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속으로]'꼰대'의 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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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속으로]'꼰대'의 변명

김명주 충남대 교수

  • 승인 2019-03-11 10:45
  • 신문게재 2019-03-12 22면
  • 이상문 기자이상문 기자
김명주-충남대-교수
김명주 충남대 교수
괜히 가르치려 드는 사람, 청하지도 않은 충고를 늘어놓는 사람, 개인의 일리를 보편진리로 고집하는 사람, 나만의 특수 저울로 다른 사람 모두를 저울질하는 사람, 어딜 가나 그런 사람들과 부딪히기 마련이다. 그런 사람들을 우리는 소위 '꼰대'라고 부른다.

그런 의미에서 나도 '꼰대'다. 젊은이들이 시행착오 없이 꽃길 걷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끊임없이 가르치고 충고한다. 그러나 누구나 겪을 만큼 겪어야 알기 마련이고 삶의 지름길은 별로 없다. 그런데도 가르치려 드니 나는 꼰대다. 게다가 나의 삶은 학문하는 경험에 제한돼, 숨 가쁘게 변화하는 수많은 직종에는 무지하다. 지식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시대에 과거 백과사전적 지식인은 이미 불가능해졌고, 이젠 특정 분야의 전문가만 있을 뿐이다. 그래서 전문분야에서 벗어나면 누구나 무지하다. 무지한 자가 이러쿵저러쿵 충고하니 제아무리 진심이라 해도 꼰대는 꼰대다.

이런 꼰대들은 특히 젊은 세대에게 가장 비호감 인간형이다. 더 이상 젊지 않은 나도 꼰대를 싫어한다. 내 안의 '꼰대성'을 싫어하고, 다른 사람들 안에 들어있는 '꼰대성'도 싫어한다. '꼰대성'은 전인격의 한 부분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꼰대성'의 부정적인 측면은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꼰대가 싫은 이유는 여러 가지다. 일단 시대가 변했기 때문이다. 과거에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들의 수는 매우 적었고, 대다수는 교육의 혜택에서 배제되었다. 그래서 지식은 힘이었고, 지식인은 꼰대가 아닌 선생으로 존경받았다. 그런데 지금은 다들 배울 만큼 배운, 모두가 똑똑한 시대가 되었다. 대학진학 연령대 젊은이 중 80%에 육박하는 대다수가 대학에 진학한다. 다들 알 만큼 아는데, 자꾸만 가르치려 드는 꼰대가 달가울 이유가 없다.



교육혜택의 증가와 발맞추어 개인의 자의식도 한결 단단해졌다. 즉, '나'는 '나'다 라는 개체성과 주체성이 뚜렷해졌다는 뜻이다. 뚜렷한 개체성은 양면성이 있다. 소위 주체로서 거듭나 개인의 정체성을 공고히 한다는 장점이 있지만, 자칫하면 개체들이 제각각 섬으로 고립될 위험도 있다. 그래서 나와 타자 사이 피할 수 없는 줄다리기도 필연적이고, 나를 침해하는 꼰대들의 행진을 막으려는 자기방어도 필연적이다. 후자의 경우, 우리는 꼰대를 극도로 싫어할 수밖에 없다.

오래전에 읽은 어느 논문에서 누군가 이렇게 말했다. 오늘날 포스트모던의 시대는 더는 보편타당한 유일무이한 진리를 설교하는 시대가 아니라, 자신만의 일리를 '증언'하는, '개인적 증언'(personal testimony)의 시대라고 말했다. 개인의 '일리'들이 모여, 어느 정도 보편타당성을 획득할 수 있는 경우가 없지는 않겠으나, 적어도 나의 '일리'를 '진리'라고 우기는 태도는 확실히 시대착오적이고 꼰대스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꼰대성을 경계하는 꼰대가 될 수밖에 없다. 어차피 직업이 그렇기도 하고, 사피엔스는 언제나 선대의 어깨 위에서 출발할 수 있었던 이점 덕에 여기까지 왔으니, 선대의 지식을 전하는 일은 여전히 유효한 까닭이다. 비록 궁극적 진리는 인간의 인식을 넘어 베일에 감춰져 있다 하여도, 어떤 일리가 다른 일리보다 조금은 더 보편적임을 아는 까닭이기도 하다. 이를테면 페미니즘이 "또 다른 타자화"일 뿐이라는 부분적 '일리'를 철석같이 믿고 있는 학생이 있다면 나는 가르쳐야 한다. 페미니즘은 모든 타자화를 비판하는 인간해방의 일환이라고. 학생들이 지닌 '일리'의 지평을 조금씩 넓힐 수 있도록 돕는 것, 그것이 어쨌거나 꼰대의 사명이므로.
김명주 충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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