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간의 취재 기록-23] 우실하 교수 “초·중·고 서양음악 일변도의 음악교육이 문제”

[10년간의 취재 기록-23] 우실하 교수 “초·중·고 서양음악 일변도의 음악교육이 문제”

‘전문가에게 길을 묻다2’-한국항공대학교 인문자연학부 교수
“판소리로 21세기 감성 담고, 앵무새 소리 버리고, 나만의 소리해야”
본보, ‘10년간의 취재 기록’ 판소리 시리즈… “언론기사 중 아마도 초유의 일"

  • 승인 2021-10-04 13:48
  • 수정 2021-10-14 09:21
  • 손도언 기자손도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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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실하(60·禹實夏) 한국항공대학교 인문자연학부 교수는 1989년 8월부터 2001년 11월까지 서울 중심가에서 '가온누리' 전통찻집을 열었다.그는 국악전공자는 아니지만, 국악이론과 관련해 2권의 책을 썼다.
우실하(60·禹實夏) 한국항공대학교 인문자연학부 교수는 1989년 8월부터 2001년 11월까지 서울 중심가에서 '가온누리' 전통찻집을 열었다. 가온누리 전통찻집은 소리꾼 등에게 대중들과 소통할 수 있는 '그들만의 공간'이었다. 찻집에서 소리했던 당시 젊은 소리꾼 등은 현재 대학교수 등 국악계를 이끌고 있다. 우 교수는 10여 년간 전통찻집을 열면서 우리나라 최고의 명인·명창 등을 옆에서 봐 왔다. 그는 국악 전공자는 아니다. 그러나 그의 전공인 문화이론, 한국문화론 속에서 우리나라 전통음악의 '멋'과 '이론'을 연구해 왔다. 그에게 '국악'에 대해 물어봤다. 전공자 시선이 아닌, 국악인들을 옆에서 본 그에게 국악의 세계화와 대중화, 그리고 국악의 문제점 및 앞으로 과제 등을 객관적 질문과 답변을 들었다. 이번 인터뷰는 지난 2일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한국항공대학교 우 교수 연구실에서 진행했다.

▲현재 판소리의 경쟁력은 어느 정도라고 생각하십니까.
"판소리는 그 중요성을 인정받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돼 있습니다. 그러나 춘향가, 심청가 등 5바탕 완창 위주의 현재의 모습은 우리나라 대중에게는 물론이고 전 세계 음악 애호가들에게는 너무나 어려운 분야라는 게 현실입니다. 신기해서 들을 수는 있지만, 지속해서 들을 수 있는 음악이 되기에는 아직은 갈 길이 멀어 보입니다."

▲예술성이 뛰어나고 종합예술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대중들에게 다가가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예술성이 뛰어나지만, 그 예술성을 인지하고 즐기기 위해서는 동양음악이나 판소리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이 있어야 합니다. 저는 대중에게 다가가지 못하는 근본적인 원인 가운데 하나는 초·중·고 시절 서양음악 일변도의 음악교육에 있다고 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신다면?
"초·중·고 음악교육이 서양음악 위주로 진행된다는 문제점입니다. 1995년 6차 교육과정 개편 이후 법적으로는 서양음악과 전통음악을 50%씩 가르치게 돼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교육 현장에서 실현되지 않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음악 교사는 서양음악 전공자들이고, 이들이 전통음악을 가르칠 수가 없으니, 기간제 국악 교사를 두고 장고나 단소를 가르치는 수준입니다. 서양음악과 동양음악은 음악이론인 악론(樂論)이 전혀 다릅니다. 서양음악 이론을 아무리 잘 알아도 그것을 바탕으로 동양음악을 이해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장구나 단소 등만 배우는 현실에서, 동양음악의 악론에 대한 교육은 제도교육에서 거의 이뤄지지 않습니다. 정상적으로 제도교육을 이수한 한국인들도 동양음악을 이해하고 즐기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것이 현실입니다."



▲어떤 해결책이 있습니까.
"실질적으로 서양음악과 동양음악을 50%씩 가르치는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음악 교사의 비율을 실제로 50%씩 뽑고, 전통음악 부분은 전통음악을 전공한 음악 교사가 체계적으로 가르치게 해야 합니다. 예전에 제가 전국 주요 대학의 음악과 교과과정을 분석해 논문으로 발표한 적이 있습니다. 모든 주요 대학에서 서양음악 전공자들은 대학과 대학원 과정에서 전공(성악, 기악, 작곡)을 불문하고 전통음악에 대해서는 거의 배우지 않습니다.

제가 논문에서 분석한 1993년 자료를 바탕으로 보면, 서울대의 경우 대부분의 서양음악 전공학과에 '국악이론'이 있으나 전공 선택으로 돼 있어서 특별한 학생 외에는 거의 듣질 않습니다. 이화여대의 경우에는 피아노과에 '국악개론' 한 과목이 전공 선택으로 있고, 관현악과 성악과 작곡과 종교음악과 등에서는 그나마도 없어서 국악에 대해 아무것도 배우지 않습니다. 이런 현상은 지금도 별로 변한 것이 없습니다. 대학에서 이런 과정을 거치면, 실제로 이들이 졸업해도 전통음악에 대해서 거의 모릅니다. 바로 이들이 각급학교의 음악 교사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에 비해서 주요 대학의 국악 전공자들은 초·중·고를 거치면서 이미 서양음악 위주의 교육을 받았고, 대학 입시에서도 서양음악에 바탕을 둔 피아노 실기, 시창과 청음 등을 입학시험의 일부로 보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들은 동서양 음악 과목을 고루 가르칠 수 있는 자격이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교사 임용시험이 대부분 서양음악에 대한 것이어서 국악 전공자들은 교직을 신청하는 사람도 거의 없고, 교사 임용시험을 통과하기도 어려운 것이 현실입니다. 저는 악론이 근본적으로 다른 서양음악과 동양음악을 각각의 전공자들이 가르치는 '음악교육의 이원화'가 이뤄져야 한다고 봅니다. 그러자면 우선 음악 교사를 서양음악 전공자와 국악 전공자로 고루 뽑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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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일동 판소리 명창(왼쪽)과 우실하 교수가 최근 오랜만에 만남을 갖고 30여년 전 전통찻집 '가온누리'와 관련해 이야기를 나눴다.
▲대중들에게 다가설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이 있겠습니까?
"판소리와 관련해서 이야기해보지요. 현재 판소리 분야는 과거의 5바탕 위주의 완창이나 눈 대목 위주로 돼 있습니다. 신세대에 어필할 수 있는 새로운 시도들이 다양하게 시도돼야 합니다.

첫째, 대중가요처럼 3~5분 정도의 짧은 단가 형식의 창작 판소리들이 많이 만들어져야 합니다. 생일을 맞이한 친구에서 불러줄 수 있는 그런 짧은 판소리 말입니다. 물론 판소리 사설도 '조선시대 어법'이 아닌 '현재의 어법'으로 '21세기 감성'을 담아내야 합니다. 최근 창작 판소리가 많이 만들어지지만, 대부분의 사설이 소리꾼들에게 익숙한 '조선시대 어법'으로 된 것이 많습니다. 이것은 스스로 경계를 만드는 것입니다.

둘째, 각 지역의 사투리를 사설이나 아니리에서 되살려야 합니다. 박녹주 선생은 1930년대에 유행했던 창극(唱劇) 심청전과 춘향전 등에서 모두 주연(심청, 춘향)을 맡았고 소위 스타가 됐습니다. 그러나 경북 선산 출신인 박록주(1905-1979) 선생은 판소리 사설 특히 아니리에서 '경산도 사투리'를 그대로 구사했습니다. 그런데도 계속해서 주연을 맡았고 최고의 인기를 얻었습니다. 예전에는 판소리가 지역별로 그 지역의 사투리로 불렸다는 것입니다. 현재는 판소리가 '전라도 사투리' 일색이 되었지만, 이것은 바람직한 모습도 아니고 또 본래의 모습도 아닙니다. 8도의 사투리로 부르는 판소리가 나와야 합니다. 최근 판소리 중고제 부활 운동이 활발한데, 충청도 사투리의 부활도 중요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봅니다.

셋째, 인간문화재 선생님의 소리를 똑같이 부르는 것은 교육과정에서는 필요할 수 있지만, 이를 바탕으로 자기만의 소리를 만들 수 있어야 합니다. 앵무새처럼 똑같이 부르는 것으로는 '전통의 보존'은 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새로운 발전'을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자신만의 창법, 아니리, 더늠을 만들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육과정에서도 한 대목에 대해서도 여러 방법의 창법을 열어줘야 합니다.

실제로 (고) 강도근 명창이 이런 식으로 가르쳤습니다. 한 대목을 가르칠 때 2~3가지 창법으로 불러주시고, "마음에 드는 것을 골라 다듬어서 너의 더늠을 만들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이런 방식의 교육이 미래지향적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현재는 인간문화재를 위한 길에 줄을 서는 풍조 때문에 자신만을 소리를 만들어내는 사람이 거의 없는 실정입니다. 제가 아는 한 강도근 선생에게도 가르침을 받고, 나름의 새로운 판소리 이론을 정립해가고 있는 배일동 명창이 이런 노력을 하는 분입니다."

▲TV 등 언론 등에서 판소리와 관련한 콘텐츠를 개발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어떻게 보십니까.
"우선 어떤 분야에서든 판소리에 관심을 가지고 콘텐츠를 개발하는 것은 환영할만한 일입니다. 그러나 TV는 시청률을 염두에 둘 수밖에 없을 것이고, 깊이 있는 콘텐츠보다는 흥미 위주로 흘러갈 가능성이 있다는 점은 좀 우려스럽습니다."

▲K-국악, 어떻게 보십니까.
"세계적으로 확산하고 있는 한류를 업고 'K-국악'에 대한 관심도 지속적으로 높아질 것으로 봅니다. 그러나 우선, 우리의 실정은 '정작 한국인에게도 국악이 낯설다'라는 현실을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세계적으로 'K-국악'이 확산하여서 외국인들이 국악에 대해서 질문을 하면 시원하게 답변할 수 있는 한국인이 몇 명이나 있겠습니까. 저는 한국인들부터 국악에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음악교육을 체계적으로 개편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봅니다."

▲1989년 8월, 서울 중심가(신촌)에서 전통찻집을 열었습니다. 찻집을 열게 된 배경은 무엇입니까.
"저는 당시 연세대 사회학과 박사과정에 있었고, '한국 문화와 사상의 원류'를 밝혀보고자 하는 것이 저의 학문적 목표였습니다. 학부에서부터 전통문화나 국악 분야에 관심이 많았었고, 인간문화재 (고)김선봉 선생님께 봉산탈춤을 배우기도 했습니다. 교방 입춤, 거문고, 가야금도 조금 배웠습니다. 물론 연주할 실력 정도는 아닙니다. 공부 과정에서 전통음악 이론이 동양철학과 밀접하게 연결된 것을 알고, 동양음악의 악론에 관한 공부를 하고 있었습니다. 1989년 8월에 제가 공부하는 것과 연결해 전통문화를 보급하기 위해서 연세대 앞에 '전통찻집 가온누리'를 열었습니다. 당시에는 대학가에 전통찻집이 거의 없던 시절이었고, 우려도 컸지만, 다행히 잘 운영됐습니다."

▲전통찻집 소개 좀 부탁드립니다.
"'전통찻집 가온누리'에서는 온종일 국악을 틀었고, 재주 있는 사람이 오면 누구든 연주를 할 수 있게 작은 무대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연세대 앞 지하에 45평 규모로 당시로서는 매우 큰 규모의 찻집이었습니다. 얼마 안 돼서 연대 앞의 명소가 되었고, 일간지 주간지 월간지 등 여러 곳에서 소개됐습니다. 일본의 관광안내책자에도 소개돼 깃발을 든 일본인 20~30명이 단체로 찾기도 했습니다. 가온누리에서는 YMCA에서 대학 입학을 앞둔 예비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의 하나로 '다도 강좌'를 제가 맡아서 하기도 했습니다. 실패하기는 했지만, 한때는 '가온누리' 상표로 한복도 생산해서 팔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신촌 일대의 5개 대학(연대, 이대, 홍대, 추계대, 명지대) 풍물패들과 연대해서 '새터(신촌의 옛 이름) 지신밟기', '새터 민족문화제'도 처음으로 기획해서 올렸습니다. 국악, 전통차, 한복 등 전통문화를 알리고 보급하고자 하는 의미로 찻집을 열었던 것입니다. 1993년 10월에는 '전통찻집 가온누리'의 홍대점을 열었으나, 홍대 앞은 당시 소위 '오렌지족'이 점령한 전통문화에는 관심이 없는 신세대 거리로 적자에 시달리다가 결국 1996년 12월 5일에 먼저 문을 닫았습니다. 본점인 신촌점은 제가 1999년 말에 중국 요녕성 심양시에 있는 요녕대학(遼寧大學) 한국학과 교수로 가면서, 동생이 잠시 맡아서 운영하다가 2001년 11월에 결국 문을 닫게 됐습니다. 정년퇴직하면 어딘가에 다시 열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고민 중입니다. 사실 국악 공연은 제가 2005년에 항공대 교수로 온 이후 2006년에 처음 '항공인과 함께하는 국악마당'이라는 이름으로 공연을 올렸고, 2010년부터 2019년까지(2015년 안식년으로 제외) 총 11회를 열고 있습니다. '항공인과 함께하는 국악다당'에서는 황병기(가야금) 선생님 등 유명인도 있었지만, 대부분 가온누리에서 인연을 맺어 현재는 중진이 된 국악인들입니다. 최근에는 코로나19 때문에 2년이나 못 열고 있지만, 상황이 좋아지면 다시 이어질 것입니다."

▲사실 전통찻집은 국악인들의 '등용문'처럼 알려져 있습니다. 어떤 인물들이 공연했습니까.
"국악인의 '등용문'이라는 것은 과찬입니다. 하지만 많은 국악 전공자들이 거쳐 간 것은 맞습니다. 1989년 8월 '전통찻집 가온누리'를 열 때, 재주 있는 사람이 오면 연주를 할 수 있도록 찻집 안에 작은 무대를 꾸며뒀습니다. 무대 위에는 소리북, 장구, 가야금 등 몇 가지 악기들도 올려놓았습니다. 1989년 10월 4일 국립창극단의 왕기석, 김학용이 소문을 듣고 가온누리에 와서 무대를 보더니 "소리를 해도 되냐?"고 묻기에, "언제든 환영한다"며 자리를 마련했던 것이 '가온누리 국악마당'의 시작이었습니다. 이 일이 있고 난 뒤에 저는 국악 공연을 정기화하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가온누리 국악마당'에는 제 주변의 국악인들과 그들과 인연이 된 국악인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당시 공연자 대부분은 국악을 전공하는 대학생 혹은 대학원생들 이었고, 90년대 말 서비스를 시작한 PC통신 천리안, 유니텔, 하이텔, 나우누리 등 4대 통신의 국악동호회, 풍물패 등 많은 단체와 개인이 거쳐 갔습니다. 제가 정리해서 가지고 있는 '가온누리 국악마당' 연혁 자료는 1회(1989년 10월 4일)부터 265회(1999년 8월 13일)까지입니다. 생각보다 길게 이어졌습니다. 재주꾼들이 와서 부정기적으로 열린 공연도 많았습니다.

판소리 분야에서 전공자들만 공연 순서대로 몇 분 소개하면, 첫 공연을 해준 왕기석과 김학용을 필두로 해서 배일동, 조동언, 남해웅, 박노진, 허애선, 임현빈, 황경아, 채수정, 이남행, 정영호 등이 있습니다. 다른 국악 분야에서 두각을 보이는 분들 가운데는, 강권순(정가), 허윤정(거문고), 강유경(거문고), 박경호(피리), 이용구(대금), 조금옥(대금), 유경화(타악,철현금), 박경숙(해금), 홍석복(거문고·타악), 박관선(가야금), 김용우(국악가요), 최혁준(춤), 김내경(춤), 조광희·김현태·조민수·김영훈(타악), 장재효(아쟁·타악), 강애진(아쟁), 이지성(대금), 장순혁(피리), 박취임(해금), 김민희(해금), 장은하(거문고), 전소라(대금), 조희영(대금), 원주현(거문고), 전소라(대금) 등이 있습니다. 당시에 이미 전라 우도 풍물 부포놀이의 명인이셨던 유지화 선생님도 연주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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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3월 19일 제247회에 공연'…우실하 교수의 아들(우정한, 우승한), 동생의 딸(우정경) 그리고 이들의 친구 남경진 학생 4명이 공연을 펼쳤다. 이들은 모두 만8살이었다. 이들이 '가온누리 국악마당'에서 최연소 공연자였다.<우실하 교수 제공>

▲그 곳에서 공연하신 분들의 현재 위치는?

"'가온누리 국악마당' 당시에는 대부분 대학생이나 대학원생이었지만, 현재는 대학교수가 된 분도 많고, 여러 국악단의 중진급 연주자로 재직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지금도 연락이 되는 몇몇 교수들은 채수정(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판소리), 유경화(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타악,철현금), 허윤정(서울대 교수·거문고), 강은일(단국대 교수·해금), 이용구(추계예대 교수· 대금), 김동원(원광디지털대 교수·타악) 등이 있습니다. 국악계의 중견으로는 홍석복(국립국악원·타악), 박경숙(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해금) 박경호(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피리), 강권순(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 악장·정가), 권성택(전북도립국악단·상임지휘자) 등이 있습니다. 그리고 솔로로 활동하면서 국악을 바탕으로 새로운 영역을 열고 있는 소리꾼 김용우, 판소리의 새로운 길을 개척하며 '독공(2016년)'과 '득음(2020년)' 이란 책을 쓰고 판소리의 새로운 이론을 만들고 있는 배일동 명창도 빼놓을 수 없다. 이외에도 현재 저와 연락이 안 되어서 그렇지, 곳곳에서 전문 국악인으로 활동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입니다."

▲가장 기억 남는 일화가 있다면?
"'가온누리 국악마당' 37회 공연(1998년 8월 20일)에서는 '외국인이 연주하는 우리 국악의 밤: 우도 설장구 가락을 중심으로'라는 제목으로 우도 설장구 명인 (고)김병섭 선생님의 미국인 제자인 '게리 렉더'라는 분이 연주했습니다. 그분은 국립국악원의 강사로도 활동하고 있던 분입니다. 그분의 연주를 보고 들으면서 한국인으로서 또 국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큰 부끄러움을 느낀 기억이 새롭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100회(1995년 3월 10일)와 200회(1997년11월 28일) 공연도 잊을 수 없는 뜻깊은 공연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선생님은 국악전공자 이셨습니까?
"저는 국악 전공자는 아닙니다. 하지만 국악에 대해서 사상사적으로 또 철학적으로 연구하는 학자입니다. 저는 동양사회사상을 연구하는 사회학자로 '한국 문화와 사상의 원류'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국악이론에 대해서는 많은 연구를 했고, '전통음악의 구조와 원리(2004)'라는 567쪽의 책을 쓰기도 했고, 최근에는 여러 사람과 공저로 '악학궤범 학제적 연구(2020)'라는 535쪽의 책을 출판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국악 관련 논문도 여러 편 썼습니다. 그리고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에서 여러 해 강의했고, 한양대 국악과 대학원에서 박사과정 강의도 했습니다. 국악방송 '국악특강'을 매주 일요일 1시간씩 3-4개월 정도 진행했었고, 국악방송에서 하는 동영상 '국악특강'도 3회(40~42회)에 걸쳐서 했었습니다. 그리고 국악계의 첫 신문이었던 '국악신문'의 편집위원과 편집국장을 역임하기도 했습니다. 국악 전공자는 아니었지만, 국악과 계속 연결돼 있었던 것이지요. 지금도 동양 전통음악의 철학적 기반과 원리에 관한 연구는 계속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어떤 일을 하고 계십니까.
"현재는 한국항공대학교 인문자연학부 교수로 재직하고 있습니다. 연구와 관련해서는 동양사회사상학회 회장, 고조선단군학회 부회장, 한국소리문화의전당 운영위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국악과 관련된 앞으로 계획은?
"제가 국악에 관해서 쓴 책들은 일반인들에게는 너무 어려운 전문서적 입니다. 이것을 바탕으로 국악의 사상적 배경과 철학적 원리를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대중서를 몇 권 쓸 생각입니다."

▲언론 등의 관심은 어느 정돕니까. 언론 등도 판소리에 관심없어 보입니다.
"제도교육에서 국악에 대해서 제대로 배우지 않는데, 누군들 관심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언론의 기자들도 예외일 수 없습니다. 저는 국악이 우리에게 낯선 것이 되지 않도록 음악교육 체계를 재정비하는 것이 우선적인 급선무라고 봅니다."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은.
"사실 신문에서 판소리와 관련해 시리즈로 글을 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아마도 초유의 일 같습니다. 손 기자가 소리 공부를 했기에 가능한 것이겠지요. 제가 정리한 '가온누리 국악마당' 연혁을 보니까 손 기자도 고수로 참가를 한 적이 있더군요. 94회 공연(1995년 1월20일)에서 '성우향 선생님 문하생'들이 공연할 때, 당시 서울예전에 다니던 임현빈이 춘향가를 부를 때 고수로 등장합니다. 알고 계셨는지 모르겠네요. 이래서 기록이 무서운 겁니다. 계획하신 100회까지 판소리에 대한 글이 잘 마무리되길 기원합니다."


제천=손도언 기자 k-55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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