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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영선 비래영광교회 담임목사 |
이 표현은 단순한 인상이나 외형의 변화가 아니라, 그가 경험한 하나님의 임재와 복음의 능력이 그의 존재 전체에 새겨졌음을 의미합니다.
스데반은 초대교회가 세운 일곱 집사 가운데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단지 실무적인 봉사를 맡은 사람이 아니라, 성령과 믿음, 지혜로 충만하여 교회를 위해 헌신한 분이었습니다. 사도행전 6장 8절은 그가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여 백성들 사이에서 큰 기사와 표적을 행했다고 말합니다. 그의 삶은 하나님으로 충만했고, 그 충만함이 그의 섬김과 말, 태도, 결국 얼굴빛까지도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러나 스데반의 복음 증언은 사람들의 반발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그는 헬라파 유대인들과 논쟁하였고,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진리를 전했습니다. 이로 인해 그는 공회에 끌려가 거짓 증인들의 고발을 받게 됩니다. 사람들은 그가 성전을 모독하고 모세의 율법을 고치려 한다고 주장했지만, 이는 왜곡된 거짓말이었습니다.
스데반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전의 실체이시며, 율법을 폐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완성하러 오신 분이라는 진리를 증언했을 뿐입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2장에서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만에 다시 세우겠다"고 말씀하셨는데, 이는 자신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실 것을 가리킨 말씀이었습니다. 또한 마태복음 5장에서 예수님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완전하게 하시기 위해 오셨다고 밝히셨습니다. 스데반은 바로 이 복음을 담대히 증거 했던 것입니다.
공회 앞에 선 스데반은 고발과 비난 속에서도 당황하거나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의 얼굴은 천사의 얼굴처럼 빛나고 있었습니다. 사도행전 6장 15절은 모든 사람들이 그를 주목하여 보았다고 기록합니다. 그들은 그를 비난하려고 주목했지만, 그들의 눈에 비친 것은 하나님의 영광이 임한 얼굴이었습니다. 스데반의 얼굴에는 성령의 충만함과 하늘의 평안이 깃들어 있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후서 3장에서 우리가 주의 영광을 바라볼 때 그 형상으로 점점 변화된다고 말씀합니다. 스데반은 바로 그러한 변화를 경험한 자였습니다. 복음은 단지 사람의 생각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살게 하고, 그로 인해 삶과 얼굴에까지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게 합니다.
이 말씀은 오늘 우리에게도 깊은 도전을 줍니다. 우리는 과연 복음 앞에서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가? 예배할 때, 기도할 때, 세상에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갈 때, 우리의 얼굴은 하나님의 영광을 반영하고 있는가? 고난과 오해 앞에서도 흔들림 없이 복음을 붙들고 있는가?
복음을 아는 것과 복음으로 사는 것은 다릅니다. 복음을 정말로 믿는 사람은 변화된 얼굴을 가집니다. 두려움과 불안이 가득한 얼굴이 아니라, 소망과 담대함이 있는 얼굴, 성령이 임재하시는 얼굴입니다. 스데반의 얼굴은 외모가 아름다워서가 아니라, 복음의 진리 위에 선 사람의 얼굴이었기에 천사 같았던 것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 얼굴로 살기를 원하십니다. 교회 안에서는 서로를 사랑하고 섬기며, 가정과 일터에서는 성실하게 주의 뜻을 따라 살아가고, 세상 속에서는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증언하는 삶이 바로 그런 얼굴을 만들어 냅니다. 우리도 스데반처럼 살아야 합니다. 고난이 와도 물러서지 않고, 진리를 굳게 붙들며, 하나님의 영광을 담은 얼굴로 오늘을 살아야 합니다.
복음은 얼굴을 바꿉니다. Before와 After가 분명합니다. 예수 믿기 전과 후, 성령 충만하기 전과 후, 복음을 깨닫기 전과 후의 삶은 달라져야 하고, 얼굴도 달라져야 합니다. 주께서 우리의 얼굴에 은혜와 빛을 비추시길 바랍니다. 스데반처럼, 세상 한복판에서 '천사의 얼굴'로 살아가는 복음의 사람 되기를 소망합니다. /심영선 비래영광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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