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만필] 수업을 열자 교실이 대답했다

  • 오피니언
  • 교단만필

[교단만필] 수업을 열자 교실이 대답했다

이다솜 세종캠퍼스고등학교 교사

  • 승인 2025-05-22 14:25
  • 이희택 기자이희택 기자
이다솜
이다솜 세종캠퍼스고등학교 교사. 사진=시교육청 제공.
수업은 나만의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 사실을 온전히 깨닫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매일 교실에서 학생들과 마주하며 호흡했지만, 그 시간이 학생들에게 어떤 의미로 남는지, 한 시간이 어떻게 그들의 삶과 연결될 수 있는지는 늘 모호하게 남아 있었다. 더 나은 수업을 위해 고민을 거듭하면서도, 그 고민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자리는 많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무심코 넘길 뻔한 한 공문이 눈에 들어왔다. '수업 나눔 지원단의 수업 나눔 토크'. 큰 기대 없이 참여했던 자리에서 여러 교사들의 수업 이야기를 들으며, 공감과 위로, 지지가 함께 찾아왔다. 그 자리를 계기로 '수업 나눔 한마당'에도 참여했고, 서로의 치열한 고민과 시도를 나누며 학생의 성장을 중심에 둔 수업을 지지하는 기반이 마련됐다.

이후 코로나 상황이 진정되면서는 실제 수업을 공개하고, 수업 후 동료 교사들과 성찰을 나누는 자리를 지속적으로 이어갔다. 내 교실은 언제든 열려 있다는 마음으로, 동료 교사들이 편하게 찾아와 함께 고민하고 이야기할 수 있기를 바랐다. 수업을 나누는 일은 기대만큼이나 걱정도 컸다. 내 수업이 평가의 대상이 되지는 않을까, 학생들이 지금 이 수업을 삶과 연결된 의미 있는 시간으로 받아들이고 있을까, 나의 의도는 잘 전달되고 있을까. 하지만 매 학기 진행한 학생 요구 조사와 수업 피드백을 통해, 수업이 학생들의 삶에 서서히 스며들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수업 방식도 점차 변화했다. 교과서에 얽매이지 않고, 학생들의 관심사와 삶의 맥락에서 출발해 수업을 구성했고, 현실적인 사회 이슈나 개인적 고민을 영어 지문으로 바꾸어 적용해보기도 했다. 또한 다른 교과와 주제를 연결한 융합 수업을 시도하면서, 학생들이 과목 간 연계성을 자연스럽게 인식하고 사고를 확장할 수 있도록 했다. 연말에 진행한 수업 피드백의 내용이다.

"선생님 수업을 통해 처음으로 영어가 제 이야기를 담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영어는 어려운 과목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수업을 따라가며 나도 뭔가를 이해하고 표현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학생들의 이러한 진심은, 내가 가르치는 방식이 누군가의 삶에 작지만 분명한 변화로 이어지고 있다는 확신을 안겨주었다.

교실은 그렇게, 수업에 대답하고 있었다. 수업을 나누면서 동료 교사들과의 관계에도 변화가 생겼다. 교내 메신저를 통해 수업 운영에 관한 고민을 나누기 시작했고, 함께 방법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서로 기대고 의지할 수 있는 작은 연결점이 생겨났다. 같은 고민을 안고 있는 누군가가 곁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학교는 조금씩 더 따뜻한 공간이 되어갔다. 이 경험을 통해 내가 지켜야 할 수업의 중심도 더욱 분명해졌다. 수업은 학생의 언어에서 출발해야 하며, 지금의 이해보다 한 걸음 높은 수준으로 자연스럽게 이끌어주는 구조를 갖추어야 한다. 무엇보다 학생의 삶, 감정, 관심사와 연결된 수업은 그 자체로 배움의 동기를 일으킨다.

수업이 학생의 세계와 만나는 지점에서, 진짜 배움은 시작된다. 그래서 지금도 매 수업마다 다시 고민하게 된다. 어떻게 하면 영어가 학생들에게 부담이 아닌 도전이 될 수 있을까. 기초가 부족한 학생들도 포기하지 않고 참여할 수 있으려면, 나는 무엇을 바꾸어야 할까. 설명은 더 쉽게, 내용은 더 깊이 있게 전달하려면 수업을 어떻게 다시 설계해야 할까. 이 고민들은 수업을 나누며 더 분명해지고 구체화되었다. 나 혼자만의 고민이 아니라는 사실, 함께 나눌 수 있는 동료가 있다는 사실은 교사로서의 방향을 다시 세우는 힘이 되었다.

수업을 열자 교실이 반응했고, 학생들은 자신만의 배움의 방식을 만들어갔다. 그 안에서 나 역시 교사로서 성장하고 있었다. 앞으로도 수업은 내가 가장 고민하고, 나누고, 변화시켜야 할 핵심이다. 학생들과 함께, 그리고 동료 교사들과 함께, 조금씩 더 나아가는 교실을 만들어가고 싶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우리 위성이다, 성공이다" 대전샛 개발진 사출 지켜보며 환호
  2. 누리호 5차 발사 성공…대전 한국형 뉴스페이스 도약 가속도
  3. [한글날 제정 100주년]AI 시대, 한글의 힘을 기르자
  4. 대전대학교 대전광역시아이돌봄광역지원센터, 가족·돌봄 지원 협력체계 구축 공동협약
  5. 우송정보대 앵커사업단, 산학연 EXPO서 현장형 인재양성 성과 공개
  1. 건양대, 로고스AI와 손잡고 ‘데이터 주권 AI’ 인재 양성
  2. [대전노인신문] 노인대학 강의가 열리는 날
  3. 충청권 인구감소지역 15곳 그대로… 대전 원도심 3곳 ‘인구활력+지역’ 전환
  4. 충남대 통합신청서 부결 한 달…“국립대 통합 재추진 필요” 민병권 대표 제언
  5. ‘가갸날’에서 한글날까지 100년…대전·세종에서 즐기는 한글날

헤드라인 뉴스


대전 무임교통 3만원 제한… 어르신 3명중 1명 한도초과

대전 무임교통 3만원 제한… 어르신 3명중 1명 한도초과

대전시가 내년부터 70세 이상 어르신 무임교통 지원을 월 3만원 한도로 축소하기로 한 가운데 현재 이용자 3명 중 1명 이상이 지원 한도를 넘겨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원 방식도 현재 사실상 무료 이용에서 본인이 교통비를 먼저 결제한 뒤 이용액을 돌려받는 방식으로 바뀔 예정이어서 제도 변경에 따른 고령층의 체감 부담도 커질 전망이다. 7일 대전시에 따르면 올해 4월 기준 어르신 무임교통카드 이용자는 모두 11만 1997명이다. 이들의 1인당 월평균 교통비 이용액은 2만 8586원으로 집계됐다. 특히 월 3만 원을 초..

축구대표팀 ‘병역 논란’ 후폭풍…53년 병역특례 폐지 수순 밟나
축구대표팀 ‘병역 논란’ 후폭풍…53년 병역특례 폐지 수순 밟나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을 계기로 다시 불붙은 예술·체육인 병역특례 제도가 53년 만에 존폐 기로에 섰다. 일부 축구 국가대표 선수들이 금메달 획득 후 병역 혜택을 과도하게 부각하는 언행을 보이면서 여론이 악화한 가운데 정부가 '궁극적 폐지'를 공식화하고 정치권에서도 관련 법안까지 나오면서다. 선수들의 경솔한 행동이 그동안 누적돼 온 형평성 논란에 기름을 부은 셈이다. 8일 정치권과 정부 등에 따르면 강신철 국방부 장관은 전날 국회 국방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병역특례를 단계적으로 줄여 최종적으로 폐지하는 것이 국방부의 목표라는..

지역화폐 몸집 키우는 정부·지자체… 소비 쏠림에 실효성 물음표
지역화폐 몸집 키우는 정부·지자체… 소비 쏠림에 실효성 물음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지역화폐 발행을 확대하고 있지만 소비가 일부 상권에 집중되면서 정책 실효성을 보다 면밀히 따져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비와 지방비가 투입되는 만큼 발행 규모뿐 아니라 지역 내 소비가 어디로 흘러가는지까지 정책 평가에 반영해야 한다는 것이다. 7일 행정안전부 등에 따르면 정부는 최근 '지역사랑상품권 활성화 기본계획(2026~2030)'을 수립하고 2030년까지 지역화폐 발행 규모를 31조 2000억 원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지역사랑상품권 발행지원 국비도 올해 1조 1500억 원에서 내..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수확 앞둔 황금 들녘 수확 앞둔 황금 들녘

  • ‘와! 성공이다’ 대전샛 개발자들 누리호 발사 성공에 환호 ‘와! 성공이다’ 대전샛 개발자들 누리호 발사 성공에 환호

  • ‘은행 열매를 피해라’ ‘은행 열매를 피해라’

  • ‘한글, 예술이 되다’ ‘한글, 예술이 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