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상현의 재미있는 고사성어] 제21강 자린고비

  • 문화
  • 장상현의 재미있는 고사성어

[장상현의 재미있는 고사성어] 제21강 자린고비

장상현/ 인문학 교수

  • 승인 2020-06-02 00:00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제21강 자린고비 : 꼭 써야 될 돈조차 쓰지 않는 구두쇠

'자린고비'는 지독하게 인색(吝嗇)한 사람을 비유한 말이다.

본래의 뜻은 부모님 기제사(忌祭祀) 때마다 쓰는 지방(紙榜)을 매년 새 종이에 쓰는 것이 아까워서 한 번 쓴 지방을 기름에 절여두었다가 매년 같은 지방을 썼다는 고사에서 유래 했다고 한다.

'자린'은 '기름에 절인 종이'에서 '절인'의 소리만 취한 한자어이고 '고비(考?)'는 돌아가신 부모님을 가리키는 말로 자린고비는 '기름에 절인 지방'을 가리키는 말이다.



충북 음성(陰城)에 조륵(趙?)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얼마나 구두쇠였나 하면, 쇠파리가 그 집 장(醬)독에 앉았다가 날아가자 다리에 묻은 장이 아깝다고 "저 장 도둑놈 잡아라." 하고 외치며 단양(丹陽) 장벽루까지 파리를 쫓아갔다. 장벽루라는 명칭도 쇠파리에 뭍어 온 장(醬) 때문에 얻은 이름이 아닌가 생각된다.

나아가 조륵은 무더운 여름철이 되어 어쩌다 부채를 하나 장만하면, 부채가 닳을까 봐 부채를 흔드는 게 아니라 부채를 얼굴에 대고 머리만 흔들었다고 한다.

어느날은 동네 사람이 어쩌나 보려고 생선 한 마리를 조륵의 집 마당으로 던졌는데, 이것을 발견한 조륵이 "밥 도둑놈이 들어왔다!" 하고 법석을 떨면서 냉큼 집어 문밖으로 내던졌다.

조륵은 일 년에 딱 한 번 생선 한 마리를 사는데, 아버님, 어머님 제사상에 놓을 굴비였다. 그리하여 제사를 지내고는 굴비를 천장에 매달아 놓고, 밥 한 숟가락 뜨고 굴비 보고 밥 먹고, 또 밥 한 숟가락 뜨고 굴비를 보고 밥을 먹었다.

어느 날 큰 아들이 굴비를 두 번 쳐다보자 작은 아들이 "형이 두 번 쳐다봤어요!"라고 고자질 하자 자린고비가 "놔둬라, 오늘 형 생일이잖아"라고 말했다는 지독한 구두쇠이다.

어느 날은 장모가 놀러왔다가 인절미 남은 것을 몇 개 싸 갔는데, 나중에 알고는 기어코 쫓아가 다시 빼앗아 왔다. 그리고 언젠가는 그가 마당을 쓸고 있는데, 조기 장수가 와서 조기를 사라고 하였다. 그는 조기를 살듯이 이놈 저놈 만지면서 조기의 비늘과 짭짤한 간을 손에 잔뜩 묻혔다. 그는 안으로 들어가 손을 씻은 다음, 그 물을 아내에게 주면서 조기 국을 끓이라고 하였다.

이렇게 해서 그는 만석꾼의 큰 부자가 되었다.

어느덧 조륵이 자린고비로 전국 방방곡곡에 소문이 날 대로 난 어느 날, 전라도에서 유명한 구두쇠가 찾아와서 "조선생, 나도 전라도에서는 소문난 구두쇠인데, 어느 정도 구두쇠여야 당신 같은 큰 부자가 될 수 있습니까?" 하고 물었다. 그러자 조륵은 전라도 구두쇠가 묻는 말에 쓰다 달다는 말도 없이 한참을 있다가, "그러면 나와 같이 나갑시다." 하고는 전라도 구두쇠를 데리고 충주 탄금대(彈琴臺)까지 갔다. 가는 길에 전라도 구두쇠는 신발을 아낀다고 교대로 한 짝은 신고 한 짝은 들고 가는데, 조륵은 아예 신발 두 짝을 모두 들고 갔다. 그것만 봐도 조륵이 한 등급 높은 자린고비가 분명했다. (전라도 구두쇠와의 이야기는 다음 주 화요일에 이어집니다.)

청주(淸州)에 사는 노인 몇 사람이 구두쇠 이야기를 듣고, 놀려줄 요량으로 그를 찾아갔다. 노인들은 그와 인사를 나누고는 눈물을 흘리며 슬피 울었다. 조륵이 깜짝 놀라 우는 까닭을 물으니 한 노인이 말했다.

"우리가 오다가 상여(喪輿)를 보았는데, 상여 양쪽으로 시신(屍身)의 손이 나와 있습디다. 깜짝 놀라 상주에게 그 연유를 물었더니, 죽은 사람은 큰 부자였는데. 그는 재산을 모으느라고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입지도 못하며 살았고, 죽을 때에는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는 것을 생각하니 기가 막혔답니다. 그래서 자식들에게 유언(遺言)하기를 '내가 죽거든 관(棺)의 양쪽에 구멍을 내고 손을 내놓아서 내가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간다는 사실을 여러 사람에게 알리도록 하라.'고 하였답니다. 그래서 고인의 유언대로 한 것이라고 하더군요. 오다가 만난 상여를 생각하니,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하는 인생이 하도 무상(無常)하고 슬퍼서 웁니다."

이 말을 들은 자린고비는 깊이 깨달은 바 있어서 노인들을 며칠 묵게 하면서 후히 대접하고, 갈 때에는 노자(路資)까지 주었다. 그 후로 자린고비는 가난한 사람을 돕는 일에 재물을 아끼지 않았다 한다.

우리나라는 박정희 대통령의 통치능력으로 인해 80년대 이후 급속한 경제성장으로 세계경제대국 진입의 문턱에 들어섰다. 이를 이룩하기 위한 당시 정부와 국민의 아끼고 모으는 노력은 가히 눈물겹다는 말 외에는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다. 그 당시에는 모두들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고, 아껴서 늘리는 희망에 고된 줄조차 몰랐다. 지금의 경제적 풍요(豊饒)는 그 당시 노력의 바탕에 의해 이룩된 것이다.

지금은 어떠한가? 사치와 낭비가 만연되고 황금만능이 문화가 되어버린 사회가 되었다. 그러나 사치와 낭비가 몸에 배어사는 안 된다. 언제 무슨 일로 경제가 요동칠지 모르기 때문이다. 어쩌면 '코로나19'가 그 시기를 경고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요즈음 처해진 상황을 생각하니 '수건 쓴 놈이 힘써서 벌어놓으니 갓 쓴 놈이 다 털어 먹는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때국 놈이 먹는다'는 말이 생각나 겉으로는 웃지만 속으로는 참으로 답답한 심정이다.

장상현/ 인문학 교수

5-장상현-박사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김진명 작가 '세종의 나라'에 시민 목소리 담는다
  2. 세종 '행복누림터 방과후교육' 순항… 학부모 97% "좋아요"
  3. [내방] 구연희 세종시교육청 부교육감
  4.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2026년 장애예술 활성화 지원사업 공모 접수 시작
  5. 대한전문건설협회 대전시회, 한국건축시공학회와 업무협약 체결
  1. 대전 향토기업 '울엄마 해장국'...러닝 붐에 한 몫
  2. ‘사랑 가득한 김장 나눠요’
  3. 따르릉~ 작고 가벼운 '꼬마 어울링' 타세요!
  4. 세종시 빛축제, 시민 힘으로 다시 밝힌다
  5. 재난위기가정 새출발… 희망브리지 전남 고흥에 첫 '세이프티하우스' 완공

헤드라인 뉴스


"일본 전쟁유적에서 평화 찾아야죠" 대전 취재 나선 마이니치 기자

"일본 전쟁유적에서 평화 찾아야죠" 대전 취재 나선 마이니치 기자

"일본에서도 태평양전쟁을 겪은 세대가 저물고 있습니다. 80년이 지났고, 전쟁의 참상과 평화를 교육할 수 있는 수단은 이제 전쟁유적뿐이죠. 그래서 보문산 지하호가 일본군 총사령부의 것이었는지 규명하는 게 중요합니다."일본 마이니치 신문의 후쿠오카 시즈야(48) 서울지국장은 5일 대전 중구 보문산에 있는 동굴형 수족관 대전아쿠아리움을 찾아왔다. 그가 이곳을 방문한 것은 올해만 벌써 두 번째로 일제강점기 태평양전쟁의 종결을 앞두고 용산에 있던 일본군 총사령부를 대전에 있는 공원으로 옮길 수 있도록 지하호를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는데, 그..

학생·학부모 10명 중 8명 "고교학점제 폐지 또는 축소해야"… 만족도 25% 미만
학생·학부모 10명 중 8명 "고교학점제 폐지 또는 축소해야"… 만족도 25% 미만

올해 고1 학생과 학부모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고교학점제에 대한 만족도가 매우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제도 시행 첫 학기를 경험한 응답자 중 10명 중 8명 이상이 '제도를 폐지하거나 축소해야 한다'고 답했으며, 학생들은 진로 탐색보다 대학입시 유불리를 기준으로 과목을 선택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종로학원은 10월 21일부터 23일까지 고1 학생과 학부모 470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의 75.5%가 '만족하지 않는다'고 답했다고 6일 밝혔다. 반면 '만족한다'는 응답은 4.3%, '매우 만족한다'는..

대전 갑천생태호수공원, 개장 한달만에 관광명소 급부상
대전 갑천생태호수공원, 개장 한달만에 관광명소 급부상

대전 갑천생태호수공원이 개장 한 달여 만에 누적 방문객 22만 명을 돌파하며 지역 관광명소로 주목받고 있다. 6일 대전시에 따르면 갑천생태호수공원은 9월 말 임시 개장 이후 하루 평균 7000명, 주말에는 최대 2만 명까지 방문하는 추세다. 전체 방문객 중 약 70%가 가족·연인 단위 방문객으로, 주말 나들이, 산책과 사진 촬영, 야간경관 감상의 목적으로 공원을 찾았다. 특히 추석 연휴 기간에는 10일간 12만 명이 방문해 주차장 만차와 진입로 혼잡이 이어졌으며, 연휴 마지막 날에는 1km 이상 차량 정체가 발생할 정도로 시민들의..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과학기술인 만남 이재명 대통령 과학기술인 만남 이재명 대통령

  • ‘사랑 가득한 김장 나눠요’ ‘사랑 가득한 김장 나눠요’

  • 수능 앞 간절한 기도 수능 앞 간절한 기도

  • 국민의힘 충청권 지역민생 예산정책협의회 국민의힘 충청권 지역민생 예산정책협의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