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디세이] 집과 부동산

  • 오피니언
  • 시사오디세이

[시사오디세이] 집과 부동산

송복섭 한밭대학교 건축학과 교수

  • 승인 2020-08-31 08:36
  • 윤희진 기자윤희진 기자
송복섭 교수
송복섭 교수
방송을 통해 이런 실험을 본 적이 있다. 유치원생을 대상으로 살고 싶은 집을 그려보라고 했더니 대부분이 뾰족지붕에 창문이 달리고 굴뚝에서는 모락모락 연기가 피어오르는 집을 그렸다. 질문을 바꿔 현재 살고 있는 집을 그리하고 했더니 네모난 건물에 똑같은 창문이 다닥다닥 붙은 아파트를 그렸다. 어린 유치원생이 인식하는 이상적인 집과 현실의 집 사이의 괴리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인간이 정착생활을 하면서 집을 지어 살았다고 하는데, 빗물과 눈이 쌓이지 않도록 지붕 모양은 뾰족하게 만들고 벽으로 둘러싸인 어두운 공간에 빛을 들이기 위해 창문을 뚫게 되었을 것이며, 먹을거리를 요리하고 따뜻하게 공간을 데우기 위해 집 안에서 불을 때다 보니 굴뚝을 세우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 굴뚝이 있는 뾰족지붕과 네모난 창문이 집에 대한 원형으로 자리 잡게 되었을 것이다.

프랑스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 후 폐허가 된 도시에 대량으로 집을 공급하기 위해 철골로 집을 짓는 실험이 전개되었다. 철골은 대부분 표준화된 크기로 현장 조립식으로 빠른 시간에 집을 지을 수 있는 장점이 많았다. 정부도 이를 독려하기 위해 정책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건축가도 혹여 디자인이 저급해지지 않도록 형태에 공을 들였다. 그런데 막상 철골주택이 시장에 나오자 반응은 싸늘했다. 사람들은 경제적이고 가벼운 철골주택이 아니라 눈으로 보기에도 더 묵직하고 튼튼해 보이는 콘크리트 집을 선호한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당연히 철골이 벽돌이나 콘크리트보다도 더 강한데도 말이다. 그만큼 집에 대한 뿌리 깊은 원형은 바뀌기 쉬운 것이 아니다.

어떤 집에 살 것인지를 물어보면 많은 이들이 낭만적인 바람과 실제적인 이득 사이에서 고민한다. 예쁜 전원주택에서 살고 싶어도 잡초를 뽑는 일이 힘들고 편의시설이 멀다는 이유로 결심을 주저하거나, 마음에 드는 아파트가 있어도 가격이 더 오를 가망이 없다고 판단되면 기꺼이 포기한다. 하물며 자신만의 스타일을 구현하고 싶어 하는 건축가들도 대부분 아파트에 살고 있다고 한다. 살고 싶은 집과 동네가 있어도 기대되는 다른 가치를 위해 현재의 곳에서 견디며 사는 꼴이다. 무엇 때문에? 대부분은 돈이 그 이유이다. 집을 생활을 위한 삶의 공간이 아니라 언제든 사고 팔 수 있으면서도 차익을 최대한으로 실현할 부동산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부동산은 돈의 논리로 부르는 집의 또 다른 이름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예쁘고 아름다운 집과 동네를 꾸미는 일이 쉬이 추진되기 어렵다. 임시로 생각하는 공간에 누가 정성을 들이고 마음을 붙일 것인가? 그런 이유로 오랜 세월 많은 사람으로부터 사랑받던 집들이 쉽게 헐렸다. 이층집의 아기자기했던 대전프랑스문화원 건물이 멋없는 5층짜리 원룸으로 바뀌었고, 목척교 옆 추억의 신도극장은 7층짜리 무인모텔로 변신했다. 비교적 저렴하기에 사람이 몰려 명소가 된 건물들도 개발 바람이 불면 여지없이 스러진다. 아름드리 가로수와 키 재기를 하는 오래된 아파트단지도 곧 있을 재건축을 기다리며 아무도 가꾸려 들지 않는다. 그저 최대한의 용적률에 재산가치가 얼마나 늘어날 것인지만 몰두한다.

부동산 광풍이 수도권의 일일 것이라고만 알았는데 우리 지역으로도 바람이 일기 시작했다. 여기저기서 올랐다는 얘기들이 무성하더니 급기야 투기과열지구로까지 지정되었다. 걱정의 소리도 있지만 속으로 흐뭇해하는 사람들도 많은 것 같다. 염려되는 것은 이런 분위기 속에서는 환경을 개선하고 진정한 장소적 가치를 높이는 노력이 멈칫거리기 쉽다는 것이다. 너도나도 개발이익에만 몰두하여 보상가에 대한 기대치만 높이고 공공성과 장소성에 대한 고민의 목소리는 잦아들 수 있기 때문이다.

도시재생이란 이름으로 우리 지역 곳곳에서 장소를 회복하고 잊힐 뻔한 가치를 되찾고자 하는 노력이 살아나고 있다. 이런 희망에 부동산 열풍이 찬물을 끼얹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내가 살고 있는 이 집이 부동산이기에 앞서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행복하게 살아야 할 보금자리라는 사실을 다시 새겨보자.

/송복섭 한밭대학교 건축학과 교수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4658만$ 수출계약 맺고 거점 확장"… 김태흠 지사, 중국·베트남 출장 마무리
  2. 공회전 상태인 충남교육청 주차타워, 무산 가능성↑ "재정 한계로 2026년 본 예산에도 편성 안 해"
  3. [중도일보 창간74년]어제 사과 심은 곳에 오늘은 체리 자라고…70년 후 겨울은 열흘뿐
  4. [창간74-축사] 김지철 충남교육감 "든든한 동반자로 올바른 방향 제시해 주길"
  5. [창간74-축사] 김태흠 충남도지사 "중도일보, 충청의 역사이자 자존심"
  1. [창간74-축사] 홍성현 충남도의장 "도민 삶의 질 향상 위해 협력자로"
  2. [중도일보 창간74년]오존층 파괴 프레온 줄었다…300년 지구 떠도는 CO₂ 차례다
  3. [한성일이 만난 사람 기획특집-제99차 지역정책포럼]
  4. [창간74-AI시대] 대전 유통업계, AI 기술 연계한 거점 활용으로 변화 필요
  5. [창간74-AI시대] AI, 미래 스포츠 환경의 판도를 재편하다

헤드라인 뉴스


대전어린이재활병원 국비확보 또 ‘쓴잔’

대전어린이재활병원 국비확보 또 ‘쓴잔’

대전시가 2026년 정부 예산안에서 역대 최대인 4조 7309억 원을 확보했지만, 일부 현안 사업에 대해선 국비를 따내지 못해 사업 정상 추진에 빨간불이 켜졌다. 공공어린이재활병원 운영비와 웹툰 IP 클러스터, 신교통수단 등 지역민 삶의 질 향상과 미래성장 동력 확충과 직결된 것으로 국회 심사과정에서 예산 확보를 위한 총력전이 시급하다. 1일 대전시에 따르면 2026년도 정부 예산안에서 제외된 대전시 사업은 총 9개다. 앞서 시는 공공어린이 재활병원 운영지원 사업비(29억 6000만 원)와 웹툰 IP 첨단클러스터 구축사업 15억 원..

김태흠 충남도지사 "환경부 장관, 자격 있는지 의문"
김태흠 충남도지사 "환경부 장관, 자격 있는지 의문"

김태흠 충남지사가 지천댐 건설 재검토 지시를 내린 김성환 환경부 장관을 향해 "자격이 있는지 의문"이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지천댐 건설에 대한 공식 입장을 밝히지 않는 김돈곤 청양군수에 대해서도 "무책임한 선출직 공무원"이라고 맹비난했다. 김 지사는 1일 도청에서 열린 2026 주요정책 추진계획 보고회에서 김 장관에 대해 "21대 국회에서 화력발전 폐지 지역에 대한 특별법을 추진할 때 그의 반대로 법률안이 통과되지 못했다"라며 "화력발전을 폐지하고 대체 발전을 추진하려는 노력을 반대하는 사람이 지금 환경부 장관에 앉아 있다. 자격이..

세종시 `국가상징구역+중앙녹지공간` 2026년 찾아올 변화는
세종시 '국가상징구역+중앙녹지공간' 2026년 찾아올 변화는

세종특별자치시가 2030년 완성기까지 '국가상징구역'과 '중앙녹지공간'을 중심으로 또 다른 변화를 맞이할 전망이다. 1일 세종시 및 행복청의 2026년 국비 반영안을 보면, 국가상징구역은 국회 세종의사당 956억 원, 대통령 세종 집무실 240억 원으로 본격 조성 단계에 진입한다. 행정수도 추진이란 대통령 공약에 따라 완전 이전을 고려한 확장 반영이란 점에서 의미가 크다. 내년 국비가 집행되면, 국회는 2153억 원, 대통령실은 298억 원까지 집행 규모를 키우게 된다. 국가상징구역은 2029년 대통령실, 2033년 국회 세종의사당..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갑작스런 장대비에 시민들 분주 갑작스런 장대비에 시민들 분주

  • 추석 열차표 예매 2주 연기 추석 열차표 예매 2주 연기

  • 마지막 물놀이 마지막 물놀이

  • ‘깨끗한 거리를 만듭시다’ ‘깨끗한 거리를 만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