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Y-zone 프로젝트: 3대 하천 재발견①] 여름날의 갑천, 초록의 생명은 자라고 사람들은 걸었다

  • 정치/행정
  • 대전

[대전 Y-zone 프로젝트: 3대 하천 재발견①] 여름날의 갑천, 초록의 생명은 자라고 사람들은 걸었다

갑천① [의욕은 있으나, 길을 모르는구나]

  • 승인 2021-07-27 08:22
  • 수정 2021-08-24 16:06
  • 신문게재 2021-07-27 10면
  • 이해미 기자이해미 기자
컷-3대하천



 

 

유등천·대전천보다 최대 5배는 긴 가장 긴 하천
가수원교에서 출발, 정림교 하천 주변은 '밀림'
산책로와 자전거도로 오후 6시 넘자 사람 북적
여름의 생명력이 키워낸 자연보는 재미 쏠쏠



#대전시는 3개의 하천 물줄기가 도심을 가로질러 흐르는 유일한 광역시다. 우리가 3대 하천에 주목하기로 한 이유다. 갑천과 유등천, 대전천 등 3대 하천은 각각의 발원지에서 시작해 대전 도심에서 만난다. 동구와 중구, 서구, 유성구, 대덕구까지 흘러와 대청댐 물줄기와 만난 후 금강으로 합류하며 서해까지 힘차게 내달린다.

#우리는 3대 하천이 흘러 합류하는 지점을 'Y-zone(와이존)’으로 부르기로 했다. 이곳은 다른 줄기의 천이 만나 하나가 되는 상징성을 보여주는 곳으로, 궁극적으로 대전이 나아가야 할 비전을 고민해 볼 수 있는 주요 포인트다. 갑천과 유등천, 대전천 3대 하천은 각각의 의미가 있다. 갑천은 대전의 미래고, 유등천은 도심을 관통하는 현재, 대전천은 대전의 과거이자 시작점이다.



#이번 프로젝트는 노트북 앞에서 쓰는 진부한 글이 아니다. 3명의 기자가 바라본 하천의 매력, 직접 걷고 뛰고 또는 체험하면서 재발견한 3대 하천의 모든 것을 담고자 한다. 하필이면 폭염 속 진행하는 프로젝트에 걱정이 앞서지만, 진정으로 뜨거운 여름을 맞이하겠다는 각오를 밝힌다. 갑천과 유등천은 5번의 기획으로, 대전천은 4번의 기획으로 진행한다. <편집자 주>  

 

3대하천 안내도
들어가기에 앞서 대략적인 3대 하천의 지형을 파악하는 것이 좋다. 3대 하천이 모여 금강과 만난다. 대전 도심을 모두 훑고 지나는 하천은 드물다. 안내도=대전시 제공
KakaoTalk_20210725_110449364
이제 시작인데, 나는 어디로 가야 하죠? 직진하면 산책로, 오른쪽 아랫길로 내려가면 정림교가 나온다. 사진=이해미 기자
갑천① [의욕은 있으나, 길을 모르는구나]

갑천은 3대 하천 가운데도 가장 긴 33.35㎞다. 유등천보다 2배, 대전천보다는 무려 5배가량 길다. 막막했다. 평소 잘 걷지도 않으면서 과거와 현재, 미래를 분류하면서 그나마 상징성이 큰 갑천을 덜컥 맡게 됐다. 사는 곳과 거리가 먼 3대 하천보다는 금강과 가까워 특별한 일이 아니면 찾을 일도 없었기 때문에 갑천과 친숙하지 않다는 것도 걸림돌이었다. 잘 모른 길, 그 출발선에서 그동안 미처 몰랐던 갑천의 매력을 어떻게 보여줘야 할지.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했던가. 어떤 결과가 나오든 첫발을 떼는 것에 의미를 두기로 했다. 원래 처음은 다 어설프고, 촌스럽기 마련이다.

KakaoTalk_20210725_110508989
한낮의 폭염이 조금 사그라든 오후 6시. 여름날 무성하게 자란 나무와 풀, 꽃에서 싱그러운 생명력이 느껴진다.사진=이해미 기자
KakaoTalk_20210725_110508209
갑천누리길의 시작. 엑스포다리까지 9.4㎞다. 사진=이해미 기자

*PM 18:00 걷기를 시작할 때

연일 계속되는 폭염이라 출발하는 시간을 언제로 설정해야 할지 고민이었다. 한 시간 한 시간 뭉그적거리다 일몰이 오후 7시 30분임을 확인하고 오후 6시 가수원교에서 킥오프하기로 했다.

대둔산에서 발원하는 갑천은 계룡산에서 발원한 두계천과 대둔산에서 발원한 벌곡천과도 만나 서구 가수원동부터 완만하게 흐른다. 첫 시작을 발원지에서 하려고 했지만, 걷기 초보인 내게 주황룡 대전하천관리소장은 가수원교부터 걷는 것이 어떻겠냐고 조언했다. 조언을 듣지 않았다면 정말 최악의 코스가 됐을지도 모르겠다.

시련은 이제부터가 시작이었다. 가수원교에서 우회전해 직진하면 자전거와 산책코스가 나온다. 하지만 도착 순간, 내 눈에 들어온 것은 마치 밀림처럼 무성하게 자란 나무와 풀이었다. 물이 흘러가는 천변을 따라 걷겠지 라던 막연한 생각은 달랐다. 가수원교 초입은 산책로와 천변의 위치가 꽤 떨어져 있었다. 그래도 물길이 어떻게 흐르는지 봐야만 코스를 정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정림교가 있는 천변으로 내려갔다.

밀림이 맞았다. 여름 햇살에 초록 잎들은 하늘로 솟구치고 있었고, 얼마 전 내린 비에 쓸리고 휘어진 작은 나무들 때문에 돌계단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날파리에, 바지에 스치는 풀들은 어찌나 억샌지 순간 조난 영화의 한 장면이 그려졌다. 더더군다나 이 조용한 하천에 낚시꾼들이 왜 이렇게 많은지. 오히려 내가 어색한 방문자가 되어 버렸다. 그래도 꿋꿋하게 정림교 하나하나를 밟으며 중심으로 들어갔다. 갑천 물길은 완만하게 흘러와서는 요란한 소리를 내며 흘러갔다.

 

KakaoTalk_20210725_110454585
정림교까지는 완만하게 흐르다 돌계단을 지나면서부터 유속이 빨라진다. 사진=이해미 기자
KakaoTalk_20210725_110457642
정림교. 청둥오리인가, 사람이 오자 빠른 속도로 사라지는 오리. 정림교는 비가 많이 와서 수위가 높아지면 건널 수 없다. 사진=이해미 기자
KakaoTalk_20210725_110450167
정림교에서 가수원교를 향해 바라보자 이렇게 탁 트인 모습이다. 반대편은 밀림이다. 이 풍경 하나를 담았다는 것에 아쉬움이 남는 갑천 1회를 위로한다. 사진=이해미 기자
정림교 중간쯤에 왔을 때 가수원교를 바라보고 서자 그림 같은 풍경이 나왔다. 하늘과 천은 데칼코마니처럼 서로를 담았고, 더위도 잊게 하는 시원한 물소리는 쉼 없이 들려왔다. 휙휙~ 낚시줄 던지는 소리만 들리지 않았어도 꽤 머물고 싶은 공간이었다. 그러나 가수원교 반대편, 물이 흘러가는 방향은 막힌 길이었다. 하천을 따라가는 걷는 길은 보이지 않았다. 물길이 약한가, 아니면 너무 높이 자란 나무들에 하천이 잠긴 듯 보이는 걸까. 지도에는 오른편에 월평습지로 가는 길도 있다는데… 결국 하천 걷기 초보는 안전한 길로 방향을 틀어야만 했다.

KakaoTalk_20210725_110448723
평범한 산책길 대신 선택한 억새숲길. 가을에는 누렇게 변한 억새에 가을의 정취를 느끼는 재미도 쏠쏠할 듯 하다.사진=이해미 기자
KakaoTalk_20210725_110426779
억새숲 순환산책로는 1㎞지만 끝을 알 수 없기 때문에 꽤 긴 코스처럼 느껴진다. 사진=이해미 기자
*여름날의 걷기, 이 계획 없는 무모함

첫 시작부터 그것도 첫 방문에서 온전한 길을 찾기는 쉽지 않다. 그나마 해가 서서히 지는 탓에 숨 막히는 더위를 피했다는 것에 안심하며 산책길로 접어들었다. 또 갈림길이다. 이번에는 탁 트인 산책길이냐, 끝이 보이지 않는 억새 숲길이냐. 아니 갑천을 걸으러 왔을 뿐인데 무계획으로 오면 이렇게 주저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그래도 평범한 산책길보다는 억새 숲길을 택했다. 억새는 아직 초록이다. 키보다 높은 억새 숲길은 꽤 긴데, 끝으로 갈수록 억새가 낮아지면서 주변까지 볼 수 있다. 조금 성급하게 우는 귀뚜라미, 마스크를 써도 느껴지는 풀냄새, 한풀 꺾인 더위, 전신을 휘감는 땀. 겨우 15분 걸었을 뿐인데, 초반 어긋났던 계획들은 그저 해프닝처럼 다가왔다.

가수원교에서 시작하는 갑천 초입은 원시의 모습을 품은 곳이었다. 제멋대로 자란 나무들과 습지처럼 빼곡하게 자란 풀까지. 그 아래로 물이 흐르고 있기에 가능한 풍경이었다. 도심이지만 갑천만큼은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느끼기에 최적의 공간이었다.

억새 숲길이 끝나고 본격 산책로에 접어드니 오후 6시 30분. 걷는 사람,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눈에 띄게 많아졌다. 7월 더위에도 하천으로 쏟아져 나오는 사람들은 갑천 근처에 살고 있다는 것에 감사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KakaoTalk_20210725_110420434
고흐의 그림이 생각나는 풍경. 제멋대로 자랐어도 있는 그대로의 매력을 보여주는 것이 자연이다. 사진=이해미 기자
걷기
운동화 PPL 아니고, 걷고 있다는 인증입니다. 사진=이해미 기자

*갑천의 꿈은 시작됐다

이건 조금 변명 같지만, 연재 1회분에서는 가수원교에서 만년교까지 걷는 것을 목표로 했다. 하지만 초반에 에너지를 너무 많이 쏟았나 보다. 억새 숲길에서 나와 만년교로 향하는 산책로에 접어들었지만,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한계도 느껴졌고, 모르는 길이라는 두려움, 조금씩 붉어지는 피부, 계속 낯선 곳에 왔다는 이질감까지 걷기 초보자를 억누르는 위험요소가 많았다. 더 멀리 가기 위한 한 번의 후퇴랄까. 산책로에서 돌아서서 다시 가수원교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억새 숲길에 가려져 보지 못했던 새로운 풍경들이 지나간다. 이곳에서 가장 좋았던 것은 여름의 생명력이 느껴지는 초록이다. 매일 노트북만 바라보고 사는 기자에게 짧은 1시간의 방황은 값진 힐링, 비타민 같은 시간이었다.

강이든 천이든 그 시작은 아주 작은 샘에서 시작한다. ‘갑천 시리즈’ 처음 시작은 샘처럼 시작했음을 분명히 밝힌다. 점차 폭을 넓혀 물줄기를 넓혀가는 것, 의도치 않은 기획의도였다는 것도 살짝 덧붙여본다.

갑천은 최장 길이의 하천답게 곳곳에 굵직한 변화들을 감지할 수 있다. 갑천수변공원에는 대규모 아파트 단지와 국회도서관 분원이 들어설 예정이고, 갑천 왼편으로 자리 잡은 도안동에도 신규 아파트 조성이 예정돼 있다. 갑천이 대전의 미래라는 것이 틀린 말은 아닌 듯, 갑천의 꿈은 곳곳에서 꿈틀거리고 있다. 갑천 걷기 두 번째 이야기에서는 이런 변화의 흐름을 볼 수 있지 않을까.


갑천=이해미 기자 ham7239@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사망 20일 뒤 발견된 모자 왜?…사회 단절된 채 수개월 생활고
  2. 대전교육청 리박스쿨 이어 이번엔 극우 교원단체 '대한교조' 홍보 배정 논란
  3. 조길형 충주시장 "도지사 출마" 선언에 지역 민심 '싸늘'
  4. 저스티스 유한 법무법인 첫 전환…전문성·법률서비스 강화
  5. 대전.충남 행정통합 특별법 완성… 외국인 관광객 유치 특례 추가
  1. 의대생 전원 돌아온다지만... 지역 의대 학사운영·형평성 논란 등 과제
  2. 유성선병원 대강당의 공연장 활용 의료계 의견 분분…"지역 밀착형vs감염병 취약"
  3. ‘민생회복지원금 21일부터 사용 가능합니다’
  4. 전재수 "해수부, 세종보다 부산이 더 효과" 발언에 충청권 '발끈'
  5. 대전.충남 행정통합 결실 위해선 초당적 협력 시급

헤드라인 뉴스


정부세종청사 첫 국무회의 언제?… 이재명 정부는 다를까

정부세종청사 첫 국무회의 언제?… 이재명 정부는 다를까

오는 8월 청와대의 대국민 개방 종료와 함께 이재명 새 정부의 '국가균형발전' 시선이 어디로 향할지 주목된다. 청와대는 새 정부 로드맵에 따라 7월 말 일단 문을 닫는다. 2022년 5월 첫 개방 이후 약 3년 만의 폐쇄 수순이다. 빠르면 9월경 종합 보안 안전과 시설물 등의 점검 과정을 거친 뒤 대통령실의 심장부로 다시 거듭날 예정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국정 운영을 시작할 시점이기도 하다. 청와대가 다시 수도 서울의 상징이자 중앙권력의 중심부로 돌아오는 과정이나 우려되는 지점은 분명하다. 수도권 초집중·과밀을 되레 가속..

이번엔 스포츠다!… 대전시 `스포츠 꿈돌이` 첫 공개
이번엔 스포츠다!… 대전시 '스포츠 꿈돌이' 첫 공개

대전시가 지역 대학생들과 협업해 새롭게 탄생시킨 '스포츠 꿈돌이' 캐릭터를 시민들에게 공개했다. 15일 대전시에 따르면 오는 17일까지 대전시청 1층 로비에서 '2025 꿈씨패밀리 스포츠디자인 산학협력 프로젝트 전시회'를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대전시 대표 마스코트인 '꿈돌이'와 '꿈씨패밀리'를 스포츠 테마로 재해석한 작품들로, 한남대학교 융합디자인학과와 목원대학교 시각커뮤니케이션디자인학과 재학생 38명이 참여해 지난 한 학기 동안 완성한 결과물을 시민들에게 공개하는 자리다. 전시장에는 캐릭터별 등신대, 티셔츠·선캡 등 굿즈, 그리..

제23회 이동훈미술상 본상 임송자 화백… 특별상 김은희, 정의철 작가
제23회 이동훈미술상 본상 임송자 화백… 특별상 김은희, 정의철 작가

충청을 대표하는 미술상인 제23회 이동훈 미술상 본상 수상자로 임송자 화백이 선정됐다. 이동훈기념사업회는 15일 중도일보 4층 대회의실에서 진행한 제23회 이동훈미술상 수상 작가 심사 결과, 본상에 임송자 화백, 특별상에 김은희, 정의철 작가를 각각 수상자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동훈 미술상은 대전·충청 미술의 토대를 다진 고 이동훈 화백의 예술정신을 기리고자 2003년 제정됐다. 대전시와 이동훈기념사업회가 공동 주최하며, 중도일보와 대전시립미술관이 주관한다. 본상은 한국 근·현대미술에 큰 업적을 남긴 원로 작가에게, 특별상은 대전..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제22회 이동훈미술상 특별상 수상 작가전 제22회 이동훈미술상 특별상 수상 작가전

  • ‘스포츠 꿈돌이’ 캐릭터 첫 공개 ‘스포츠 꿈돌이’ 캐릭터 첫 공개

  • 대전충남 행정통합 특별법 완성…충청 새 미래 열린다 대전충남 행정통합 특별법 완성…충청 새 미래 열린다

  • 요란한 장맛비 요란한 장맛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