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보기] 3월의 대학병원 그리고 인턴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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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보기] 3월의 대학병원 그리고 인턴선생님

대전을지대학교병원 권역외상센터 외과 문윤수 교수

  • 승인 2022-03-31 17:09
  • 신문게재 2022-04-01 19면
  • 김성현 기자김성현 기자
문윤수 교수
문윤수 교수.
3월에 대학병원 방문은 가급적 피하라고들 한다. 대학병원의 불문율이다.

새로 입사한 의료진들, 인턴 선생님과 간호사로 인해 환자가 조금 고생할 수 있는 상황이 다른 시기보다 더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한 번에 꽂을 주삿바늘을 두 번 찌르게 되는 일 등이다.

그러나 역으로 3월은 모든 의료진이 긴장하고 한 번 더 고민하며 진료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올해도 새로운 인턴 선생님이 3월 1일 일을 시작하는 모습이 병원 여기저기에서 보인다.



한 달 전에 근무하던 인턴 선생님이 몇십 초 만에 뚝딱 해낸 채혈을 새로운 인턴 선생님은 10분 째 환자 팔목을 잡고 있다. 멀리서 지켜보던 나는 인턴 선생님 이마에 살짝 맺힌 식은땀을 보았다. 1년 전 빳빳한 가운을 입은 의대생 신분으로 병원에서 실습했던 학생이, 이제는 의사국가고시에 합격해 따끈따끈한 의사면허를 받고 나와 함께 병원에서 환자를 보고 치료를 한다.

깔끔한 학생 때 모습이 아닌 피곤함에 절은 모습과 환자를 보고 우왕좌왕하는 모습이 누가 봐도 지금이 3월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갑작스럽게 무릎이 아프다는 5살 아이를 안고 아이 엄마가 허겁지겁 응급실로 들어왔다.

응급실에서 처음 아이를 본 의사는 아직 의사면허증에 찍힌 잉크도 마르지 않은 인턴 선생님이다. 3월에 입사해 직접 환자를 본 지 단 2주밖에 되지 않았기에, 아프다며 우는 아이를 처음 마주하고 당황스러워하는 인턴 선생님 모습이 보인다. 그래도 차근차근 아이 엄마 면담, 아이 진찰을 하며 아이 문제점들을 하나씩 파악하고 있다. 때마침 응급실에 환자가 잠시 뜸한 시간이라 여유를 가지고 아이 무릎도 세심히 만져주고 아이와 농담도 하며 엄마를 안심시키는 모습이 보인다.

아이 병명은 성장통의 일종으로, 인턴 선생님의 자신감 있고 친절한 진료 덕분인지 아이 통증은 진료 중간에 시나브로 사라졌다. 아프지 않다며 태연히 걸어서 집에 가는 아이에게 인턴 선생님이 손을 흔들며 흐뭇해하는 모습이 보인다. 멀리서 인턴 선생님이 아이를 진료하는 모습, 아이가 유유히 엄마 손을 잡고 걸어가는 모습을 보며 나는 오늘도 후배 의사를 통해 배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달 전에 있던 인턴 선생님보다 재빠르고 능숙하게 채혈을 해내지는 못했지만, 누구보다 설레는 의사면허증을 받은 직후 환자를 대하는 태도와 정성은 오히려 지금 내가 환자를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를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나는 매일같이 보는 핏방울이지만, 누군가에게는 몸에 피와 상처가 고통 그 자체일 것이다. 아픈 몸을 이끌고 어렵게 병원을 찾아오는 환자를 진료하면서, 오랜 시간 같은 일을 하며 때로는 기계적으로 정해진 틀에 갇힌 채 환자들을 대하지 않았을까 하는 반성을 하게 됐다.

나도 인턴 수련 과정을 거쳐 지금의 의사가 됐다. 오랜 기억이지만 처음 대학병원 일을 시작하고 환자들을 대하면서 걱정과 동시에 설렘이 있었다. 내가 환자에게 하는 처치나 시술들이 잘되는 것인지 한 번 더 되돌아보곤 했다. 지금껏 나는 수많은 선배 그리고 동료, 후배 의사들의 장점들을 배우려 했고, 진료할 때나 환자를 대하면서 나쁜 것은 절대 답습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이제 한 달도 안 된 인턴 선생님이 앞으로 어떤 의사로 성장할지, 얼마나 많은 환자에 도움이 되는 의사로 성장할지는 미지수이다. 그러나 3월, 인턴 선생님으로 처음 환자를 대했던 마음가짐을 잊지 않는다면 환자에 도움이 되는 의사로 성장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한가득 걱정을 품고 아픈 아이를 안고 응급실로 달려왔지만 언제 아팠냐는 듯 아장아장 걸어가는 아이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가는 아이 엄마는, 방금 진료해준 의사를 3월의 인턴 선생님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아이 무릎을 따뜻하게 만져준 의사 선생님으로 기억하며 집으로 돌아갔다./대전을지대학교병원 권역외상센터 외과 문윤수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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