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동길의 문화예술 들춰보기] 콜라보레이션 사유

  • 오피니언
  • 여론광장

[양동길의 문화예술 들춰보기] 콜라보레이션 사유

양동길 / 시인, 수필가

  • 승인 2020-05-29 00:00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시작(詩作)을 비롯한 글짓기 공부 모임을 여럿 안다. 모임을 주도하는 작가에 따라 방식은 약간씩 다르다. 원로 시인이 주관하는 모임에 수년간 참여한 적이 있다. 신작이나 신간 도서 중심으로 스크랩한 자료를 나누어 주고 강의가 시작된다. 소개된 내용의 토론에 이어, 각자가 준비해온 작품에 대한 합평회를 하는 순으로 두 시간 동안 진행한다. 산 아래 첫 건물이라 위치도 좋고, 각종 편의시설이 갖추어져 있어서 모임 하기에 아주 좋은 곳이다. 전시장도 있어 가끔 이런저런 전시회도 열린다. 하루는 미술 전시회가 열리는 데 먼저 보았는지 관람하기를 권한다. 추상화 계열이 주인 전시다. 미술작품을 통하여 현대 예술의 흐름을 느껴보란 의도 아니었을까?

예술은 각 분야나 장르가 이합집산을 거듭한다. 흩어지기도 하고 때로는 모이기도 한다. 따라서 추구하는 바가 크게 다르지 않다. 방법이나 도구, 이용 소재(素材)가 다를 뿐 각기 아름다움을 궁구하기는 마찬가지다.



SNS가 보편화 되면서 협업(collaboration)이 눈길을 끈다. 본래 마케팅 기법의 하나로 시작된 모양이다. 다른 업종, 기업 간 공동작업을 통하여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것이다. 물질과 이미지, 물질과 물질, 이미지와 이미지가 통폐합되기도 한다. 예술계에도 콜라보레이션 바람이 분다. 다른 분야나 다른 장르의 예술가가 공동작업으로 새로운 아름다움과 감동을 선사한다. 공동작업이 아니라도 작가는 충분히 고뇌한다. 그러나 콜라보레이션으로 보다 그 영역이 넓혀지고 깊이가 더해짐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어떤 제재로 주제를 표현하는 것이 좋을까? 신변잡기에서부터 인류, 우주 삼라만상의 진리에 이르기까지 선택의 문제이지 선악은 없다. 다만, 보다 넓은 안목과 철학, 역사 인식이 함께하면 좋지 않을까? 예술에는 작가의 혼이 담긴다. 자신의 이상을 투영하고자 한다. 그러면서 감상자와의 소통과 심상에도 할애한다. 그런 연유로 작품은 인간 정신을 측정할 수 있는 척도가 되기도 한다.



새롭게 규명되어 부각 되었을 뿐, 인간사에 늘 있어 온 일이다. 동양에서는 시화일치(詩畵一致)라 하여 시와 그림이 하나라는 견해도 있었다. 시화일률(詩畵一律)을 동아시아 회화의 핵심개념 중 하나로 보기도 한다. 중국 당대(唐代) 서화론가 장언원(張彦遠)은 『역대명화기(歷代名?記)』 1권 에서 "글과 그림은 각자 다른 이름을 지녔지만 공통된 근원을 가진다." 했다. 소동파로 우리에게 더 잘 알려진 중국 송대 종합 예술가 소식(蘇軾)이 중국 당대(唐代) 시인이며 문인화가인 왕유(王維)의 시와 그림을 평하여 "글 가운데 그림이 있고, 그림 가운데 시가 있다."라고 했다 한다. "시와 그림은 본래 한 가지 이치(詩書畵本一律)"라 하며, "시로 모두 표현할 수 없으면 그것이 넘쳐 서예가 되고, 그것이 변해 그림이 된다(詩不能盡, 溢而爲書, 變而爲畵)"라고도 했다. 곽희(郭熙)의 아들 곽사(郭思)의 『임천고치(林泉高致)』에도 나타난다. "시는 형상이 없는 그림이고 그림은 형상이 있는 시다(詩是無形?,?是有形詩)."

동양에서만 그러한 것은 아니다. 그리스 시인 시모니데스(Simonides von Keos, BC556 ~ BC468?)의 "시는 말하는 그림이고, 그림은 말 없는 시다."를 비롯, 이탈리아 서정시인 호라티우스는(Quintus Horatius Flaccus, BC65 ~ BC8)는 "시는 회화와 같이"라 하였다고 전한다. 물론 서로 우월성을 따지거나 경쟁적 관점으로 보는 견해도 많이 있다.

동양 그림에서는 그러한 관계를 형상화하려는 시도가 많았다. 못지않게 그림을 시로 쓴 경우도 많다. 각 분야나 장르가 갖는 표현의 한계에 따라 상호보완적이라 보기도 한다. 전하는 수많은 작품이, 시가 그림 소재로, 그림이 시의 소재로 적극적으로 활용된 것을 대변한다. 시가 그림의 소재로 사용된 것이 시의도(詩意圖)이며, 특히 산수인물화에 많이 나타난다. 산수인물화에는 많은 이야기가 담겨있다. 때로는 진리나 도가 담기기도, 등장인물이나 작가의 철학이 담기기도 한다. 때문에, 쉽게 다가갈 수 있으나, 형상 없는 추상화 못지않게 감상이 어렵다.

감상이 문제가 아니다. 화가는 그림으로 말하면 된다. 시인은 시로서 말하면 된다. 중언부언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 화석화된 고정관념이 문제였다. 작가 의식도 살필 필요가 있다. 예술은 박제화된 박물관 유품이 아니다. 물론, 어떻게든 자신의 고유 소통 수단으로 이상을 추구하려는 노력도 소중하다. 그러나 열린 사고가 소통 수단을 더욱 풍요롭게 한다는 것은 명약관화해 보인다. 이미 다양한 통폐합이 진행되어왔다. 매체 간 넘나들기(Ekphrasis)도 있다. 연상법, 수달법도 유사하면서 관계가 있다. 끊임없는 외부의 자극으로부터 반응하고 그러한 반응이 인상으로 남아 영역과 토대가 넓어지기 때문이다. 그를 통하여 자신이 확장되고 확산되는 것이다.

자기 일에 몰두하다 보면 관념의 벽에 갇히게 된다. 요즘 같은 물리적 거리 두기에 문득, 염려되는 바가 크다. 다른 분야를 통한 작품구상은 물론, 익숙함에서 이탈하기, 뒤집거나 다른 각도로 보기, 색안경 같은 이물질로 투영해 보기, 낯설어지기를 끊임없이 시도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한다.

양동길 / 시인, 수필가

양동길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대전 한우리·산호·개나리, 수정타운아파트 등 통합 재건축 준비 본격
  2. 대전충남통합市 명칭논란 재점화…"지역 정체·상징성 부족"
  3. 대전 유성 엑스포아파트 지구지정 입안제안 신청 '사업 본격화'
  4. <속보>갑천 파크골프장 무단조성 현장에 잔디 식재 정황…고발에도 공사 강행
  5. 대전교육청 종합청렴도 2등급→ 3등급 하락… 충남교육청 4등급
  1. 이재석 신임 금융감독원 대전세종충남지원장 부임
  2. 주택산업연구원 "내년 집값 서울·수도권 상승 유지 및 지방 상승 전환"
  3. 대전세종범죄피해자지원센터, 김치와 쇠고기, 떡 나눔 봉사 실시
  4. [행복한 대전교육 프로젝트] 대전둔곡초중, 좋은 관계와 습관을 실천하는 인재 육성
  5. 대전·충남 행정통합 속도...차기 교육감 선출은 어떻게 하나 '설왕설래'

헤드라인 뉴스


김태흠-이장우, 충남서 회동… 대전충남 행정통합 방안 논의

김태흠-이장우, 충남서 회동… 대전충남 행정통합 방안 논의

대전·충남 행정통합을 주도해온 김태흠 충남도지사와 이장우 대전시장이 만났다. 양 시도지사는 회동 목적에 대해 최근 순수하게 마련한 대전·충남행정통합 특별법안이 축소될 우려가 있어 법안의 순수한 취지가 유지되는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만났다고 밝혔다. 가장 이슈가 된 대전·충남광역시장 출마에 대해선 김 지사는 "지금 중요한 것은 정치적인 부분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으면서도 "불출마 할 수도 있다 라고 한 부분에 대해선 지금도 생각은 같다"라고 말했다. 이장우 시장은 24일 충남도청을 방문, 김태흠 지사를 접견했다. 이 시장은 "김태흠..

정청래 "대전 충남 통합, 法통과 되면 한 달안에도 가능"
정청래 "대전 충남 통합, 法통과 되면 한 달안에도 가능"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24일 대전 충남 통합과 관련해 "충남 대전 통합은 여러 가지 행정 절차가 이미 진행되어 국회에서 법을 통과시키면 빠르면 한 달 안에도 가능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정 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대전·충남 통합 및 충청지역 발전 특별위원회 제1차 전체회의에서 "서울특별시 못지 않은 특별시로 만들겠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8일 대통령실에서 대전 충남 의원들과 오찬을 가진 자리에서 "내년 지방선거 때 통합단체장을 뽑자"고 제안한 것과 관련해 여당 차원에서 속도전을 다짐한 발언으로 풀이된다..

[기획] 백마강 물길 위에 다시 피어난 공예의 시간, 부여 규암마을 이야기
[기획] 백마강 물길 위에 다시 피어난 공예의 시간, 부여 규암마을 이야기

백마강을 휘감아 도는 물길 위로 백제대교가 놓여 있다. 그 아래, 수북정과 자온대가 강변을 내려다본다. 자온대는 머리만 살짝 내민 바위 형상이 마치 엿보는 듯하다 하여 '규암(窺岩)'이라는 지명이 붙었다. 이 바위 아래 자리 잡은 규암나루는 조선 후기부터 전라도와 서울을 잇는 금강 수운의 중심지였다. 강경장, 홍산장, 은산장 등 인근 장터의 물자들이 규암 나루를 통해 서울까지 올라갔고, 나루터 주변에는 수많은 상점과 상인들이 오고 가는 번화가였다. 그러나 1968년 백제대교가 개통하며 마을의 운명이 바뀌었다. 생활권이 부여읍으로 바..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크리스마스 분위기 고조시키는 대형 트리와 장식물 크리스마스 분위기 고조시키는 대형 트리와 장식물

  • 6·25 전사자 발굴유해 11위 국립대전현충원에 영면 6·25 전사자 발굴유해 11위 국립대전현충원에 영면

  • ‘동지 팥죽 새알 만들어요’ ‘동지 팥죽 새알 만들어요’

  • 신나는 스케이트 신나는 스케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