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여환 충남대 예술대학 회화과 교수 |
의술이 발달하기 이전에는 단지 그리는 화장법과 문신 화장법만으로 만족했다. 여인의 미모에 대한 선호사상과 유행은 기원전 500여년 전 공자시대에서도 활발했었고 뚜렷한 미인관이 있었다. 여인의 미용사를 보면 이마를 넓어 보이게 하는 미용술이 있다. 이마와 머리와의 경계에 있는 머리카락을 뽑아 발제선(髮際線)을 가지런하게 하고 이마를 네모지고 높게 만드는 미용술인데, 족집게를 이용한 '뽑는 미용법'으로 고대 여인들에서부터 조선 시대에 이르기까지 네모진 이마는 아름다운 여인의 상징으로 여겨져 왔다.
진수는 네모진 이마를 뜻하는 미인을 일컫는 단어인데 '진수'의 언급은 일찍이 '詩經'에도 기록되어 있다. 석인- 시경위풍(碩人-詩經衛風)에 보면 진수아미라고 하여 털매미 이마에 누에나방 눈썹이라는 뜻으로, 넓고 네모 반듯한 이마에 초승달 같은 눈썹인 여자 얼굴을 형용한 것으로 보아 진수아미 모양이 그 당시 미인의 전형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아미(蛾眉)는 아미청대(蛾眉靑黛)라 하여 주(周)나라 때에는 여인들 사이에서 눈썹을 제거하고 그 위에 눈썹먹, 즉 대(黛)로 검푸른 색의 눈썹을 그리는 풍조가 유행하였다. 아미라는 것은 누에나방에 붙어있는 가늘고 긴 두 개의 더듬이에서 따온 말로, 누에나방의 눈썹처럼 예쁜 눈썹을 이르는 말이다. 이는 초승달과 같은 형태를 하였는데, 초승달을 아미월(蛾眉月)이라고 부르는 것도 여기에서 유래하였다.
조선 시대에는 초승달 같은 눈썹을 표현하기 위해 족집게로 일부를 뽑아 가다듬고 굴참나무, 너도밤나무, 버드나무의 목탄, 보리깜부기를 기름에 개어 바르거나 등잔의 그을음을 가는 붓에 묻혀 눈썹을 그렸다.
삼국유사 [가락국기]의 문헌에도 진수감도 용안시근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 대목을 해석해 보면 아유타국의 공주 허황옥이 황후가 되기 위해 김수로왕을 처음 만날 때도 진수아미 화장을 하고 맞이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진수아미 화장법은 [고구려벽화 안악3호분]에 그려진 묘주부인의 용모에서도 뚜렷하게 표현되어 있다.
조선 전기 [하연 부인상]에서도 진수아미 화장을 한 것을 볼 수 있고 신윤복의 [미인도]나 평양의 의기 [계월향]영정 그리고 구한말 채용신의 [운낭자상]과 그 당시 여인들의 사진을 봐도 이러한 진수이마 모양을 하고 있다.
임진왜란 당시 거룩한 분노와 숭고한 죽음으로 국난을 극복한 의열여인 논개(論介)도 진수아미 화장을 했을 것으로 짐작되어 "논개국가표준영정(제79호)" 제작에 있어서도 진수아미의 화장법을 따랐다.
일본 에도(江戶)시대에도 강렬한 문신 화장문화가 오랫동안 유행하였다. 이 시대 우키요에(浮世繪) 미인도 중에 거울 앞에서 화장하는 여인의 자태는 남자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현대는 남자의 마음을 사로잡고 사랑받기 위한 미용연구가 성형미인으로 진화하는 시대에 와 있다. 선풍기 아줌마처럼 부정적인 경우도 있지만 성형하는 미인이 음지의 삶에서 활성화된 양지의 삶으로 전환되는 경우도 많다. 요즘 BTS와 K팝 아이돌그룹에 전세계인이 열광하고 있는 것도 한국의 뛰어난 성형문화가 가져온 긍정적인 측면일 것이다.
윤여환 충남대 예술대학 회화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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