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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환석 한국한의학연구원 한의기술응용센터 책임연구원 |
이러한 변화의 중심에는 세포치료제인 CAR-T와 항체치료제인 면역관문 차단제의 눈부신 성과가 있다. 특히, 면역관문 단백질인 PD-1을 차단하는 항체치료제 '키트루다'는 면역항암제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꼽힌다. 키트루다는 2023년에만 약 43조 원의 매출을 기록하며 세계에서 가장 큰 수익을 올린 약물이 됐다. 흑색종, 비소세포폐암, 두경부암, 방광암 등 다양한 암종에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현재 면역관문차단제는 대부분 항체 기반이다. 항체는 분자량이 크고 주사로만 투여가 가능하며 매우 비싸다. 국내 기준 키트루다의 1인당 연간 약값은 1억 원에 달한다. 보험으로 환자 부담은 줄어들지만, 나머지는 국민건강보험 재정에서 부담하게 된다. 또한, 크기가 큰 항체는 종양 내로 침투하는 데 한계가 있어 실제로 효과를 보는 비율은 약 15%에 그친다.
이러한 현실을 보며 나는 "한약 중에도 키트루다와 유사한 기전으로 작용하는 소재가 있지 않을까?"라는 궁금증을 가졌다. 이 생각은 나를 한의 종양면역 연구로 이끌었다. 2017년부터 본격적으로 연구를 시작해, 약 1000종의 한약 중에서 면역관문을 조절할 수 있는 소재를 무작위로 탐색했다. 놀랍게도 면역을 억제하는 독한 약보다는 오히려 면역을 조절하고 보하는 성질을 지닌 한약, 즉 전통적으로 '보약'으로 알려진 약재들에서 PD-1/PD-L1을 조절하는 활성 성분들이 발견됐다.
내가 지금까지 발굴한 소재에는 홍삼, 배암차즈기, 월견초, 복분자, 건칠 등이 있다. 이들 소재는 면역관문인 PD-1뿐만 아니라 PD-L1에도 작용해 키트루다(PD-1 항체)와 티쎈트릭(PD-L1 항체)을 동시에 투여한 것과 유사한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발굴한 성분들은 동물실험에서도 키트루다와 견줄만한 항암효과를 보였다.
그뿐만 아니라, 이들 성분은 경구 투여가 가능하며 분자량도 작아 종양 내 침투가 유리하고 생산비까지 저렴해 기존 항체치료제에서 부족한 경제성과 편의성을 보완할 수도 있다. 기존 항암화학요법과 병용 시 상승효과도 확인됐다.
하지만, 이렇게 좋은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음에도 현실은 쉽지 않다. 관련 연구비는 줄어들고 산업계에서 관심도 크지 않다. 요즘은 mRNA, ADC(항체-약물 접합체) 같은 새로운 방식에 연구비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천연물 기반 의약품은 경제성이 낮다는 인식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민간 투자자들은 수익성과 빠른 회수 가능성을 고려해 투자에 매우 신중할 수밖에 없다.
볼보가 3점식 안전벨트를 개발한 후 특허를 포기하고 모든 제조사가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한 사례는 안전을 위한 공공 정신의 상징이다. 한의 종양면역 소재도 마찬가지다. 경제성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개발이 중단된다면, 국민 건강 증진에 큰 기회를 잃는 것이다. 경제성 문제로 연구를 지속하기 어렵다면, 국가나 공공기관이 책임지고 연구개발을 지원해야 한다. 이는 단순한 경제 논리로만 접근해서는 안 되는 문제다.
얼마 전 사촌 누나가 폐암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종양면역을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누구보다 암 환자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그동안의 연구 성과를 실제 임상으로 이어가지 못했다는 점에서 안타까움과 미안함이 크다. 그래도 여전히 희망을 품고 있다. 내가 연구한 한의 종양면역 소재들이 빠르게 임상시험을 통해 효과를 입증하고, 새로운 한의 면역항암제로 개발되길 기대한다. 그리고 언젠가 '한의 키트루다'라는 이름으로 암 환자들에게 새로운 희망과 생명을 주는 날이 오기를 간절히 바란다. 정환석 한국한의학연구원 한의기술응용센터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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