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동길의 문화예술 들춰보기] 백일장 심사

  • 오피니언
  • 여론광장

[양동길의 문화예술 들춰보기] 백일장 심사

양동길 / 시인, 수필가

  • 승인 2019-11-08 00:00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곱게 물든 가을이 산을 내려와 뜨락을 차고앉은 10월 26일, 백일장이 열렸다. '우암백일장'이다. 고색창연한 우암사적공원이 색동옷으로 단장하고 함께 글을 쓴다. 공원은 공원대로 할 이야기가 얼마나 많으랴. 짚풀공예, 전통다례 시연, 미니어처목공체험, 솟대만들기, 선비의상체험 등 각종 체험과 볼거리는 덤이다.

백일장(白日場) 유래는 분명하지 않다. 심사위원(試官)이 참석한 가운데 시제를 내걸고 즉석에서 시문을 지어 기량을 겨루고 시상하였다 전한다. 과거시험형식이나 벼슬과는 관계가 없다. 참가자 자신이 재예(才藝)를 시험하고 자랑하며 다른 사람과 견주어 보는 기회로 삼았다. 백일이란 밝은 낮을 의미한다. 밤에 모여 친목을 도모하고 시재를 견주어 보는 망월장(望月場)과 더불어 유생들 사이에 성행하였다. 문교진흥책이요, 학업 장려 행사였다.



오늘날에도 각종 문화행사에 빠짐없이 등장한다. 그만큼 소중하고, 가치 있는 일이기 때문이리라. 명칭이 다르거나, 방식이 다를 뿐이다. 현장에서 결과를 발표하고, 시상하는 경우도 많이 본다. 우암백일장은 차후에 심사하고, 입상자 대상으로 특정한 날에 시상식을 한다. 오늘이 심사 날이다.

수십 차례 심사했지만 쉽지 않다. 한 자 한 자에 담긴 글 쓴 사람의 노고를 생각하자면 미루어 고려해야 할 사항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생각이 많다 보니 항상 다른 심사위원보다 심사속도가 늦다. 척 보면 안다거나, 몇 줄 보면 안다는 사람과 견줄 바가 못 된다.



글제가 어머니, 효도, 우정이다. 어떤 말도 다르지 않겠지만, 일상적이면서 많은 것을 사유케 하는 말이다. 누구나 많은 애증 관계가 있을 법한 평이 한 단어이다. 그러나 주어진 글제로 글을 쓴다는 것이 생각같이 쉽지 않다. 생각하지 못했던 주제에 황당해하는 아이도 눈에 띈다. 자간에 보인다. 엉뚱한 주제로 글을 쓰거나, 여러 가지 뭉뚱그려 쓰기도 한다. 필자 역시 갑작스러운 주제로 좋은 글 쓸 자신이 없다. 재간도 없다.

억지로 끌려 오거나, 덩달아 따라온 아이도 있는 탓일까? 이름만 적어 내거나, 원고지 한두 장에 몇 자 끄적거려 낸 아이의 글도 있다. 산만한 분위기에 정리된 생각이 나오기 쉽지 않다. 정신력이 강한 탓일까? 현장에서 보면, 주위와 무관하게 진중한 아이도 있다. 아예 사람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으로 찾아들어, 똬리 틀고 사색에 잠긴 아이도 있다. 면벽 참선하는 모습도 보인다. 이 또한 어떠한 환경에서도 자기 일을 할 수 있다는 소중한 체험 아니겠는가?

기본이랄까? 글을 흘겨 쓰거나 알아보기 힘들게 쓰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필체가 나쁜 걸 탓하는 것이 아니다. 필체가 다소 좋지 않더라도 진중한 자세로 또박또박 쓰는 것이 첫 번째 글쓰기 방법 아닐까? 백일장뿐만 아니라, 어떠한 경우도 다르지 않다.

학교에서 선발된 아이는 예상 주제로 글쓰기 연습을 하고 왔을 것이다. 또 현장에 함께하신 교사는 글제와 관련된 지도의 말씀을 해주었을 것이다. 내용이나 글 전개 방식 모두 비슷한 경우가 많다. 지도교사 언질로 사고의 문이 열린 탓이리라. 다급한 탓이었겠으나 다양한 사고의 틀(paradigm), 사고방식 지도로 개인의 감성을 끌어내는 촉매 역할만 하면 어떨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획일적인 글이 되는 것은 좋은 현상이라 할 수 없다.

간접체험을 포함한 체험적 스토리텔링 방식의 글이 많아졌다. 감동을 주기에 용이한 방식 중 하나이니 호불호를 따질 필요는 없다. 다만, 진솔하여야 한다. 공상을 이야기로 풀어내면 감정 전달이나 감동 주기가 쉽지 않다.

작품성이랄까? 개성 있는 글도 더러 있다. 간혹 보이는 신선한 시각과 감각은 배울 점이다.

널리 알려진 좋은 글 쓰는 방법, 작문의 삼다(三多)는 다독(多讀), 다작(多作), 다상량(多想量)이다. 우선 다른 사람의 글을 많이 보고, 많이 써보아야 한다. 이해를 바탕으로 한 논리적이고 창의적인 생각이 함께해야 한다. 낱말 선택, 문장구성, 글맛 내는 법, 목적에 따른 문체 선택 등은 차후 문제이다.

기성 작가도 좋은 글쓰기는 쉽지 않다. 따라서 항상 연구하고 새로운 방법을 시도한다. 좋은 글 기준설정이 각기 다르다. 좋은 글 선정 방식 또한 지극히 주관적이요, 천차만별이다. 입상자가 못된 참가자도 아쉬워하지 말자. 누구나 겪는 과정이다. 백일장에 참가하여 고민하고, 그 생각을 글로 옮겨 써 본 자체가 훌륭한 역사이다. 글쓰기는 정신세계를 넓히고 높이는 데에 필요한 질 좋은 자양분임이 틀림없다.

양동길 / 시인, 수필가

양동길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베일 벗은 대전역세권 개발계획…내년 2월 첫삽 확정
  2. 대학 경쟁시킨 뒤 차등 지원?… 서울대 10개 만들기 사업 놓고 '설왕설래'
  3. 전국 학교 릴레이 파업… 20일 세종·충북, 12월 4일 대전·충남
  4. [기고] 디지털포용법과 사회통합
  5. 어기구 의원, ‘K-스틸법’ 후속 국가재정법 개정안 대표 발의
  1. 양상추 가격 급등 현상에 대전 소상공인도 직격탄... 높아진 가격에 한숨만
  2. '사건 25%↑' 대전경찰, 우수부서 찾아 시상…서부署·중부署 등
  3. 구직자로 북적이는 KB굿잡 대전 일자리페스티벌
  4. 대전상의-국정원 '기업 기술유출 예방 설명회' 개최
  5. 설동호 교육감 시정연설 "모두 균등한 기회 누리는 든든한 대전교육 만들 것"

헤드라인 뉴스


충청권 집값 `온도차`… 대전·충남은 감소, 세종·충북은 상승

충청권 집값 '온도차'… 대전·충남은 감소, 세종·충북은 상승

충청권 부동산 가격이 지역별로 뚜렷한 온도차를 보이고 있다. 대전과 충남 집값은 여전히 하락세를 이어간 반면, 세종은 오름폭을 키우며 상승세를 이어갔다. 충북은 보합에서 상승으로 전환했다. 20일 한국부동산원이 발표한 11월 셋째 주(17일 기준) 전국 주간 아파트 가격 동향에 따르면, 전국 매매가격은 0.07% 올랐다. 전주(0.06%)보다 0.01%포인트 오른 수치인데, 서울과 수도권, 지방 모두 상승했다는 분석이다. 충청권에선 대전의 집값은 0.02% 내렸다. 올해 들어 꾸준한 하락세를 보이며 누적 하락률이 2.11%를 기록했..

특수공집방·국회법 위반 이장우 대전시장·김태흠 충남지사 유죄
특수공집방·국회법 위반 이장우 대전시장·김태흠 충남지사 유죄

국회 패스트트랙(Fast Track: 신속처리안건) 충돌 사건으로 기소된 이장우 대전시장과 김태흠 충남지사에게 유죄가 선고됐다. 당시 대표였던 황교안 전 국무총리와 원내대표였던 나경원 국민의힘 의원을 비롯한 자유한국당 인사들도 마찬가지다. 서울남부지법 형사합의 11부(장찬 부장판사)는 19일 오후 2시 특수공무집행방해와 국회법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된 황교안 전 총리와 나경원 의원, 이장우 시장과 김태흠 지사 등 26명에 대한 선고 공판에서 유죄를 인정하고 벌금형을 선고했다. 나 의원은 특수공무집행방해 등 혐의로 벌금 2000만원,..

[단독] 대전 법동 으뜸새마을금고, 불법 선거 논란
[단독] 대전 법동 으뜸새마을금고, 불법 선거 논란

사상 첫 직선제로 이사장을 선출한 대전 대덕구 법동 으뜸새마을금고가 불법 선거 논란에 휩싸였다. 이에 대해 수사를 벌인 경찰은 최근 사전 선거 운동 혐의 등으로 올해 7월 당선된 이사장 A씨를 검찰에 넘긴 것으로 알려졌다. 20일 경찰과 법조계에 따르면 올해 법동 으뜸새마을금고 이사장에 선출된 A씨는 공식 선거 운동 예정일 전부터 실질적인 선거유세를 펼쳤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새마을금고 이사장 선거는 2021년 제6대 선거까지 간선제로 진행됐지만, 올해 치러진 제7대 선거는 금고 설립 이후 처음으로 전체 회원이 투표에 참여했다...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은빛 물결 억새의 향연 은빛 물결 억새의 향연

  • 구직자로 북적이는 KB굿잡 대전 일자리페스티벌 구직자로 북적이는 KB굿잡 대전 일자리페스티벌

  • 크리스마스 트리 앞에서 ‘찰칵’ 크리스마스 트리 앞에서 ‘찰칵’

  • 추위와 독감 환자 급증에 다시 등장한 마스크 추위와 독감 환자 급증에 다시 등장한 마스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