면서 발생한 이른바 '문과 침공' 현상이 본격화된 결과로 분석된다. 15일 종로학원 분석결과 수도권 주요 17개 대학(서울대·고려대 등 비공개)의 인문계 학과 340곳 중 정시 합격생 가운데 55.6%가 미적분 또는 기하를 선택한 수험생으로 나타났다. 수학..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참전유공자들, ‘안보’의 중요성 강조 참전유공자들, ‘안보’의 중요성 강조

  • ‘피해 없도록’…침수대비 수방장비 점검 ‘피해 없도록’…침수대비 수방장비 점검

  • 아빠도 아이도 웃음꽃 활짝 아빠도 아이도 웃음꽃 활짝

  • ‘내 한 수를 받아라’…노인 바둑·장기대회 ‘내 한 수를 받아라’…노인 바둑·장기대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